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인 선생님의 우려와 경계를 느꼈다.
나는 왜 그것을 느꼈을까. 왜 그것이 마음에 남을까. 무엇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게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러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불쑥 튀어나왔다.
"삼촌댁에 맡겨졌던 기간이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그 기간이었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맡겨졌고, 많이 불안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의 우려와 경계가 섞인 표정에서 나는 당황스럽게도 삼촌의 얼굴을 떠올렸고, 그의 눈치를 살피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무엇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 나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파악할 것인가를 살피던 어린 시절의 불안해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 몹시, 정말 몹시 당황스러웠다.
내가 느끼던 작은 불안의 씨앗이 거대한 불덩이가 되어 나를 삼켜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또 다른 불안감이 생성되었다.
아무런 연관이 없는 현재의 관계 속에서 그때를 떠올리는 내가 너무 싫었고, 떠오른 그때가 몸서리 처지게 싫었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그때의 불안했던 감정들을 털어냈다.
어제 먹은 점심메뉴도 기억을 못 하는 내가,
30여 년 전의 일을 바로 어제 벌어진 일처럼 생생하게 느낀다는 것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내 기억력에 감탄하며 몸서리를 치기를 하루쯤..
이것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은 하지 마.. 그런 아픈 기억은 떠올리지 마... 가 아니라, 그랬어. 난 그때 너무 힘들었고 불안했어. 어린아이가 너무 힘들었을 거야... 그렇게 힘들었던 기억인데 쉽게 잊을 수 없겠지.
라고 받아들였다.
아파서 보기 힘든 나의 모습이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이제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뭔가가 해결되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우려와 경계는 왜 내 마음에 남아서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는 걸까? 우려와 경계가 나에게 왜 그러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일까?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서도 그 우려와 경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불편한 감정이 내면의 밑바닥에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나는 왜 불편한 것일까?
우려와 경계는 나의 감정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이다.
나는 왜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타인의 감정을 불편하게 느끼는가? 왜 그것을 나에 대한 평가로 여기는가? 나는 타인의 평가가 불편한 것인가?
타인의 평가는 곧 나인가?
타인으로부터 내려지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나타낸다. 무시하거나 힘들어하거나.
나는 후자에 해당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는데, 그러한 반응은 주로 가까운 사이(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의 주변인)의 부정적인 평가에 대해 일어나는 반응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기분인 것인가? 나는 왜 그 찰나의 표정을 나에 대한 평가라고 받아들이는가? 그것은 내게 큰 영향력을 미칠 만큼의 중대한 평가인가?
대답은 아니오였다.
그분이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전문가이지만, 나는 그분의 말을 믿어야 하겠지만, 그 말이 나 자신보다 먼저는 아니었다.
내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은 내 마음의 소리이지, 평가가 아니었다. 더구나 그는 나를 평가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 찰나의 우려와 경계를 나에 대한 평가라고 받아들이는가?
나는.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것인가?
인정받고 싶은 것인가?
......
.......
마지막의 내 질문에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 망설임은 긍정이었다.
그렇다. 나는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내 인생은 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고단했고, 버려진 느낌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도대체 왜 그렇게 괴로웠을까.
아이의 나도, 청년기의 나도, 중년기에 접어든 나도 왜 늘 같은 느낌에 시달렸을까.
그 괴롭고 비통한 느낌은 채워지지 않은 인정의 욕구였다.
좋은 아이가 되어서 힘든 엄마를 행복하게 해 줘야겠다는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고, 좋은 아내가 되어서 남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고, 좋은 엄마가 되어서 아이들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고, 좋은 며느리가 되어서 시부모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다.
그 욕구는 애초부터 채워질 수 없는 욕구였던 것이다. 채워질그릇이 없었다.
그 모든 욕구들에는 '내'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있었다면 그 욕구들은 채워질 수 있었을까?
설령 내가 있었대도 욕구는 채워질 수 없었을 것이다. 타인의 수많은 욕구들을 채워줌으로써 인정받고자 했던 나의 욕구는 어디에서 기인된 것일까?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
사랑받으며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했던 나의 무의식이었던 것이다.
내가 없어서,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인정받으며 존재의 확인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살고 싶어서, 살아있고 싶어서 발버둥 치느라 내 인생은 그렇게 비통했던 것이다.
생각의 수심 끝까지 내려가니 참 아프다.
앞으로 어떻게 살겠다는 결심을 나열하지 않겠다.
그저 아파하는 나 자신을 보고 있을 생각이다.
참 아프구나... 하고 같이 있어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