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나의 본모습이며, 실오라기 하나도 걸쳐놓지 않은 온전한 나라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말로는 `있는 그대로의 나` 를 그 자체로서 사랑한다 해놓고, 사실은 그러지 못하고 있었음을 통찰하던 순간, 나에 대한 혐오감이 밀려왔다.
혐오감마저도 받아들여야 했다.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감정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모조리 다 받아들여야 했다.
자신을 인정한다는 것이 그토록 힘든 일인지 몰랐다.
세상에서 긍정적이라 칭해지는 감정만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감정들은 숨기고 인정하지 않아 왔던 날들과는 작별을 해야 했다.
나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고, 존재 그 자체로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나를 그토록 고통스럽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를 미워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사랑하는 척하면서 증오하고 있었다.
하나뿐인 엄마를 잘 보살피고 있지 못하다는 죄책감은 나 자신을 증오케 했고, 나를 패배자로 만들었고, 좌절감에 빠지게 했다.
엄마는 자신의 죄책감을 내게 이식시켰다.
이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내게 투영시켰다.
나는 그 죄책감을 그대로 이어받아 그녀를 잘 돌보지 못한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원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죄책감이 내 것이 되었다.
죄책감은 여러 효과를 냈다.
말을 잘 듣는 어른스러운 아이를 만들 수 있었으며,
그녀 자신의 의견을 더 잘 관철시킬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기도 했다.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하는 고생`은 어찌 보면 그녀의 인생을 숭고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너무나 괴롭고 고단했던 인생에 죄책감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죽도록 미웠지만, 지금은 안다.
그것은 그녀의 감정이지 내 감정은 아니라는 것을.
그녀로부터 나온 죄책감은 그녀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는 그녀의 남편도 부모도 아니라는 것을, 그녀의 남편이나 부모가 가질법한 감정이 내 것이 될 수는 없음을 이젠 안다.
과거엔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혼돈 속에 있다.
겉껍질이 모조리 벗겨진 내 무의식을 목격하고 난 이후, 내가 느끼는 감정이 온전한 내 것인지 아닌지 내 생각이 온전한 내 생각이 맞는 것인지 아닌지, 길을 잃게 되었다.
내가 보는 내가, 내가 맞는 것일까?
그것이 나인 것이 확실한가?
전문가는 말했다.
길을 잃었다는 자각이 중요하다고. 그래야 길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고.
나를 찾아가는 여정은 이제 시작됐다.
길고도 험한 수많은 길들을 걸어왔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 나로 하여금 더 단단한 마음을 갖게 한다.
가보자. 나를 찾으러.
마음 단단히 먹고 찾아가 보자.
그 길이 어디든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니까.
인간이 가진 중요한 의무는, 부모가 가르쳐준(그게 좋든 나쁘든) 인간에 대한 관점, 사회가 가르쳐준 관점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자신의 위치와 삶의 목표를 돌이켜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참자아가 발생하며, 부모와 사회를 넘어선 이후에는 또다시 자신이 만들어낸 관점을 극복하는 과정이 필요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나라는 이상한 나라의 영토가 점점 더 확장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