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숲길을 걸었다.
큰 나무들이 거대한 무리를 이루고 있는 그곳에 바람이 불자 사라락 사라락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어 나무들을 올려다보니 수많은 잎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잎들은 나무의 기억이다.
바람이 불던 날의 기억, 비가 쏟아지던 날의 기억, 햇빛이 따사롭던 날의 기억, 소리 없이 포근포근 눈 내리던 날의 기억, 더위에 지친 사람이 잠시 쉬다 간 기억, 슬픔에 빠진 사람이 실컷 울고 떠난 기억, 누군가가 오거나 떠난 기억들, 무엇인가 세워지고 무너진 기억들 하나하나가 나뭇잎이 된다.
나무의 기억은 잎에 새겨진다.
바람이 잎사귀들을 흔들면 나무는 지난날들을 떠올린다. 나뭇잎들의 사라락 소리는 백 년이나 십 년의 기억들이 떠오르는 소리이다. 나무는 모든 것들을 묵묵히 기억한다. 당신도 기억하고 나도 기억한다. 내가 교복을 입고 뛰는 모습도 기억하고 당신이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모습도 기억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산책하는 모습도 기억하고 당신이 면접을 보러 달려가는 것도 기억한다. 내가 퇴근길의 피로를 메고 터덜터덜 걷던 것도 기억하고 당신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것도 기억한다. 나무는 모든 것을 목격하고 기억한다.
그래서 외로울 때는 나무를 올려다본다.
모두가 나를 잊거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나무는 나의 모든 것들을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라락 사라락, 나무가 모든 것들을 기억해내는 소리가 난다. 괜찮다 괜찮다, 어떤 기억도 괜찮다고 나무가 내게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