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나무가 바람과 함께 쏴아 흔들린다.
새파란 하늘이 끝없이 펼쳐지고, 그 끝에는 바다의 지평선이 광활하게 걸려있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제주는 바다에 고립되어 신비한 아름다움을 내쉰다. 그래서 제주의 숨은 아름답다.
울창한 나무와, 멈추지 않는 바람, 새파란 하늘과 바다가 서로를 만지는 그곳에 나는 서있다.
나도 아름다워지고 싶어서, 나도 바다와 만나고 싶어서 그곳에 있다.
아이들은 너른 풀밭을 뛰놀며, 갇혀있던 자유를 풀어놓는다.
작은 꼬막손으로 아빠의 투박한 손을 잡아끈다.
나는 모든 것을 바라본다. 이곳의 모든 것과,
나의 모든 것을 바라보며, 이 모든 것들이 타자이기도, 나의 일부이기도 함을 깨닫는다.
산호빛 바다를 강이라고 하지 않고, 파란 하늘을 바다라고 하지 않듯, 내 세포에 낙인처럼 새겨져야 했던 불행의 기억들을 그대로 부른다.
내가 지닌 아픔, 불행, 분노, 원망, 슬픔, 공포들을
그대로 부른다.
모든 것들은 내 안에 있고, 나의 일부이다.
그것들이 나를 집어삼켰을 때에, 나는 세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모두에게 주어진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불공평하더라도 인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받아들여야 할 것은 세상도, 불공평함도 아니었다.
나 자신이었다.
나를 괴롭게 했던 그녀를 통해, 나를 외면했었던 많은 날들을 통해, 나는 나에게로 떠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이 불행의 연속이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나를 괴롭게 하지 않았더라면, 내 정신적 통증이 육체를 지배하지 않았더라면 깨닫지 못했을 나를 찾아갈 일이 다행이다.
나는 앞으로 나를 찾아가게 될 것이므로, 너무 늦지 않아 참 다행이다.
흉터가 생겼지만, 다행이다. 거기 흉터가 있음을 알았고, 그곳을 볼 수 있어서 내가 아픈 이유를 알았다.
이제 스스로 흉터에 약을 바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의 탄생이 싫었고, 내 부모가 싫었고, 딸인 것이 싫었고, 아내인 것이 싫었고, 며느리인 것이 싫었고, 엄마인 것이 싫었다.
그 모든 역할들이 힘에 부치고 괴로워서 나를 찾을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나는 나를 잃으며 살아왔지만, 동시에 그것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되었다.
그 과정들을 통해,나의 전부로 여겨졌던 상처들이
실은 내 일부일 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아픔은 나를 지배했지만 나를 정복할 수는 없으리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것들은 앞으로 나를 찾아갈 열쇠가 될 것이다.
나는 무엇이며 누구인지에 대한 힌트를 알려줄 것이다.
알려주지 못한대도 괜찮다.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기에.
반드시 지평선에서 맞닿는 하늘과 바다처럼 나도 나를 만나고 싶다.
바다와 하늘이 필연인 것처럼, 나도 나에게 필연이 되고 싶다.
제주의 바다와 하늘은 그래서 아름답다.
나는 나를, 지금 만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