그림을 보면,
부모님, 아이들, 남편
그리고 다른 것들도 굉장히 많아요.
이 여유 없음은,
그만큼 본인 마음의
여유가 없음을 뜻합니다.
어디에 발을 딛고 서 있건 깊은 물속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벗어날 수 없었다.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이었고, 나는 챙기고 기억해야 할 일들이 늘어난 시기였다.
아내, 엄마, 며느리, 딸로서의 일상들이 나 자신에게 벅찬 일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은 무기력 때문이었다.
동력이 바닥난 채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심정으로 살아왔던 날들을 외면하며,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 거고, 나는 어른이기 때문에 내 선택에 따른 의무를 해 나가야 하는 거라고 스스로 뇌까렸다.
머리가 마음에게 하는 소리였다. 그러나 마음은 대답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다고, 아무것도 안 할 거라고.
몸을 스러지게 하고, 잠을 쫓아버리고, 말 한마디 입밖에 내는 것이 지구를 들어 올릴 만큼의 힘이 필요하도록 만들어버렸다.
나는 그 신호를 감지했고, 전문가와 마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를 제외한 타인들을 위해 살았던 많은 시간들, 남편의 아내로서 아이들의 엄마로서 시부모님의 며느리로서 엄마의 딸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최고가 되지 못하고 좌절했던 시간들의 기억이 나를 아프게 찔렀다.
내가 행복하지 않았던 이유는 역할만이 존재했을 뿐, "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를 찾기 위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선택했고, 도심 한가운데 솟은 여러 개의 위압적인 건물들 앞에 누런 서류봉투를 들고 섰다.
그 건물들에 비하면 내가 든 서류봉투는 휴지조각에 불과한 것 같아 보였지만, 그것보다 더한 것은 미친 듯이 떨리는 몸을 주체하기 힘든 것이었다.
약물중독에 빠져 금단현상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몸을 떨어가며 나는 모 작가교육원의 면접을 보았고, 약 한 달 정도 후 그곳 강의실에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생후 35년 만에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힘으로 찾았던 것이다.
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없나요?
주제와 소재를 정하고 플롯을 짜고, 40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써 완성해냈던 나의 글.
밤 잠을 포기하고, 대여섯 개의 구내염과 안구 결석을 받아들이며 치열하게 써내야 했던 글의 문제점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단연코 압도적이었던 문제는 인물들의 이름을 설정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내 문제는 글 속에 여실히 녹아났고, 다시 한번 인생에서 소멸된 나 자신을 찾는 일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네 글은 싼마이다, 주인공이 바보가 아니냐는 평을 들었지만, 그래서 잔도 없이 소주를 마셨지만, 맑은 소주가 정신을 헤집어 놓았지만, 행복했다.
(그 뭐 맞으면서 희열을 느낀다는 그런건가..)
행복한 좌절이란 그런 것일까..
행복한 좌절이 세상에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제야 비로소 나는 숨을 쉬기 시작했다.
소주 냄새가 섞인 더운 숨이 입과 코에서 나오기 시작하던 날, 나는 다시 "생성" 되었다.
애써 쓴 글에 대한 혹평, 그 싼마이 같은 글을 쓰며 아이들을 방치했던 날들, 무기력하게 추락하던 그런 날들로 인해 나는 나를 발견했다.
다시는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나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