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길, 그 첫 번째.

무의식을 마주하다

by 흔들리는 민들레




일본의 와세다 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가토 다이조는 자신의 저서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에서 심리학자 프로이덴 베르거가 개념을 밝힌 탈진 증후군에 대해 언급한다.

탈진 증후군은 나쁜 선택과 좋은 의도가 낳은 결과이며, 선택이 나쁘면 의도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자기 파멸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자신의 위치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가장 위험하다고 그는 말한다.

물속에서 헤엄을 치려고 발버둥 치는 원숭이는 자신의 위치를 모르는 원숭이며, 헤엄을 잘 치겠다는 것이 좋은 의도임에도 불구하고 이 의지는 지옥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하는 가이드로 작용한다고 한다.





나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실패, 우울, 분노, 짜증과 같은 감정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습관을 녔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역할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렇지 않은 역할은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러한 긍정과 부정적인 감정들은 대부분 어디에서 기인된 것일까?

나는 그것이 많은 부분 사회적 가치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중적인 가치에 부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것과 다른 모습을 지닌 사람이 평범함과는 다르다고 느낀다.

평범함의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것 역시 외부에서 온다. 다른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특별한지 아닌지 가늠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을 인지하는 방향이 외부로 향하고 있으면 그 기준이 세상에서 인정하는 것들을 지향하게 되고, 그 결과는 자신의 소외로 나타난다.






가토 다이조는 자신의 소외를 원숭이가 물속에서 헤엄치는 일로 비유했다.

세상은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먼저 존재하는 세상에 태어난 것 같지만 실은 우리가 태어났기 때문에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인간에게 세상은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세상이 먼저인가, 나 자신이 먼저인가?

세상은 나로부터 시작된 것일까, 세상으로부터 내가 시작된 것일까?

어떤 사람은 전자의 생각을 지니고 살 것이고, 어떤 사람은 후자의 생각을 지니고 살 것이다.

다른 이들이 어떻든 내 경우에는 후자의 생각을 지니고 살아왔고, 그 결과 지독하게 행복하지 않았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원숭이처럼, 나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열심히 헤엄만 치다가 결국은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왜 나만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내 안에 있었음을 처음엔 알지 못했다.

내가 물속에서 헤엄칠 수 없는 원숭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데만 30여 년이 걸렸다. 이 정도면 참 끈질기게도 나 자신을 부인한 셈이다.

세상에선 파랑새가 가까이 있다고들 하는데, 가까이 있기는커녕, 심지어 나 자신 안에 있었다는

Trick을 부린 신에 대한 배신감(?) 마저 들었다.





전문가와 나 자신의 무의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면서, 무의식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가졌던 죄책감이 온전히 나로 인해 시작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죄책감으로 인해 내가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온전한 나를 바라보고, 내가 하는 생각이 나의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내가 지금 서있는 이곳은, 나를 부인하던 시절을 지나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된 곳이다. (도착한 지 얼마 안 됐다)

내가 물속에서 헤엄칠 수 없는 원숭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보니,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인 사람보다 받아들이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위치란, 사회적 위치가 아니라 심리적 위치다.

작은 조각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겠다는 사람,

자기보다 한참이나 큰 옷을 입고 계주를 뛰겠다는 사람,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둘레길을 달리겠다는 사람, 아무런 장비도 없이 깊은 물속으로 스킨스쿠버를 하겠다는 사람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가 자신의 내부에서 기인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의식은 알지도 못한 채, 세상에, 외부의 가치에 지향점을 두고는 그것이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무의식을 탐구해야 한다.

내가 원숭이인지 물고기인지 나의 심리적 위치를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만 삶은 온전한 내 것이 되는 것이다.

내 삶의 주인공이 비로소 "내"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영화 트루먼쇼의 트루먼처럼 누군가가 꾸며낸 세상을 내 의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의지로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