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먼저인가, 내가 먼저인가?

by 흔들리는 민들레








큰아이가 밤 11시 30분에 냉장고를 뒤적거렸다.

덕분에 잠이 들려던 작은 아이가 깨버렸다. 작은아이는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는다며 새벽 2시 반까지 자지 못했다. 덕분에 나는 새벽 2시 반까지 작은아이와 강제 수다(?)와, 강제 놀이(?)를 해야 했다.







큰아이에게 되도록이면 밤에는 소음을 내지 말라고 야식을 먹으려면 11시 전에 먹으라 했더니 예상대로 거부반응을 보였다. (중학교 2학년이다)



/ 금요일이잖아요~ 늦게 자고 야식도 먹는 날이잖아요. 왜 나만 맨날 조심해야 하는데요?

/ 다른 가족들이 자고 있을 땐 조심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

/ 조심했어요. 소리 안 나도록 했다구요.

/ 그냥 네, 하면 안 되는 거니?

/ 엄마도 주말 아침에 나 자고 있을 때 딸그락거리면서 소음 내잖아요.

/ 그때는 모두가 일어나는 시간이잖아.

/ 전 그 시간이 자는 시간이에요.

/ 그럼 다른 가족들이 배고파도 너 깰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 왜 나만 배려해야 하는데요.








큰 아이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은 작은아이 덕분에 강제적(?) 아침형 인간이 되었는데, 큰 아이는 올빼미형 인간이 것을 수정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이와 대화를 나눈 다음날 아침, 아침밥을 차리는 게 조심스러워졌다. 칼질도, 식탁 위에 그릇을 놓는 일도, 수저 젓가락을 내려놓는 일도, 설거지를 하는 일도 조심스러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가 이기적으로 느껴져서 미웠다.

나는 왜 아이를 미워하고 있을까. 아이가 네.라고 하지 않아서? 다른 가족을 배려하지 않아서?











나에게는 그것이 다수와 소수의 문제였다.

너는 하나고, 나머지는 다수다. 너는 소수에 속하니 다수에 따라라... 나는 아이가 다수에게 맞추지 않았기 때문에 이기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출발점부터가 달랐다. 나는 가족에게 기준을 두었고 아이는 자기 자신에게 기준을 두었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딸은 이기적이기도 아니기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기준이 자기 내부에 있다고 해서 아를 비난할 수만 있을까?





아이와의 대화로 이미 존재하는 세계에 내가 던져진 것인가 내가 존재하므로 세계가 생겨난 것인가에 대한 해묵은 혼돈이 건드려졌다.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세계와 나>의 관계의 정의는 달라질 수 있다. 내가 아이를 세상에 오게 했다고 해서 아이가 나의 기준대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 먼저 존재했고 아이가 나중에 존재하기 시작했더라도 그것은 나의 세계일 뿐이다. 아이의 기준에서는 이미 있는 세상에 자기가 던져진 건지 아니면 자기가 태어남으로 세상이 생성된 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와의 대화로 우주에만 무수한 행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지구 상에도 타인이라는 무수한 행성이 있다는 것을, 그러므로 기준점은 어디에도 찍을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내 선생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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