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오랜 꿈이었다.
고등학생일 때부터 출판사에 투고를 했고 소설을 즐겨 읽었다. 집현전이라는 도서 대여점에서 많이 빌려 읽었는데 만화책도 읽었지만 소설책도 읽었다. 나는 어딜 가든 조용한 아이였고 그래서 친구들과 몰려다니기보다 자주 혼자 있었다.
그때 항상 나와 함께 있어준 친구가 책이었다.
중학교 때는 짝사랑하던 오빠가 있었는데, 그를 그리워하면서 쓴 일기장을 소포로 보내서 고백을 했다. 물론, 차였지만.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집안 사정으로 전학을 자주 다녔는데 그러다 보니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너무 화가 나고 억울했는데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일기장에 그때의 상황과 내 기분을 상세히 적었다.
일기가 진술서가 되어버리자 일기장 검사를 하시던 담임선생님이 그걸 보시고 주동자와 피해자인 나를 공식적으로 소환하셔서 그 아이에게 사과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시 또 이런 일이 있다면 부모님을 소환하겠다고 하셨다. 그 이후로 나는 아이들 사이에서 신박한 방법으로 선생님에게 고자질을 한 또라이가 되었고 아이들은 더이상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공부는 하지 않았다. 소설을 읽는 것과 내 마음을 쓰는 게 좋았다. 아무도 없었지만 책과 종이는 언제나 곁에 있었다. 그때 읽은 소설들의 제목은 기억이 안 난다. 주로 외국에서 쓰인 로맨스 소설이었던 것 같다. 로맨스라 가끔 주인공들의 농밀한 행위들이 나올 때면 부끄러워 책을 덮고 주변을 살펴봤던 기억이 난다.
첫 장난감은 아빠가 쓰던 옥편이었는데 옥편에 나온 한자들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 넣으며 놀았고, 첫 책은 아빠가 사준 <콩쥐, 팥쥐> 였는데 콩쥐가 너무 슬프고 가여워서 읽고 또 읽었다.
직장생활을 하다 글이 쓰고 싶어 문예창작과에 진학을 고려했지만 집안의 반대와 직장 때문에 쓰지 못했다. 두 아이의 독박 육아를 하면서 읽고 쓰는 일은 엄두를 낼 수 없어서 큰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2, 3학년까지는 읽고 쓰지 못했다. 대략 십여 년간을 쓰지 못하다가 작은아이까지 유치원에 입학하고 나서야 작가교육원에 가볼 수 있었다. 그곳에 가고 나서도 쓰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낮에는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밤에만 써야 했는데 잠을 못 자니 죽을 것 같았다.
대학 나온 사람들도 줄줄이 취업에서 떨어지는 세상에서 너 같은 게 무슨 글을 쓰냐고, 엄마가 고생해서 그만큼 키워놨으면 은혜를 갚을 줄 알라고 허파에 바람만 잔뜩 들어서 정신없는 짓을 한다고, 내 꿈과 존재 자체를 비난받았을 때가 있었다. 뭐 물론, 지금까지의 전 생애가 자아 훼손의 과정이었지만 (그때 특히 심하게 훼손되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그때나 지금이나 읽고 쓰는 일은 나에게 숨 쉬는 일처럼 필수적인 일이다.
쓰지 못해 슬펐고 비난받아 아팠다. 그때 내게는 꼭 필요한 말이 있었다. 그 말을 이제는 내가 해주려고 한다.
" 빛나지 않아도 네 꿈을 응원해, 민들레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