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선 넘네?

우울증 치료 종결, 그 후

by 흔들리는 민들레




멈추시오. 여기서부터 타인의 국경입니다.



타인들에게 관대한 것이었을까 거절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을까.



떤 사람이 싫은 데는 싫은 이유가 있고 좋은 데는 좋은 이유가 있다. 대개 싫은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좋은 사람과는 오래 인연을 맺는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친밀하거나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싫어도 싫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앞선 글에서 이성들에게는 철벽을 쳤다고 했는데 그것은 친밀하지 않은 경우였기 때문에 그랬고 일단 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모든 것을 다 퍼주고 허용했고 관대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나만의 영토가 없었다는 데 있다. 내 자아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몸은 성인이었으나 내 기준, 내 영역, 내 주관이 포함된 자아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자라면서 받아온 가르침들에 대한 목소리만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고, 그 목소리들은 가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랑받으려고 늘 노력하는 사람은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그 대상이 절박해진다. 관계란 것은 상호적인 것이어서 그런 마음을 상대방도 알아차린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 절박한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해내려 한다는 걸 사람들은 안다. 가까운 사람은 특히 더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내가 해내는 걸 보고 점점 더 무리한 요구들을 한다. 을 마구 넘으면서.


마음이 아팠던 하루하루를 3년 동안 보내면서 나는 왜 이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운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고립감과 깊은 외로움이 수시로 휘몰아쳤는데 그것이 나의 미숙함때문이라고 여겼다. 내가 감정조절을 잘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랬을까? 깊은 고립감과 외로움은 정말 나 때문이었을까? 그 감정은 내 안에 있으니까 나 때문인 것일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가족들이 있다.



좋은 대상과 좋지 못한 대상의 차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좋은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었다. 내게는 가족도 있었는데. 친구들도 있었는데. 나는 그들에게 의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게 좋은 대상,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남편도 자식도 다른 가족도 아니었다. 친구 한 명, 단 한 명뿐이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서 좋은 대상을 배웠다.


배우고 나서 든 생각은 내 주변에는 좋지 못한 대상들이 많다는 깨달음과 현실 자각이었고, 한 사람이 깊은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원인이 그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게 잘못(?)이 아예 없다는 건 아니다. 나는 가깝다는 이유로 선을 마구 넘는 이들을 허용했다. 그래서 그들은 나의 국경을 마구 넘나들었다.


좋지 못한 대상과 좋은 대상의 차이점은 선을 넘느냐 넘지 않느냐 침략하느냐 지켜주느냐에 있었다. 그것을 알고 나서 나는 내 국경을 수리하기 시작했고 수비대를 배치했다. 우울증을 통과하면서 알게 된 것은 내가 국경 없는 사람이며 주변 환경이 몹시 척박하다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국경에 법률을 세웠다.


법률 1.

내 경계는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다.

법률 2.

나의 경계를 보호하려는 마음은 존중받아야 한다.

법률 3.

타인이 내가 원하는 대상이기를 바라는 것은 나 역시 누군가를 침략하려는 시도다.

법률 4.

내가 존중하는 대상은 나를 존중하는 대상에 제한한다.


이 너무도 당연한 권리와 사실을 나는 우울증을 통과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처한 환경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다만 변한 것은 내 마음뿐인데도 나는 전보다 훨씬 행복해졌고 나에게 더 집중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가끔 흔들리지만 전복되지는 않는다. 게 다 울증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