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버스는 덜컹거리며 좁은 골목골목들을 누볐고, 그 골목들에는 소소한 삶의 조각들이 소담스럽게 담겨있었다.
내 안에 내가 사랑하는 음악들이 가득 차 올라 넘실대며 행복한 고독을 부추겼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나를 백번쯤 불러대던 아이들은 학교에서 학습 중이었고, 남편은 언제나처럼 먹을 때, 잘 때 외에는 나를 찾지 않았다. 그가 먹을 때도 잘 때도 아니었으므로 나는 자유를 만끽해도 될 것이었다.
살짝 열린 버스 창문 틈새로 적당히 시원하고 적당히 부드러운 바람이 머리칼을 흐트러뜨렸다.
흘러내린 머리칼을 이따금씩 정리하며 버스의 흔들림에 몸을 맡긴다.
삶은 이러한 흔들림일 것이다. 이러한 흔들림으로 어쩌면 살아있음을 체감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
불안하기도, 우울하기도, 슬프기도, 기쁘기도, 하면서 어쩌면 나는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행복한 고독이 나를 휘감던 어느 순간 너무나 불쑥 하나의 감정이 담긴 표정이 가슴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우려와 경계가 담긴 그 표정은 찰나로 스쳐 지나갔다.
내 안에서 질문이 생성되었다. 그건 무엇이었을까.
그 우려와 경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내가 무엇을 놓친 것일까?
나는 엄마를 미워한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나를 미워하고 있었다. 죄책감의 이면에는 자기혐오가 있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고 그 순간 선생님의 얼굴에는 경계와 우려가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무 의미도 담고 있지 않은가.
단지 나의 착각인가. 그렇다면 나는 왜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된 것인가.
내게 스스로 질문을 던져가며 대답으로 순간을 채워나갔다. 나는 왜 그 찰나의 표정을 읽은 걸까.
내가 읽은 표정은 합리적인가.
그 표정은 내 안에서 어떻게 고개를 내밀게 되었나.
그 표정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인가 불안하게 하는 것인가.
집으로 돌아와 선생님이 추천한 책을 집어 들었다.
벌써 두 권째. 한숨이 났다.
나는 애서가이지만, "대상관계 이론"이라는 것은 어려운 개념이었다.
이 책을 다음 주 진료 날까지 읽고 또 무슨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그때까지 다 읽을 수나 있을까.
심란한 마음을 안고, 얇디 얇은 책장을 한 장, 두 장 넘겼다.그러다 나는 멈추었다.
내 두뇌 근처 어딘가에서 하나의 전구가 켜졌다.
어느 여름날 저녁 무렵 2세인 한 남자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공원에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들은 보도 위로 그들 앞에 뻗어 있는 그림자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저건 내 그림자야, 그리고 저건 아빠 그림자야." 아이가 말했다. " 그래, 그렇구나." 하고 아버지가 대답했다. 잠시 후 아버지가 아들을 목말을 태웠다. 남자아이는 그들의 그림자에 생긴 변화를 보고 웃었다. "내 그림자 위에 있는 저게 뭐지?" 하고 아버지가 물었다. "그건 나야" 아이가 깔깔대며 대답했다. 아이는 반복해서 "그건 나야."라고 말했다. 그전에 그는 자기 그림자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이제 "그게 나야"라고만 말했다. 그의 그림자가 자기상이 된 것이다.
나는 죄책감을 갖는 나도 나라고 생각했다.
혐오감을 갖는 나도 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상관계 이론에 따르면 그 둘 다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이론에 따르면 나의 경우. 죄책감 혐오감 모두, 내 것이 아니라 엄마의 것이라는 거다.
이쯤에서 나는 다시 혼란에 빠진다.
그러면 난, 난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난, 나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내가 가지는 감정은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아 맞다, 그것을 이제부터 찾아야 하는 거라고 지지난 시간에 선생님이 말했다.
예수, 부처, 성인들도 모두 자기 자신을 찾으려던 사람이라고도 말했다.
예수, 부처와 수많은 성인들이 해내던 일을 내가 할 수나 있을까.
나만의 사유 세계에 빠져 참석해야 하는 아이 운동회조차 늦어 원망을 사는 나다.
운동신경은 왜 또 그렇게 없어, 어른이 되었어도 맨날 여기저기서 자빠지는 나다. 그래서 감히 힐은 언감생심 꿈도 안 꾼다.
지구력은 왜 그렇게도 없어 헬스장엔 늘 기부천사인 나다.
몸은 왜 그렇게 허약한지, 한번 아팠다하면 수액 없이는 못 일어난다.
여기저기 빈틈 투성이고 모자람 투성이인 내가 어찌어찌하여 엄마가 되고, 좋은 엄마는 꿈꿀 수조차 없어 겨우겨우 나아지는 엄마가 되고 있는 지경이다.
이런 내게 예수, 부처가 추구하던 일을 하라니..
보리수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자기 자신을 찾으라니..
장 볼 때 거스름돈조차 잘 챙기지 못하는 내게 나를 찾으라니..
엄마도 겨우겨우 하고 있는 지경인데..
맙소사..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병원엔 왜 찾아갔을까.. 그래도 이제 좀 참을만한가 보다. 후회를 하다니.
물에 빠진 사람 살려놨더니 왜 살렸냐고 하는 격인가..
-대상은 사랑이나 미움을 받는 사람이나 장소, 사물, 환상을 의미한다.
-감정이 투여된 어떤 것.
-타자라는 단어를 종종 대상이라는 용어와 바꾸어 사용할 수도 있다.
-대상은 정서적 에너지, 즉 애정이나 증오 또는 애정과 증오의 좀 더 조절된 결합이 투여된 사람이나 장소, 사물, 개념, 환상 또는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