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울어라, 사람이여!
몸과 마음의 긴밀한 상관관계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에세이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소설가라는 자신의 직업을 위해 하루도 빼놓지 않고 1시간씩 달린다고 기록했다.
몸과 마음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면 마음이 무너지고 그렇게 되면 글을 쓸 수 없다고 했는데. 그 말을 요즘처럼 실감하게 된 날도 없었다.
몸이 먼저 무너지고 마음이 나중에 무너지든, 마음이 먼저 무너지고 몸이 나중에 무너지든, 둘은 절대 무관할 수 없는 관계다.
마음이 아팠다.
죄책감, 분노, 슬픔들이 한데 어우러져 하루하루 나를 조금씩 죽여가고 있었다.
마음에서 기인한 통증은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그러느라 입 안 여기저기에 생긴 피가 흐르는 심한 구내염과, 소화불량, 수면장애, 두근거림, 초조함에 나는 침몰하는 배처럼 가라앉고 있었다.
마음의 통증과 몸의 통증은 내가 얼마나 아픈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그동안 외면해왔던 통증들이 이제는 더 이상 자신들의 존재감을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의사는 물었다.
너를 괴롭히는 건 무엇이냐고.
나는 대답했다.
엄마에 대한 내 사랑이 하나의 질병처럼 나를 아프게 하고 있다고.
의사는 또 물었다.
그 핵심감정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나는 대답했다.
죄책감인 것 같다고.
죄책감...
병원 밖으로 나오며 생각했다.
죄책감... 나는 왜 죄책감 때문에 괴로운 것일까... 길바닥의 보도블록을 보며, 수많은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지하철에 몸을 실으며, 차창 밖으로 휙휙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왜. 이러는 걸까...
죄책감을 거슬러 올라가자, 얽힌 실타래 같은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딸려 나왔다.
늘 기다리고 늘 그리워하고 늘 슬퍼했던 내가 보이자, 울음이 터졌다.
오거리 교차로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다 펑펑 울었다.
신호가 바뀌어도, 사람들이 이상한 시선을 던져도, 안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슬픔을 막을 수 없었다.
다 큰 어른이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길바닥에서 엉엉 울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슬퍼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인생은 때로 우리의 권리를 박탈하기도 한다.
실컷 아파하고 실컷 슬퍼해야 지긋지긋해서라도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데 실컷 아파하지 못해 평생 그 슬픔에 메어있다.
그 슬픔을 외면하며 생각한다. 자신은 이제 슬프지 않다고. 어른이 되었으니 어른답게 살아가야 한다고. 언제까지고 울고만 있을 순 없다고.
살아갈수록 인생은 에누리가 없다는 말의 위력을 깨닫는다.
슬플 만큼 슬프지 못하고 지나쳐왔던 삶의 순간들이 에누리 없이 제 값을 받으려 한다. 작년에 왔던 슬픔이 죽지도 않고 또 왔다.
외면했었던 슬픔, 실컷 울지 못했던 날들을 견뎌내고 살아야 했던 나 자신에게 말한다.
실컷, 울어라.
실컷, 슬퍼해라.
그래야, 다시 설 기운도 생긴다.
슬픔은 희망이다.
나아지고자 하는 나의 생명력이다.
우리는 슬픔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눈물로 다시 자신을 찾을 수 있다.
슬픔과 눈물은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신체의 면역반응이다.
실컷 울고, 실컷 아프자.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
나를 지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