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상담은 이제 그만

우울증 치료 종결, 그 후

by 흔들리는 민들레



상담은 이제 그만



나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운



우울증을 통과하면서 약을 먹고, 잠을 못 자고 몸이 아프면서도 줄곧 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 지인, 아이들의 이야기까지. 그리고 티브이에서 혹은 누군가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을 때 너무나 슬프고 속상했다. 그것은 나 자신의 아픔을 모른척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 때문이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얼마나 마음이 속상할까. 그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내가 그 감정을 다 느껴봤고 충분히 느끼고 있으니까.

마음속이 전쟁터였는데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고민을 들었고 함께 속상했다.


감정적인 것은 나의 핸디캡이다. 관계에 있어서 특히 결점으로 작용해왔다. 나는 남들보다 많은 감정들을 느낀다. 그래서 괴로울 때가 많다.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없고 슬픈 책도 볼 수 없다. 한 번 터지면 추스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타인의 감정도 민감하게 느낀다. 이것은 나의 기질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의 성장환경으로 인한 생존본능으로서 발달되기도 하였다. 성장환경을 얘기하자면 흐름이 너무 어두워지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겠다.(궁금하신 분은 없겠지만 혹시 있다면 전작 '산다는 것은 흔들리는 일이다'를 읽어보.... 책 광고는 절대 아니다)




뜨거운 마음


뜨거운 마음


어쨌든, 나는 감정을 (최고가 100이라고 가정했을 때) 항상 120만큼 느낀다. 감정이 깊고 격렬하다. 내 인생 자체가 저주받았고 불행하다고 여겨왔지 내 감정에 그런 면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우울증을 통과하면서 지속적으로 올라와 나를 아프게 했던 감정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오만가지 감정들이, 해결되지 않고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방안에 가득 차 있다가 방문을 열면 쓰레기처럼 마구 쏟아져 나왔다. 쓰레기들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그것들을 모아서 분리하며 폐기하고 정리해야 했다.(나는 감정 저장 강박이었다) 쓰레기를 정리하려면 어쩔 수 없이 쓰레기가 묻는다. 몸에 오만 쓰레기를 다 묻히고 냄새마저 배어서 괴로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분리수거를 하려면 하나하나 열어보고 분리를 해야 하는 거니까..


우울증은 꽉 닫아두었던 방문을 열어 격렬한 감정을 쏟아져 나오게 했고(어쩌나 쏟아진 것은 치워야 하는 것을) 그것들을 분리수거하느라

몸에 덕지덕지 묻히면서 격렬하고 뜨거운 감정을 다시 경험하게 되었다. 다시 경험하면서 그때는 몰랐던 것을 지금은 알게 되었다. 시 경험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그것은 통찰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관계 속에서의 나는, 늘 들어주는 사람, 받아주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곧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모든 관계에서 그랬다. 우울증이 내게 남긴 것은, 이제 내가 들어야 할 것은 타인의 음성이 아니라 내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내면 목소리의 볼륨을 더 키운다. 더 이상 누군가의 고민을 상담해주지 않는다. 덤으로 관계마저 정리가 되었다. 남을 사람은 남고 떠날 사람은 떠났다. 애써 붙잡지 않았으며 굳이 서글퍼하지도 않았다. 괜찮았다. 외로움이 찾아오는 것은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독을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일석이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