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존재를 부정하다.

존재의 부정

by 흔들리는 민들레




모든 과일에는 과육을 감싸고 있는 껍질이 있다.

우리의 마음은 과일처럼, 겉껍질을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껍질이 자신의 진짜 마음인 줄 알고 살아간다.

진짜 자기 마음의 핵은 겉껍질이 아니라, 과육이 아니라, "씨" 이거나, 또는 보이지도 않는 무의식이다.



정신과적 상담과 치료는 껍질과 과육을 모조리 벗겨낸 "씨"를 대면하는 과정이다. (또는 씨 너머의 무의식을 대면하는 과정이거나)

인간은 많은 사회적 가치나 의무, 고정관념에 휩싸여 살아가기 때문에 자신 마음의 핵심인 "씨" 만을 온전히 바라보기가 힘들다.

스스로 생각하고 정의 내리는 것조차도 많은 사회적 가치들이나 의무에 지배를 당한채 (스스로 지배를 당하길 선택했건 아니건 간에) 내리는 결론들인 경우가 많다.



스스로 결론 내리고 이름을 지어준 마음의 핵심이 아니라 본능적인 마음의 날 것 그대로를 바라보는 과정은 무척 혼란스럽고 고통스럽다.

무엇이, 어떤 것이 진실인지 혼란스러운 것이고, 수십 년간 함께 살아오며 잘 안다고 자부해왔던 나 자신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겠고, 어떤 모습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도 섣불리 결정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전문가는 질문이라는 칼로 천천히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내고 과육을 하나하나 벗겨내고, 마침내 드러난 "씨"를 보게 한다.

나는 전문가와 함께 그 씨를 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것을 바라본다.

저게 내 마음의 핵심이라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느낀다. 몹시 낯설다.

어디서 누가 먹다 남긴 것을 주워온 것 같으며 내 마음이 아닌 것 같다. 생각했던 것보다 몹시 서툴고, 미숙하며, 아름다운 모습도 아니다.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다.

나는 전문가에게 고개를 가로젓지만 그는 흔들림이 없다.

결국 나는 그 "씨"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여태껏 가져왔던 굳은 신념들을 해체해야만 하는 과정들을 겪는다.



난 성숙한 어른이니까. 난 극복할 수 있으니까. 많은 시간이 흘렀고, 더 이상 그것으로 아프고 싶지 않으니까.

마음속 깊은 보이지도 않는 어딘가쯤에 잘 넣어두고는 잊어버려야 한다는 굳어진 생각들을 해체해야 하고, 마음의 그 "씨"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통증을 예견하면서.




그것을 바라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무척 아프다.

아프기 싫어서, 아픈 게 고통스러워서, 여태껏 보이지 않는 곳에 넣어두곤 열어보길 거부해왔던 감정을 꺼내서 껍질과 과육을 모조리 제거한 채, 보고 느끼고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는 것. 돌아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어떤 편집 없이 있는 그대로 그것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이다.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내게 아플 시간을 주는 것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언어는 그 성질상 뇌와 신체의 애매한 상태를 어느 한쪽으로 고정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것을 확정하는 순간, 남은 가능성은 부정하게 된다.
우리는 한쪽을 선택했을 뿐인데. 선택한 쪽이 모두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언어가 실재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지만 표현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나는 말로 생각한 대로 존재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기만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현상이 상담을 할 때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내담자가 자기의 불안하거나 우울한 기분을 묘사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분명 얼굴을 찌푸리고 주변 사람에게 짜증을 내긴 하는데 스스로가 우울하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한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다리를 덜덜 떨어도 자기가 불안하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불안, 우울을 표현하는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러한 증상들로 인해 고통을 받을 뿐,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낼 수가 없다.
언어 지능이 높지 않아 표현력이 부족한 사람도 그럴 수 있지만 반대로 너무 말을 잘하는 사람도 많다. 자기 내면의 감각을 탐색하여 거기에 스스로 이름을 붙이고 나와 삶과의 관계를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은 사회에서 제공한 생각들
예를 들면, `사나이는 울지 않는다.` `나는 착하고 열심히 살았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 같은 것으로 내면을 채운다. 그러고는 뒤늦게 뇌가 한계에 이르러 경보를 울리고 몸에 신호가 와서야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설명할 언어가 없으니 혼란스러울 것이다.

-나라는 이상한 나라 中-









우리가 하는 생각과 말들이 정말로 우리의 전부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내가 맞는지, 나인 것이 확실한지 고민해봐야 한다.

혼자의 힘으로 알 수 없다면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다 어느 순간 뇌가 신호를 보내 몸의 통증이 제어되지 않을 때, 그제야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들여다본 나처럼 되기 전에, 많은 이들이 마음속 "씨"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