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통과한 시간이 3년이었다. 그러나 실은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며 적극 치료를 받은 것이 3년이었지 참 오랜 시간 우울을 은장도처럼 지니며 살았다. 살아온 내내 우울했다.
우울을 통과하면서 인생의 결산을 한 기분이 든다.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병원에서 간단히 약을 조제받고 한 주 기분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참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고, 참 많은 감정들을 경험했고 참 많은 관점들이 바뀌었다.
그것들을 글로 썼고 책으로 만들어냈을 정도니
그만큼 할 이야기가, 나눈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 과정들 속에서 묵었던, 응어리졌던 감정들을 직면하면서 해소될 것은 해소되고 남을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몸과 마음이 전보다 건강해졌고 환경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지만 전보다 더 행복해졌다. 그러나 전보다 더 행복해졌다는 것이, 우울증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이, 나라는 인간에 대한 전면 개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애석하게도 그런 것은 없다. 나는 정말 많이 변했지만 어떤 점에 있어서는 그대로다. (사람 잘 안 변한다)
일단 기질적인 면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수단으로도 바꾸지 못한다. 타고나는 거니까.
우울증 치료는 말 그대로 치료일 뿐이지 개조는 아니다. 치료는 의료진의 몫이지만 성장은 나의 몫이다. 나에게 동기가 없다면 성장은커녕 치료까지 어려워진다.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나의 어떤 부분이 아플 때가 있다. 실존적인 고독으로 아플 때가 있고, 채워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깊은 욕구 때문에 아플 때가 여전히 있다.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욕구가 가슴속에서 토네이도처럼 휘몰아쳐 건설해놓았던 모든 것들이 폐허가 될 때가 있다. 그 토네이도에 휩쓸려 정신없이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아야 할 때도 여전히 있다. 어떻게든 토네이도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이것저것을 붙잡았던 때가 우울증을 앓던 시기였다면 이제는 <에라 모르겠다>로 바뀌었다.
쟤 또 왔네, 에라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
이제는 토네이도에 휩쓸리면 그냥 빙글빙글 돈다. 정신없이 돈다. 여긴 어디 난 누구 현타가 오지만
그냥 돈다. 계속 돈다. 이러다 진짜 돌아버릴라 걱정도 다 놓은 채 돈다. 그러다가 토네이도 세력이 약해지면 도는 속도가 줄어든다. 마침내 토네이도가 사라지는 순간, 땅으로 철퍼덕하고 떨어지는 것이다. 한참 돌고 있을 때는 정신이 없어서 되려 아픈지 모르는데 세력이 다 하고 떨어질 때 굉장히 아프다. 아파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다 통증이 조금 가시면 살살 일어나 본다. 졌잘싸, 괜찮아 안 죽어.. 하며 옷을 툭툭 털어낸다.
지난 3년간의 우울증치료가 가져다준 것은 전지적 시점이다. 나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것을 보고 그 의미를 안다. 토네이도에 왜 휩쓸리는지도, 떨어지면 왜 그렇게 아픈지도, 왜 자꾸 토네이도가 오는지도 알지 못하는 채가 아니라 모든 것을 알고 아는 채 거기에 휩쓸리고 아는 채 떨어진다. 알면 그러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러지 않아야 한다는 자기 강요가 더 큰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 강요는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는데 똑바로 걸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왜 똑바로 걷지 못하냐고 비난해서 아픈 이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참전 후 PTSD를 겪고 있는 군인에게 왜 정상적으로 살지 못하냐고 비난하는 것과 어떤 것이 다른가. 참전군인과 다리를 절단한 누군가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 소리를 자기에게는 마구 할 필요 없지 않나.
우울증은 내게 회복탄력성과 전지적 시점을 주었다. 나라는 사람을 때때로 찾아오는 통증을 수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