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도 100%의 고통을 받아들이다.
온전한 통증
" 엄마, 아직도 많이 아파요? "
아이의 눈망울에 근심과 걱정, 불안이 담겨있었다.
내가 흘린 많은 눈물과 함께, 그동안 나를 지탱하던 힘도 빠져나간 듯 서서히 사위어갔다. 그러면서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위와 장이 아파서 소화가 되지 않았으며 음식물을 섭취할 수 없었다.
상처가 난 입안은 아물질 않았고, 그로 인해 복용한 약물 부작용으로 불면, 초조, 불안, 가슴 두근거림의 증상이 찾아왔다.
음식물 섭취를 할 수 없으니, 일어날 수가 없었고, 내 몸은 한없이 땅속으로 꺼지는 듯했다.
열이 났고, 정신을 차리기가 힘이 들었다.
정신없이 아팠다.
몸이 너무 아프니, 내가 처한 심정적 어려움은 한 켠 으로 밀어둘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앓고 나서 땅을 딛었더니, 신발 밑창에 닿는 땅의 감촉이 낯설었다.
땅이 우뚝 버티고서 내 발을 밀어내는 듯했다.
바람에 비처럼 날리는 꽃잎들의 잔치도, 따사로운 햇살의 감촉도,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의 감촉도 낯설기만 했다.
아이가 감당하기 힘들었을 많은 일들...
이라고 했다.
책상 너머에 앉은 의사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은 말이었다.
건조하고도 사실적인 표현이었다.
당신이 불쌍하다거나, 안됐다거나, 공감 간다거나 따위의 말도 아니었다.
그저, 어린아이가 감당하기 힘들었을 일들 이라고만 할 뿐이었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무장해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말 한마디에 나를 짓누르던 책임감의 무게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마음껏 아플 수 있었다.
단 한 점의 감정도 섞이지 않은 객관적인 그 말 한마디로 인해 나는 매몰되어 있었던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말은 나를 벗어나게 하는 말이었으며, 동시에 내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말이었다.
아픔의 무게에 짓눌려있던 스스로의 모습을 한 발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그 아픔 모두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순도 100%의 고통을 나는 그 어떤 결심이나 다짐도 없이 그저 받아들였다.
실컷 아파했다. 온전히 아파했다.
그 무게는 처음부터 내가 대신할 수 없었던 것이었으며, 그 무게를 감당해내지 못한데 대한 죄책감은 내 잘못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아파야 할만큼 아파야 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나를 위해서 순전히 아플 시간을 허용했어야 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의무나 기대, 체면 따위는 벗어던지고 온.전.히 아프기만 할 시간을 주어야 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충분히 아팠다.
그만 아파하라고, 애처럼 굴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다. 왜 아픈거냐고 묻지도 않았다.
아프도록 내버려뒀고, 오직 통증과 고통만 보았다.
나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통증에 머물러있었고, 몸이 회복되기 시작하자 마음이 저절로 흘러가고 싶었다.
그렇게, 도도한 강물처럼 나는 흘러가고 싶어졌다.
머무르는게 아니라 흐르고 싶었다.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