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는 자도 자도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았다. 실은 피로가 풀리도록 자본적도 없지만, 별 일, 큰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언제나 피곤했다. 직장과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피곤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한계가 찾아왔던 것 같다. 그걸 나만 몰랐을 뿐.
사람마다 임계치가 다를 텐데도 나는 나의 임계치보다 보통 사람들의 임계치를 적용했다. 나의 기준은 보통사람들(?)이었는데 그런 게 어디 있는 걸까 사람마다 삶의 모습들이 다 다른 것을..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것이었다. 나를 면밀히 살피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서 적용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다. 그것은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우울증은 나를 자각하게 만들었다. 격렬한 감정들이 나의 임계치를 자각하게 만들었다.
숨을 쉬고 있는 매 순간 슬픔, 무망감, 허무함, 분노, 고독 같은 감정들과 마주해야 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것들이 거기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밥솥에서 밥이 다 지어지면 밥이 완성됐다고 하듯 세탁기에서 세탁이 끝나면 알람음이 울리듯. 내 안에서 감정의 알람이 울려댔다. 다만 한꺼번에 울리거나 너무 많이 울려대서 문제였지만.
알람이 울려대는 여러 감정들을 바라보면서 그 감정들 안의 마음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런 감정들이 바다쓰레기처럼 당겨도 당겨도 계속 딸려 나오는 통에 무척 당황했다. 생각보다 해양생태계가 많이 오염돼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제주 앞바다 같았는데 실은 갠지스강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갠지스강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생각하는 것과 실제의 모습이 다름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다.(나마스떼)
내가 들 수 있는 나만의 무게
우울증을 통과하며 여러 감정들의 알람으로 나의 임계치를 학습하게 되었고 조절하는 요령도 알게 되었다. 몸에 기초체력이 있듯 마음에도 기초체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어서 마음의 체력에 이상이 생길 때 몸 역시 그에 합당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신체화라고 하기도 하는데 감정에 대해 잘 알지 못할 경우 감정이 올라올 때 감정을 감정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몸의 반응이라고 여기는 것을 말한다.
내 만성피로의 반절쯤은 신체화와 또 나 스스로 나의 임계치를 알지 못하고 모든 것을 수용하려고 했기 때문이란 것을 우울증을 통과하며 알게 되었다. 사람마다 들 수 있는 무게가 다르고 많이 드는 것이 좋은 것도 적게 드는 것이 나쁜 것도 아니라는 걸 마음의 통증으로서 깨달았다. 또 그것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 직면이라는 것을 그 직면을 거부할 때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리적인 운동을 통해서 기초체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마음의 임계치를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마음의 기초체력을 단련하는 일중 하나였고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남의 기초체력이 아니라 내 체력이 중요하다. 내가 할 수 있고 내가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것이다 운동경기에도 체급이라는 것이 있듯이 마음에도 그런 게 있다. 그것을 알게 된 후 그것을 적용하고 만성피로가 사라졌다. 내가 견딜 수 없는 일이 찾아오면 마음의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이것을 감당할 수 없어, 그만 여기까지. '그러면 다른 방법을 모색해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하는 게 좋은 방법일까. ' 이 방법 저 방법을 내게 적용해보면서 유연성도 길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