닦아내는 일.

by 흔들리는 민들레








물을 마시기 위해 정수기의 버튼을 눌렀다.

잠깐 한눈을 판 사이 물이 넘다. 넘치다

못해 정수기 주변과 주방 바닥에까지 물이 흥건해졌다. 어찌 된 일인가 싶어 정수기를 살펴보니 한 컵 버튼을 누른다는 게 그만 500ml 버튼을 른 것이다. 컵에서 흘러넘친 물은 주방 서랍을 지나 바닥까지 흘다. 바닥지 흘러버린 흥건한 물을 마른걸레로 닦아내고 서랍 안의 일회용 젓가락이나 빨대 같은 것들을 꺼내어 닦 버릴 것들은 쓰레기통에 버렸다.














살아가다 보면 언제든 어느 때든 흘러넘치는 것들이 있다. 국도 끓어 넘치고, 죽도 끓어 넘치고, 찌개도 끓어 넘친다. 국수도 끓어 넘치고 라면도 끓어 넘치고 전골도 끓어 넘친다.

넘치면 닦아내고 꺼내서 말려야 할 것이 생긴다. 서랍 안에 일회용 빨대와 나무젓가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꺼내 닦으며 빨대는 어느 만큼 이 있는지 나무젓가락은 대략 몇 개쯤이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처럼 때로 흘러넘쳐 버린 것들은 내 안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부분을 알게 한다.












불안과 우울이 넘치면 불안장애나 우울증이라고 하지만 동시에 넘쳤기 때문에 닦아내며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게 된다. 불면이 넘쳐버려 불면증이 되지만 동시에 넘쳐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닦아내며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게 된다.

분노나 증오와 혐오 같은 감정들이 넘치면 넘쳐버렸기 때문에 그것들의 존재를 알게 된다. 넘친 것들은 그 안에 어떤 것이 있는지를 보게 하고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넘친 것을 닦아내지 않으면 곰팡이가 생긴다. 서랍 안에 무엇이 몇 개쯤 들어있는지 알 수 없 것이다. 넘친 것을 닦아내는 행위는 그래서 중요하다.

여기저기 흘러넘친 물을 닦아내며 내 안에 무엇이 넘치고 무엇을 닦아내야 하는지를 생각해본다. 서랍 안에 사용하지 않은 수세미 두어 개와 일회용 빨대 스무 개와, 일회용 나무젓가락 서른 개와 냄비받침 두 어 개가 있는 것처럼 내 안에 있는 여러 가지의 것들을 가늠해본다. 내 안에는 무엇이 넘치고 있을까, 어떤 것들을 닦아내야 할까를 가만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