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거울을 보다 못 보던 점을 발견했다.
눈꼬리쯤에 생긴 점은 오랜 시간 동안 점점 커지더니 급기야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눈 바로 옆이어서 인상을 좌우하기에 피부과에 갔더니 점이 크고 깊어서 한 번에 안 빠질 수도 있다고 했다.
레이저로 점을 제거하고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점이 최근에 같은 자리에 또 생겼다. 또 생겨났다기보다는 다시 올라왔다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이다. 그래서 또 다시 점을 뺐다.
날이 더워 땀은 나는데 테이프를 붙이고 있는 게 불편하고 번거로워서 흉터가 빨리 아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테이프를 매일 갈아붙이며 넓은 부위가 아닌데도 대체 왜 빨리 아물지 않는 건지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점의 너비보다는 뿌리가 깊어서 아무는게 오래 걸리는 듯했다.
아직도 점을 뺀 곳은 완벽하게 아물지 않았다.
내 바람과는 상관없이 눈 옆의 흉터는 자기만의 속도로 회복을 하고 있다.
상처 회복의 속도는 내 소망이나 바람과는 상관이 없다. 그건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다.
내가 아무리 불편하고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상처는 자기만의 속도로 회복을 한다. 상처가 회복되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지는 알 수 없다. 의사 선생님도 대략적으로만 예측할 뿐 정확히 말할 수 없다.
사라지지 않고 자꾸만 다시 생겨나는 눈 옆의 그 점이, 그 점이 사라진 흉터가 나의 슬픔같이 느껴졌다. 빼내고 빼내도 또다시 생겨나고야 마는 슬픔, 그 슬픔의 기원에 대해 생각했다.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좌절된 내 안의 깊은 갈망은 조금씩 회복되어가고 있지만 그 뿌리마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빼내고 빼내도 다시 올라오는 눈 옆의 깊은 점처럼 내 피부 아래에, 내 혈관 안에 아직도 있었다.
이 깊은 슬픔이 언제쯤 사라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담담히 기다릴 뿐이다. 나는 오늘도 거울을 보며 눈꼬리 점에 재생테이프를 갈아 붙인다.
때로 어떤일들은 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은 작은 점일 뿐이라는 역설적인 진리 또한 이 점으로 발견한다. 이 점에는 그런 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