눕기만 하면 눈이 더 크게 떠지는 기분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이리 누워봐도 저리 누워봐도 잠이란 것은 올 생각이 없는 듯했다. 밤을 꼬박 새우고 (날로 새울 때도 많았다) 일어나 아침식사를 차리는 일은 최고의 경험이었다. 내가 밤을 새웠건 아니건 자라야 하는 아이들을 굶겨서 학교에 보낼 수는 없는 일이기에 물먹은 솜이불을 어깨에 두른 기분으로 억지로, 정말 억지로 일어났다. 그렇게도 안 오던 잠이 아침에 찾아오는 기이함이라니.. 그 부적절한 방문은 나를 굉장히 곤란하게 했다.
나는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은 두 아이의 엄마이다. 엄마로서 할 일은 종료되는 시점이 없다. 마라톤 같은 육아의 뫼비우스의 띠 속에서 나의 컨디션 따위는 고려대상이 될 수 없다. 물리적으로 이끌려 움직이게 될 뿐.
불면은 사람을 예민해지게 한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늘고 남들이 어떤 일에 10만큼의 에너지를 사용한다면 나는 50만큼의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는 기분이다. 문제는 저축된 에너지는 5뿐인데 50을 써야 한다는데 있다. 더 이상 소진될 것이 없는데 소진되는 기분, 싹싹 긁어 써 버렸는데 구멍날 때까지 계속 긁어대야 하는 기분.
불면증이 찾아오면 거치게 되는 몇 가지 단계가 있다. 먼저 물리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해본다. 침실 환경을 바꿔보고 온습도 조절에도 신경을 써보고, 침구류를 바꿔보거나 잠옷을 바꿔보기도 한다. 그래도 잠이 안 오면 수면 패턴을 점검해본다. 너무 늦게 자는 건 아닌지 아니면 너무 일찍 눕는 건 아닌지. 혹은 스마트폰 때문은 아닌지 점검해보고 개선해 보지만 여전히 잠은 올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다음 단계에서는 마음을 살펴보게 된다. 요즘 어떤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무슨 마음이 드는지 생각해보며 이너피스를 위해 명상을 하거나 마음 챙김 명상법을 공부한다. (그래도 안 온다) 어떻게 해도 결국에는 잠이 들지 못한다.
다른 시각으로 보려는 시도, 관점의 변화
관점의 변화
그랬던 내가 요즘은 잘 잔다. (불면증이 뭐예요?)
잠을 못 잘 시간이 없다. 다만 잘 시간이 부족할 뿐. 무엇이 달라졌기에 잘 자게 되었을까.
관점이 달라졌다. 수면에 대한 관점이 나를 잘 자게 만들었다.
불면증이 찾아왔을 때 이 방법도 써보고 저 방법도 써 보았던 것은 그것을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보는 관점이었다. 마치 북극곰을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면 더 생각이 나는 역설적 사고와도 같은 것이다.
우울증을 통과하고 난 후의 나는 불면을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여기지 않게 되었다. 꼭 반드시 잘 자야만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숫자가 세팅된 대로 입력되고 출력되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9시간을 자야 한다고 아니 최소한 5시간은 자야 한다고 입력한다 해서 5시간을 잘 수 있는 로봇(?) 이 아닌 것이다. 매달 호르몬도 달라지고 일어나는 생활사건들도 다양하므로 잠 역시 잘 자는 날도 있고 못 자는 날도 있다. 그것은 무척 자연적인 반응이다. 날씨나 기온이 계절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달라지는 것처럼 나 역시 자연물에 불과하므로 잘 자거나 못 잘 수도 있는 것이다.
관점은 왜, 어떻게 해서 달라지게 되었을까?
우울증을 겪으며 약을 타러 매주 병원에 갔다. 진료실 의자에 엉덩이가 닿자마자 받는 질문은
" 한 주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 였다. 그 질문을 3년 동안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대답해야 하니까. 질문을 받으면 생각하게 된다. 내가 어떻게 지냈더라. 이번 주에는 어떠어떠한 일들이 있었지.
생각하고 대답을 한다. 그러면 또 질문이 날아온다.
" 그때 마음이 어땠나요? " 그러면 또 생각하게 된다. 내 마음이 어땠더라..매주 반복이다. 우울증을 통과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알게 된 것은 " 한 주동안 어떻게 지냈나요?"라는질문이 나를 내 마음의 집으로 귀가하게 했다는 것이다.
내 마음, 감정, 생각의 상태가 한결같이 같은 것 같으면서도 계절처럼 다르기도 하다는 것을 그 질문을 통해 아니,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의 신체적인 상태도 매일 일정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수면이나 식욕도 일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우울증의 이유는 이곳에서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미 전작을 통해, 브런치와 블로그와 책을 통해 충분히 써냈으므로. (궁금하신 분은 [산다는 것은 흔들리는 일이다] 책 구입을...) 어쨌든 요즘 나는 불면증으로 고초를 겪지 않는다. 잘 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잘 잘 때도 있고 못 잘 때도 있지만 크게 괘념하지 않는다. 그것을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치료받는 중에는 수면제를 꾸준히 복용해야 할 정도로 잠을 못 잤지만 지금은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아도 잘 잔다. 그리고 수면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달라졌다. 중독성이나 내성에 대한 걱정들을 주변에서 자주 들었는데 의료진과 잘 상의해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괜찮다는 것을 경험했다. 수면제뿐 아니라 우울증 약도 마찬가지다. 약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병원에 의존하지 말고 직접 이겨내야 한다는 말보다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경제적이든 정서적이든 내게 더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