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불안, 외로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속 소냐의 계모처럼,
서서히 미쳐가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 앞에서 광기에 휩싸여 미친 행동을 하고, 폐병을 앓아 당장 죽어버릴 듯 기침을 하고, 딸이 몸을 팔아 벌어다 준 돈으로 연명하며, 남편은 그 망할 술을 끊지 못해 마차 사고로 죽고,
다 해진 옷을 입은 어린아이들을 앞세워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그녀처럼 되는 것은 아닐까?
무섭다. 비극이란 괴물이 나를 향해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는 서서히 다가오는 것만 같다.
나는 자주 불안했다.
어떠한 사건으로 불안하기도, 아무런 사건이 없는데도 불안했다.
사회적으로 큰 사건 사고가 뉴스에 등장할 때마다, 그것은 타인에게 발생한 일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나에게 일어날 일처럼 느껴졌다.
아이의 유치원 발표회를 보다, 세월호 사고로 아이를 잃은 유가족이 떠올라 겨우겨우 슬픔을 삼켰다. 그분들도 이렇게 아이들을 키우셨겠지, 대견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캄캄한 물속으로 가라앉을 때, 얼마나 미칠 것 같았을까.. 그분들의 인생은 모든 게 전과는 다를 텐데, 나는 여전히 어제와 비슷한 오늘을 살고 있구나.. 그분들의 끝이 없을 고통과 슬픔은 그들만의 일이 아닌 내 미래의 일처럼 느껴져 슬픔을 참기가 힘이 들었고, <숨결이 바람이 될 때>의 저자 폴 칼라니티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 아내의 슬픔에도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다섯 살짜리 자기 아이의 사고를 목격하고 직접 심폐소생술을 하며 구급차에 타야만 했던 어느 소방대원의 이야기 앞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지금도 거리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교통사고들이 내게 일어날 일인 것만 같아 면허가 있음에도 나는 운전을 하지 못한다.
수많은 비극들은 그저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모든 비극들을 내 미래의 일처럼 느꼈다.
무척 괴롭고 슬펐다.
내가 느꼈던 불행의 원인 중 하나는 "불안"이었다.
무엇이 불안했던 것일까?
사건, 사고, 죽음, 죽어감, 이별이 두려웠다.
그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상실이다.
나는 상실을 두려워했다. 내가 두려워한 상실은 무엇이었을까?
불안감으로 인해 나는 종종 잠을 못 이루기도 하였고, 도전 앞에서 머뭇거렸다. 위축되어있고 자주 긴장상태를 겪었다. 남편이 죽을 것만 같았다. 아이들이 죽을 것만 같았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밤늦게까지 걷는 일은 절대 없었다.
기. 승. 전. 애착.
나는 매주 정신과 상담을 통해 조금씩 나아져가고 있었다. 대인관계가 개선되고 있었고, 불면증도, 우울감도 개선되어 약물에 의지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
행복했다. 고요히 나를 들여다보고 나와 함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해보았고, 부정적인 생각들이건 긍정적인 생각들이건 붙잡지 않고 흘려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평화롭게 지내던 내게 다시 불안감이 찾아왔다.
내 인생속에는 울타리가 없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버려진 폐가같은 느낌이었다.
여기저기에서 비가 새고 천정이 내려앉은 집, 그것은 내 마음속의 집, 나의 자아였다.
아침에 일하러 나간 엄마는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고 어린 나는 혼자 찬밥을 챙겨 먹으며 tv에 의지해 엄마를 기다렸다.
공허한 전자음만이 공간을 채우고, 행여 엄마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만이 마음속에 채워졌다.
나 때문에, 나를 천덕꾸러기로 만들고 싶지 않아,
재혼하지 않는다는 엄마의 말이, 나를 그녀의 짐짝처럼 느껴지게 했다.
나는 엄마에게 힘이 될 수 없는 존재이며, 짐짝이며,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그래서 언제나 버려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늘... 엄마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닐까 하며 불안해 했다.
나의 어린 시절이 그러했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지금의 불안이 그때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이 불안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애착" 때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데
다시 어려움을 겪었다.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고, 힘들었지만 잘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만 같아 허탈했고, 이 지옥 같은 엄마의 그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좌절감이 느껴졌다.
마치 내 등에 스프링이 달려있어, 달리고 달려도 어느 순간 튕겨서 제 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현재 내가 겪는 모든 정신적 어려움의 원인은 기. 승. 전. 애착.이었다. 애착이라는 말이 지겹다.
대상 항상성은 대상, 특히 어머니가 곁에 있거나 부재하거나 간에, 또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좌절시키거나 간에 어머니에 대한 일관된 상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대상관계 이론과 실제-자기와 타자> 中.
대상 항상성은 엄마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사랑해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것을 갖지 못했으며, 그랬기에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어려웠을 것이며, 그랬기에 늘 불안했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의 이 불안감이 30여 년 전에 채워져야 했을 애착 때문이 라니... 30여 년이 지난 일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다니..
엄마가 증오스러웠다.
그녀는 나를 사랑해준 적 없었으나, 나는 그녀에게 남편이었고 부모였다. 그 무게가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그녀가 내게 하는 의존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모든 문제, 모든 어려움, 모든 불만을 내게 하소연했고 해결해주기를 바랐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었던 내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킨 것도 그녀였다. 그녀를 증오했다. 원망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죄책감을 느꼈고 죄책감 때문에 괴로웠다.
그녀가 가여웠다.
무지한 부모를 만나, 경제적 정서적 빈곤을 겪으며 자란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결혼생활도 순탄치 않았음도 알았다. 첫아이의 모든 순간을 지켜보지 못하고, 보고 싶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엄마로서의 그녀가 가여웠다. 그녀를 증오하지만, 그녀를 가여워하는 것 역시 내 마음의 절반이었다.
나는 애증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겪는 정신적 어려움의 원인이 한 꺼풀씩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할머니는 불행했다. 그리고 그 빈곤과 불행은 엄마에게까지 대물림되었다. 엄마는 불행했기에 정서적 여유가 없었고, 정신적 성숙을 이룰 수 없었다. 내가 태어났고, 나 역시 불행했다.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애착 때문에 자존감이 낮고, 대인관계가 어렵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 불안, 우울을 경험하고 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의 알렉산드리아 마르자노 레즈네비치가 그랬듯, 어쩌면 인간은, 과거에 뿌리를 내린 채 현재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과연 나는,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나는, 이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과연, 대물림을 끊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