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추는 거울 "왜" 라는 질문

감정을 묻다

by 흔들리는 민들레




나는 지금 어떤 감정인가?





기쁜가? 슬픈가? 화가 나는가? 행복감이 충만한가? 신이 나는가? 울고 싶은가? 우울한가? 사랑받고 싶은가? 인정받고 싶은가? 초조한가? 불안한가?

인간의 감정은 다양하지만, 우리는 보통 감정을 섬세하게 분류하진 않는다.

그때그때의 감정은 그저 창밖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처럼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채 빠르게 흘러가버리기도 한다.





드라마 극본 쓰기를 배울 때 가장 처음 배운 것이 "왜"였다.

"왜" 쓰려고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는 일을 가장 처음 배웠는데, 그것은 소재를 정할 때도, 주제를 정할 때도, 스토리의 구조를 짤 때도 반드시 필요한 질문이었다.

소재, 주제, 스토리, 그 모두를 관통하는 핵심은 "왜"였다.

나는 왜 그 소재를 정했는가?

나는 왜 그 주제를 정했는가?

나는 왜 그 소재와 주제로 글을 쓰고 싶은가?

나는 왜 그러한 스토리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가?

나는 왜 그런 결말을 원하는가?

나는 왜 그런 인물을 원하는가?

인물은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가?

인물은 왜 그렇게 말하는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내 글 속 수많은 "왜"를 대답할 수 있어야 했다.

극본을 쓰는 연습을 할 때는 그놈의 "왜"가 그렇게도 원망스러웠다. 솔직히 말하면 지긋지긋할 정도였다. 그냥 좀 느끼는 대로 쓰면 안 되는 건가? 안됐다.

극본을 쓰는 일은 철저히 인간탐구의 영역이었다.

내 발목을 잡고 늘어지던 그 지긋지긋한 "왜"는 지금도 등 뒤에 매달려있다.

이제 "왜"는 습관, 아니 나의 일부분이 되어 버렸다.

덕분에 생각의 수심에서 벗어나기가 힘들게 됐다.

수많은 왜를 대답하지 못해서 나는 더 이상 극본을 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왜" 병은 아직도 고치질 못했다. 왜냐하면 지금도 이렇게 쓰고 있기 때문이다. "왜"는 영원히 나를 따라다니겠지.








알아채기+왜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 내 감정을 그저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내가 아니라 본래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일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앎에 "왜"를 더했다.

지금 느껴지는 감정을 바라보고, "왜"라고 질문할 수 있다. 그리고 대답한다. 내가 느끼는 감정의 실체를 알게 될 때까지 묻고 대답한다.

불편한 감정이 느껴질 때, 이 방법은 나와 관계에 무척 효과적이다.

내가 타인으로부터 불편한 감정이 들 때는 내 안의 어떠한 감정이 건드려졌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한 연습이 어있지 않으면 그 감정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타인은 내 눈에 보이지만 나 자신은 거울 앞에 서야만 볼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손쉽게 타인을 비난한다.

내 감정을 비추어볼 거울은 무엇일까?

바로 "왜"라는 질문이다. "왜"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감정+왜는 내 감정을 거울에 비춰보는 것과도 같다.

나는 왜 화가 나는지, 나는 왜 슬픈지, 나는 왜 속상한지를 깊게 생각하다 보면 감정의 깊은 곳 미처 내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감정이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흔들리는 감정의 파도가 아니라 그 파도 아래에 있는 무의식이다.

우리가 유심히 봐야 할 것은 날 화나게 한 타인이 아니라, 화내고 있는 지금의 내 감정이다.

타인보다는 내가 더 소중하므로.

가족도 사랑하는 이도 소중하지만, 그보다 나 자신이 더 소중하므로.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내가 느끼는 타인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인을 향한 분노는 나 자신을 황폐하게 만든다.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위치를 흔들고, 악화시킨다.

타인에 대한 공격은 나를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나를 공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타인을 향한 분노나 공격은 나 자신을 향한 분노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삶은 바쁘다.

도시는 우리를 재촉한다. 휴대전화는 이걸 사라, 저걸 사라, 여길 방문해라, 저기는 맛집이다, 누군가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세상은 이렇게 저렇게 돌아가고 있다며 끊임없이 울려댄다. 가봐야 할 곳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으며, 만나야 할 사람도 많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에 맞춰 달리느라 현대인들은 참 고단하다.

바빠서 정신이 없어서 당장 눈앞에 벌어진 일들을 해결하느라 정작 자기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을 생략해선 안된다.

감정은 본능이라고 말한 <자존감 수업> 속 그 한 줄에서 세상과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나의 본능들을 그저 흘려보내버렸는지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