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나 나서서 궂은일을 하는 사람, 남들보다 더 많이 움직이는 사람, 재거나 따질 줄 모르고 거짓말을 하면 금방 티가 나서 거짓말을 할 엄두도 못 내는 사람, 식당에 가면 물을 따르고 수저 젓가락을 놓는 사람, 남들 거 먼저 떠주고 내 건 제일 마지막에 뜨는 사람, 듣기 싫은 얘기도 웃으며 끝까지 듣고 있는 사람,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 어쩌다가 거절하더라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일명 <착한 사람>
그때는 그런 호칭이 좋은 건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성격이 상처가 되고 관계를 어렵게 하고 가스라이팅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우울증을 통과하며 알게 되었다. 더불어 내가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다.
난 왜 그랬을까. 왜 모든 관계에서 그런 모습을 고수했을까.
그것이 생존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저곳에 맡겨지며 자랐다. 가난했고 엄마는 바빴다.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고 그랬기에 친하지 않은 어른들 앞에서 내 행동을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지 알지 못했고 그래서 타인을 몰래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눈썹의 모양, 시시각각 달라지는 눈의 크기와 눈빛, 입의 모양, 입꼬리의 모양, 말투와 억양, 손짓, 팔의 각도, 발의 움직임, 다리의 각도와 방향, 고갯짓, 고개의 각도, 몸 전체 움직임의 크기와 방향까지 주의 깊게 듣고 보았다. 몸짓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들의 의도까지 예측하려고 노력하던 것이 상상력을 발달시켰다. 수없는 관찰과 시행착오 끝에 어른들이 원하는 것을 조금씩 예측할 수 있었던 커다란 눈의 어린 나는, 큰 눈에 세상의 아름다움을 담는 대신 삶의 시련과 가혹함을 담았다.
그런 생존의 방식이 살아가는 내내 나를 우울의 구렁텅이로 끊임없이 밀어 넣었다. 어디에서도 자유롭지 못했고 자유롭지 못하니 행복하지 못했다. 나일수 있는 곳, 나여도 되는 곳이 세상천지에 단 한 곳도 없었다. 세상은 이렇게나 넓은데 말이다.
우울증이 아니었다면 그 방식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과 관계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 성찰하지 못했을 것이다.우울증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죽을 때까지 그 방식을 고수하면서 왜 힘든지도 모른 채 안갯속을 헤매듯 살았을지 모른다.
마음에 근육이 있다는 증거가 우울증이었다. 아플 수 있는 용기는 내 마음이 가지고 있는 굳은 심지였다. 나는 어른들의 필요에 맞게 빚어진 사람이었지만 빚어지기 이전의 원재료이기도 했다. 빚어진 것만이 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마음이 아프면서 깨달았다.
선택하는 대상으로
시댁에서 - 지시받는 대상이 아니라 선택하는 대상으로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에 비해 눈치에서 자유로워졌다. 완벽하게 그러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제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하는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다. 내 감정이 일 순위다.
나의 대양에서는 내가 주인공이고 내가 지배자이다.
이제 나는 거절이라는 것을 한다.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하고 타인의 요구를 거절하거나 또는 적절히 수용한다. 타인으로 인해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면 그것이 그 사람이 유발한 것인지 내 안에 있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한다. 타인이 요구하지 않는 일은 먼저 나서지 않는다. 가정 내에서, 시댁에서도 마찬가지다.
며느리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만 그 이상은 하지 않는다. 주도적으로 행동한다. 주도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다는 뜻이고 주어진 일이 아니라 선택한 일을 한다는 의미에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나의 태도가 된다. 그 태도는
타인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도권을 갖는다는 것은 큰소리로 남을 제압하거나 욕설을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선택하는 일이다. 지시받는 대상과 선택하는 대상은 다르다. 그 선택에 얼마만큼의 내 욕구나 생각이 반영되었는지도 역시 중요하다. 내게 며느리로서의 의무가 있다면 시부모님에게도 시부모님으로서, 어른으로서의 의무가 있다.
모든 관계에서의 핵심은 내 선택권이 내게 있다는 것이다. 타인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 역시 내 몫이고 내 고유권한이다. 시부모님의 요구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도 내 몫이다.
이제는 시댁에 갔을 때 눈치 보며 돌아올 타이밍을 기다리는 대신 먼저 가보겠다며 갈 채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