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살아가야 하는가

by 흔들리는 민들레




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인생의 반평생 이상을 삶의 의미와 내 존재의 타당성을 찾아 헤매며 살았다.

외로움 소외감 우울감 분노 슬픔 무기력 속에서 허덕이며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왜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스로에게 질문을 하며

매년 새로운 유서를 썼다.







1.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습니다.

2. 나의 사용할 수 있는 장기 모두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겠습니다.

3. 나의 재산은 아이들에게 증여하겠습니다.

4. 나의 장례식에선 곡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신 맨델스존의 피아노 독주곡을 틀어주십시오.

5. 나의 장례식은 하루만 합니다.

6. 장례식장에는 국화 대신 백합을 놓아주길 원합니다.

7. 매장의 방식이 아닌 화장으로 하늘에 뿌려지고 싶습니다.





가족에게 따로 남기는 말은 없었다. 평소 하던 말들이 곧 유언이었다. 매일매일 유언을 하는 심정으로 살았다. 숨지는 순간 못다 한 말들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숨지는 순간 더 안지 못했음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나의 하루는 보이지 않게 쓰여지는 유서와도 같았다. 나는 왜 그렇게 살았을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고통스러운 삶을 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왜, 나는 왜,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과학도, 종교도, 철학도, 사회학도, 문학도, 그 어떤 학문도 내 존재의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고 그 누구도 내 존재의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존재의 의미가 없었으므로 삶의 의미 또한 찾을 수가 없었다.

삶에 미련이 없어 늘 유서를 지니고 다니는 스물다섯의 청년, 고통스럽다 못해 그 고통이 만성화되어 감정마저 잃어버린 젊디 젊은 친구. 자신이 보육원에서 자란 것을 숨기느라 거짓말을 해야 했고 그 거짓말이 들통날까 불안에 떨어야 했던 사람,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주변인으로 소외되어 살아가며, 너무 외로워서 친구들의 무리한 요구조차 거절을 못하는 앳되고도 건장한 청년.. 내게 존재의 의미를 가르쳐 준 것은 어렵고도 심오한 학문이 아니라 아파하는 한 명의 사람이었다.





그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사람, 부적절하게 여기며 숨기기 바빴던 외적인 조건들과 내적인 조건들.. 너무 외롭고 버림받을까 불안해 무리한 요구들마저 수용해버리고 말았던

사람... 그게 나였다. 그 모든 감정들의 밑바닥에는 나는 <부적절한 존재>라는 부정적인 자아상이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살아가야 할 가치가 없으며

그랬기에 삶의 의미를,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강 한이라는 그 청년은 계속 내 곁을 맴돌았다.

청소를 할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세탁물을 갤 때도, 책을 볼 때도 곁에 있었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책을 읽다가, 글을 쓰다가 눈물을 닦았다.

내가 당신의 외적 자원이 되어 주겠다고 한 오은영 선생님의 말에 그는 환하게 웃었다. 너무나 자기 다운 웃음이었다. 그제야 그는 스물다섯 보통의 청년이 되었다. 그 맑은 미소를 보고 나는 깨닫고야 말았다. 그의 존재의 의미를.

그는 삶에 더 이상 미련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의 아프고도 고통스러운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는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할까를 생각했다. 그 생각의 이면에는 그가 살아있기를, 또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저토록 고통스러움에도 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생각의 끝에서 만난 것은 그의 맑은 미소였다.

그의 존재의 의미, 그의 삶의 의미는 바로 그라는 사람 자체였다.

그가 어떻게 자랐는지, 또 어떤 외적인 조건과 내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는지는 존재의 이유나 의미가 될 수 없다. 존재의 의미는 유일하고 단일하다. 가 그라는 것, 그 자체가 존재의 의미이자 삶의 의미인 것이다.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었다.

내적이든 외적이든 나아지는 인간이고 싶었다. 가 나여도 괜찮았던 순간은 없었다. 늘 내가 싫었고, 나라는 존재는 부적절했고 그래서 외로웠고, 그래서 타인에게 내 권리를 내어주면서 상처받았다. 생의 절반 이상을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며 살아온 내게 그 정답을 알려준 것은, 어떤 성인도 고차원적인 학문도 아니었다.

내게 그 정답을 알려준 것은 아파하는 한 명의 사람이었다. 그의 존재의 의미가 그 자체이듯이

나라는 사람의 존재의 의미 또한 나 자체인 것이다. 내 존재의 의미, 내 삶의 의미는 바로 나였다.

내 존재의 의미는 가족도 친구도, 돈도 명예도, 직업도 아니다. 내 존재의 의미는 사랑도 믿음도 희망도 아니다. 내 존재의 의미는 외부에 있지 않다. 내 존재의 의미는 바로 내 안에 있다.

무엇일 필요도, 무엇이 아닐 필요도 없다. 누구일 필요도 또 누가 아닐 필요도 없다. 내 주변에 무엇이 어떤 것이 있든 그것은 외부환경일 뿐이며 그 외부환경은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결정할 수 없다. 내 환경은 내 삶의 의미를 결정할 수 없다. 내 삶과 존재의 의미는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힘들게 번 돈은 낭비할 수 없고, 힘들게 얻은 깨달음은 결코 잊지 못한다. 이 깨달음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니,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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