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심에서 자존감을 외치다.

엄마의 대환장 7

by 흔들리는 민들레


몇 년 전부터 자존감에 대한 이슈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블로그에서 자주 만났던 윤답장 선생님의 (자존감 수업의 저자 윤홍균 선생님의 블로그 이름은 윤답장이다. 별 상관없지만 블로그 이웃사촌이라 안다) <자존감 수업>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들이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세상은 자존감을 높여야 하고 높이는 것이 좋다고들 말하는데 나는 세상이 말하는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 같아서 자존감이 2차로 더 낮아지는 일을 겪었다.


' 자존감이 높아야 하는데... 난 왜 이렇지... 난 자존감이 낮아.. 어떻게 하면 높아질 수 있지... 왜 노력해도 안 되는 거지... '








" 엄마, 나 지켜줄 거죠? "


며칠 전 아이가 유튜브로 무서운 영상을 무심코 보았는데 누군가의 가위눌림 경험에 관한 영상이었다고 했다. 그날 밤 아이는 불안해서 잠들길 어려워했고, 그다음 날도 불안해서 잠자리에 눕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평소 아이가 잠들 때까지 침대 옆에 이불을 깔고 작은 독서등을 켜놓고 책을 보는데 엄마가 밤새 옆에 있어도 무섭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가위에 눌릴까 봐 불안해서 잠을 못 자겠다고 했다. 그러면 어차피 엄마는 책을 보느라 늦게까지 잠들지 않으니 네가 잠이 들어서 가위에 눌리는지 안 눌리는지 지켜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만약 네가 가위에 눌리는 것 같으면 사진을 찍어놓고 깨우겠다고, 엄마가 밤새 옆에 있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자라고 했다.

아이는 조금 안심이 되는지 그러면 꼭, 지켜보고 꼭, 사진도 찍으라고 했다. 꼭으로 약속을 여덟 번쯤 받아내고서야 아이는 겨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아이는 새벽 5시 반에 깼다. 그리곤 물었다. 사진 찍었느냐고. 나는 모래가 두 컵쯤 들어간 듯한 눈꺼풀을 겨우 밀어 올리며 네가 가위에 눌리지 않고 잘 자길래 사진은 안 찍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이는 그랬냐고 근데 배가 고프다고 했다. 그렇구나 5시 반부터 배가 고프구나.. (ㅡ.ㅡ)

아이는 어려움이 생기면 내가 그것을 해소시켜주기를 원한다. 아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부모는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아이의 요구에 적절히 응답해주어야 한다. 아이의 요구를 다 들어주어서도 다 들어주지 않아서도 안되는데 어느 만큼 들어주고 어느 만큼 들어주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한 내부적인 기준을 갖기가 어려웠다. 그 기준이 어디일까, 그것이 어느 만큼일까에 대한 고민을 오래 해왔고 지금도 역시 그렇다.







기본적으로 나는 스스로에 대하여 존중받아야 할 마땅한 사람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는데, 그래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꾸준히 죽고 싶었고, 꾸준히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꾸준히 공허했고, 인생 전반이 비극적이고 비참했다. 그것은 존중받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존중받아본 경험이 있어야 존중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비참하지 않으려면 부당한 요구를 받았을 때 존중을 요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온 세상은 원래가 그렇게 차갑고 비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나는 자존감이 낮아.. 어떻게 하면 자존감을 높일 수 있을까...


노력하면 자존감을 높일 수 있었을까? 노력이 부족해서 자존감을 높이지 못한 걸까? 자존감을 높이려면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자기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고 스스로 응원하는 연습을 하면 자존감이 높아질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 그러니까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응원하지 못하고 위로하지 못해서 자존감이 낮은 걸까?

자존감의 기원은 외부에 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이다. 자신의 자존감이 낮다고 느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원인과 해결책을 자기 내부로 귀의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드시 그 원인이 개인 내부에 있다고만은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자존감이 낮은 원인은 사회적, 문화적, 복합적인 요인들의 결과이기도 하다. 개인의 원인, 개인의 문제는 모이고 모여 사회적인 문제가 된다. 사회는 개인과 연결되어 있고 작은 소사회들이 모여 국가가 되는 것이다. 넓게 보면 개인은 국가이기도 하다.






다시 개인으로 돌아와 생각해보자면 나의 자존감이 낮았던 근본적인 이유는 부모와 맺었던 첫 번째 관계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성인이 되면서 꾸준히 강화되었고, 단단해졌다.


이상심리학에서는 정신장애를 발생시킬 가능성을 증가시키는 어떤 조건이나 환경 같은 위험요인을 risk factor라고 하는데 그 원인은 무수히 많다. 기질적, 인지적, 심리사회적, 인구통계학적, 기타 여러 영역들의 모든 맥락에 걸쳐 있다. 아이가 어릴 때 가정에만 소속되어 있는 것 같지만, 학교, 학원, 친구관계 등에 소속되어있는 것처럼 한 개인은 사회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 다만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그러니까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너는 존중받아야 될 사람이라는 것을 매일 조금씩 각인시켜 주는 일이다.


아이의 내면 안에 자기 존중감을 아주 긴 시간 동안 조금씩 심어주는 일은, 아이가 도움을 요청할 때 귀 기울여주는 일, 함께 좋은 방법을 찾아가는 일, 아이의 감정을 만져주는 일이다. 아이에게 그 일을 해주면서 상처받은 나의 마음을 만난다. 어린날 내게 박탈되었던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자존감의 기원은 외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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