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시오. 여기서부터 타인의 국경입니다.
타인들에게 관대한 것이었을까 거절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을까.
어떤 사람이 싫은 데는 싫은 이유가 있고 좋은 데는 좋은 이유가 있다. 대개 싫은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좋은 사람과는 오래 인연을 맺는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친밀하거나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싫어도 싫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앞선 글에서 이성들에게는 철벽을 쳤다고 했는데 그것은 친밀하지 않은 경우였기 때문에 그랬고 일단 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모든 것을 다 퍼주고 허용했고 관대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나만의 영토가 없었다는 데 있다. 내 자아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몸은 성인이었으나 내 기준, 내 영역, 내 주관이 포함된 자아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자라면서 받아온 가르침들에 대한 목소리만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고, 그 목소리들은 가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랑받으려고 늘 노력하는 사람은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그 대상이 절박해진다. 관계란 것은 상호적인 것이어서 그런 마음을 상대방도 알아차린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 절박한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해내려고 한다는 걸 사람들은 안다. 가까운 사람은 특히 더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내가 해내는 걸 보고 점점 더 무리한 요구들을 한다. 선을 마구 넘으면서.
마음이 아팠던 하루하루를 3년 동안 보내면서 나는 왜 이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운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고립감과 깊은 외로움이 수시로 휘몰아쳤는데 그것이 나의 미숙함때문이라고 여겼다. 내가 감정조절을 잘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랬을까? 깊은 고립감과 외로움은 정말 나 때문이었을까? 그 감정은 내 안에 있으니까 나 때문인 것일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가족들이 있다.
좋은 대상과 좋지 못한 대상의 차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좋은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었다. 내게는 가족도 있었는데. 친구들도 있었는데. 나는 그들에게 의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게 좋은 대상,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남편도 자식도 다른 가족도 아니었다. 친구 한 명, 단 한 명뿐이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서 좋은 대상을 배웠다.
배우고 나서 든 생각은 내 주변에는 좋지 못한 대상들이 많다는 깨달음과 현실 자각이었고, 한 사람이 깊은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원인이 그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게 잘못(?)이 아예 없다는 건 아니다. 나는 가깝다는 이유로 선을 마구 넘는 이들을 허용했다. 그래서 그들은 나의 국경을 마구 넘나들었다.
좋지 못한 대상과 좋은 대상의 차이점은 선을 넘느냐 넘지 않느냐 침략하느냐 지켜주느냐에 있었다. 그것을 알고 나서 나는 내 국경을 수리하기 시작했고 수비대를 배치했다. 우울증을 통과하면서 알게 된 것은 내가 국경 없는 사람이며 주변 환경이 몹시 척박하다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국경에 법률을 세웠다.
법률 1.
내 경계는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다.
법률 2.
나의 경계를 보호하려는 마음은 존중받아야 한다.
법률 3.
타인이 내가 원하는 대상이기를 바라는 것은 나 역시 누군가를 침략하려는 시도다.
법률 4.
내가 존중하는 대상은 나를 존중하는 대상에 제한한다.
이 너무도 당연한 권리와 사실을 나는 우울증을 통과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처한 환경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다만 변한 것은 내 마음뿐인데도 나는 전보다 훨씬 행복해졌고 나에게 더 집중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가끔 흔들리지만 전복되지는 않는다. 이게 다 우울증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