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채울 수 있다.
불면증, 우울증은 생명력이다.
수많은 불면의 나날들을 거친 나는 이제 잘 자고 있다.
왜 피곤한 하루 끝에도 온전히 쉴 수 없었는지,
불면이 무엇 때문인지, 매일매일 어떻게든 불면을 이해해보려고 애를 썼다.
습도 조절도 해봤고, 잠자리에 들기 전 수면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들도 고려해봤다.
온도가 안 맞는 것인지, 블루라이트 때문인 건지, 그 모든 방해가 될 수 있는 요소들을 다 제거해봐도 불면은 지속되었다.
미치고 팔짝 뛸듯한 불면의 나날들에 가슴 두근거림이라는 증상마저 더해지고 나서야, 그 두근거림이 심호흡만으로, 나의 결심 만으로 조절되지 않음을 알게 되고 나서야, 이 불면은 신체적인 영역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몸이 내게 구조신호를 보내다.
불면증은 내 몸과 정신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증거다.
수면습관이든, 정신적인 문제이든, 내가 나를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 신호를 무시할 것인지 아니면 그 신호가 왜, 발생하는 것인지 스스로의 성찰이 필요하다.
우울한 것은 또 어떤가.
너도 나도 살기가 팍팍한 세상이다. 취업은 어렵고 노년층의 빈곤율은 상승해 간다. 젊은 층이나 노년층이나 사회를 짊어지고 있는 중년층이나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아이들, 모두가 다양한 이유로 삶이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삶은 윤택해졌지만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빈곤해졌다.
누군가가 우울증이라고 하면, 아마 너도 나도 다 우울증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정신과에서 치료받고 약 먹고 있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생각한다.
`약을 먹어야 될 정도로 심각하구나...` 하고.
많은 이들이 바쁘다는 이유나 사회적 인식 때문에 우울증 치료를 미루기도 하고, 더불어 좋은(?) 전문가를 만나지 못해서 자신의 마음을 방치(?)한다. 그렇다면 좋은(?) 전문가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오랜 기다림은 나쁜가?
예약제로만 운영되는 병원은 내담자에게 일정 시간을 확보해주는 것이다.
전문가가 나의 얘기를 들어줄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담을 원할 때는 기다리고자 하는 다짐이 필요하다. 내게 시간이 주어지듯 다른 내담자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공감해야 한다. 나만 괴로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되는 순간 묘한(?) 위로를 얻게 되기도 한다.
지름길이 더 좋은가?
나의 마음을 이야기했을 때, 곧바로 그것을 해석해주고 해결책을 던져주는 전문가의 말에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전문가가 내 마음을 공감해주어야 나도 전문가의 말에 공감을 하기 시작하고 스스로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스스로 방법을 찾아나가는데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것이 분석가의 역할이다.
분석가가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 몫이다. 내 인생이고 결정은 나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설령 실수라고 하더라도 실수를 통해서 더 성장하게 된다.
아무리 좋은 전문가라도 내 인생 전체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내 마음에겐 지름길보다는 먼길이 더 좋다.
가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꽃도 보고, 천천히 흐르는 강도 보고, 파란 하늘도 보아야 한다.
머리칼을 흐트러트리는 바람도 느껴봐야 한다.
그래야 내 마음을 더 많이 관찰할 수 있다.
마음의 분야에서는 (경우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충분한 기다림을 "각오" 해야 한다.
우울증은 반드시 나쁜가?
우울증에 걸린 연예인 누군가가 자살을 하고, 우울증에 걸린 아이 엄마가 자살을 했다는 뉴스가 종종 등장한다.
우리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우울증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반드시 나쁜 것인가?
우울증은 인간의 몸이 보내는 생명의 신호다.
인간의 생명력이다.
내 마음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들여다봐야 한다는 생명의 신호인데, 그 생명 신호를 무시하면 결국 죽음으로까지 이어진다.
사람들은 높은 장벽을 쳐놓고 철저히 자기 자신을 숨기거나, 자신이 장벽을 쳐놓고 있는 건지도 모르거나, 자신의 무의식은 전혀 알지 못한 채 괴로운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기도 한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채운다.
냉장고를 채우고 일을 해서 금방 비워질 통장을 채우고 지식으로 뇌를 채운다.
인간은 익숙하게 많은 것들을 채우지만, 정서를 채우는 일에는 서툴다.
어떻게 하면 정서를 채울 수 있을까?
자기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어떻게 들여다봐야 할까?
자신의 생각에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지? 그 생각은 "왜?" 나왔을까? 질문에 계속 꼬리를 달고,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은 비워내는 과정이고 동시에 채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컵에 물이 가득 차면 흘러넘치듯, 우리의 내면도 그러한 방식으로 비움과 채움을 반복하지 않으면
자신이 생명의 신호를 보내는 줄도 모르고 결국 스스로를 죽이게 된다.
"왜?"가 익숙하지 않다면, 질문을 건네는 책을 읽는 게 좋다.
자기 계발, 경제 관련 서적은 정답을 알려주지만,
문학은 우리에게 좋은 질문을 건넨다.
빠름이 익숙해진 우리의 삶에 절실히 필요한 건 어쩌면 정답이 아니라 좋은 질문인지도 모른다.
좋은 질문은, 나를 성장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