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체중이 줄었다

우울증 치료 종결, 그 후

by 흔들리는 민들레





다이어트는 맘고생이 최고



우울증을 앓기 전에는 통통한 편이었다. 신장에 비해 통통했다는 의미다. 우울증을 앓으며 신체적인 증상을 겪느라 식사를 잘하지 못했기에 체중이 5kg가량 줄었다. 때는 아파서 줄었고 회복하면서 몸무게가 다시 늘었는데 그 시점부터 집에서 운동을 시작했고 조금씩 활력을 찾아갔다.

집에서 매일 운동을 했고 복근 허리 하체 운동을 중심으로 개수를 정해놓고 근육운동을 했다.


몸무게가 과도한 편은 아니었지만 나 역시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걸로 풀기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러면 꼭 탈이 나서 며칠씩 고생을 했다. 부작용을 경험하면서도 매번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할 때는 다시 그런 방식으로 해소하려는 시도를 했다.


과도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분명 건강한 방식은 아니었다. 술도 종종 마셨다. 안주 없이. 그것도 과도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역시 건강한 방식은 아니었다. 폭식과 음주는 모두 해소되지 않은 욕구에 대한 좌절 때문에 일어났다. 다리가 아프면 다리를 치료해야 하는데 치과를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번지수를 잘못 찾아 해소하려고 했다. 강남에서 뺨 맞고 한강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처럼.


슬프고 우울했고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내 존재의 타당성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느라 신체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

몸이 너무너무 좋지 않았다. 전에 입었던 옷들이 맞지 않았다. 한 사이즈가 줄었을 뿐인데 특히 바지가 그래서 새 옷을 장만해야만 했다. (꼭 쇼핑을 하고 싶어서 그랬던 건 아니다)


결혼을 하고 집에서 육아와 살림을 하다 보니 나를 꾸밀 여유가 없었다. 또 외출할 일이 별로 없기도 하니 옷을 사거나 화장품을 사거나 할 이유도 없었다. 외벌이 가정이었기 때문에 빠듯했으므로 나름대로 절약하며 사느라 옷을 산대도 저렴한 것들만 사니 공식적인 자리에서 입을 옷이 없었고 또 그런 곳에도 안 가게 되었다. 평소 액세서리를 거추장스러워했으므로 구입하지도 않았다. 원래 성향도 내향성이 99% 인지라 점점 안으로 두문불출했다. 아이의 친구 엄마들 말고는 만날 일도 어딘가를 갈 일도 없었다. 두 아이를 혼자서 키우는 것만도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소중한 내 마음



우울증을 통과하며 내 몸을 돌보지 못했던 대신 마음과 많이 지냈다. 나는 왜 이렇게 아픈지, 나는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계속 생각했다. 어쩌면 우울증을 통과하던 지난 3년간의 시간 동안이 아니라 평생 동안 해 왔던 고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고민들이 우울증으로서 발현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건 마음의 신호였다. 나도 여기에 있다고, 보이진 않지만 분명하고 확고하게 여기에 생존하고 있다는 신호 말이다. 학교에서 국어 역사 과학 수학 음악 미술 체육은 배웠지만 마음은 배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런 것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전혀 못했다. 어른들도 내게 한 번도 물은 적이 없었다. 네 마음은 어떠니? 넌 어떤 기분이 드니?라는 질문보다 늘, 너는 무엇을 했니?라는 질문을 했다.


나는 언제나 '무엇' 이어야 했고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만이 존재의 방식이었고 이유였다. 명절마다 온 식구의 도마에 올라서 갈라지고 잘리고 분해되었다.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것이었고 단죄였고 돌팔매였다.


나를 사랑하는 방식을 배우지 못했다. 나를 돌보는 방법 내 마음을 돌보고 보듬는 방법을 전혀 알지 못했다. 소외된 마음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했다. 폭식이나 음주 같은 것들로.


우울증으로 고통의 날들을 보내면서 마음을 많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계속 들여다보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어떤 마음이고 어떤 감정인지에 대해서 그야말로 알. 게. 되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영역이었다.

내 마음을 알고 내가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던 그때에 그래서 삶을 포기하려던 그때에 그것을 알게 되는 것이.


다이어트, 폭식, 음주. 이것들은 모두 절제에 관한 문제였다. 조절에 관한 문제였다. 내 마음의 존재를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내게 필요한 것을 알았고 더 이상 폭식이나 음주가 필요하지 않았다. 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절할 이유가 없어졌다. 아름다움도 돈도 체면도 필요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는 체중을 신경 쓰지 않는다. 먹어도 배가 고프거나 마셔도 목이 마르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충분하다. 우울증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바로 마음의 소중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