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아름답지만 깨어지기 쉬운 유리 같은 행복

by 흔들리는 민들레




불은 거대한 짐승과 추위로부터 인간을 지켰다.

불은 인간을 파괴하기도, 세계를 파괴하기도 했다.

불이 지나간 자리에는 끔찍한 파멸만이 남았다.

불은 때로 그 따듯함으로 생명을 탄생시키기도, 그 뜨거움으로 생명을 파괴하기도 했다.

그것은 괴팍하며 인정사정없으며 끔찍하지만 따듯하고 아름답다.

나는 불이 가진 이중성을 보며, 그것이 인간의 삶과 무척 닮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뜨거운 태양의 기능을 만물의 생장으로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토록 뜨겁고 강렬한 불 속에서 깨지기 쉬운 유리가 나온다.

유리는 깨지기 쉬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아름답지만 불안정성을 지닌 유리는 렬한 에서 탄생된다.




나는 내 불행의 원인을 알아나가는 중이다.

내가 가졌던 많은 감정들의 정체를 알아나가며

앞이 보이지 않아 불안했던 나날들 앞에 하나하나 불을 밝히고 있다.

내 아픔의 유리들은 나를 투명하게 비추어 주고,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그것을 안다고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나에게 조금은 실망했던 것도 같다.

그 모든 감정을 알아채고 마치 도를 닦는 현자처럼, 부처처럼 그저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일까?

감정을 이성으로만 바라보려 했던 것일까?




내 감정에 한 발 떨어진다는 것은 나를 타인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가까운 친구처럼 생각할 수 있 것이란 걸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내 감정을 느끼고, 알아채고, 한 발 벗어나 그것을 보았다.

아팠다. 슬펐다. 괴로웠다. 무서웠다.

나는 그 감정들이 힘들어서 차라리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감정에 스위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필요할 때는 켜고 필요 없을 땐 꺼버릴 수 있다면 아픔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내가 가진 복잡한 감정들의 실체를 많은 부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 녀는 변함이 없다.

그녀는 지금도 끊임없이 나를 괴롭게 한다.

나의 상황이나 여건은 전혀 고려치 않은 채 내게 많은 요구들을 하고, 내가 그것을 채워주지 못하면 비난하고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내가 원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내게 그것은 지속적인 정서적 폭력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무척 괴롭다.

아프다고, 그러지 말라고 말해도 소용없다.

그녀는 자식이 나뿐이니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음을 무척 당연게 이야기한다.




나는 그녀에게 자식에게 의지하는 것과 함부로 대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고 말했다.

당신은 나뿐이지만, 나는 남편도, 아이들도, 시부모님도 챙겨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앞으로 최선을 다 하겠지만 당신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 없는 순간이 있음을 받아들이시라고 말했다.

그녀는 화를 내며 내게 말했다.

다시는 부탁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부탁을 내게 하지 않으면 내가 섭섭해할 것 같아 그리하였다고 말한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내 것인 양 말하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돌봄을 내게 필요한 것인 양 말한다.

그것은 모두 그녀의 것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그녀의 감정이 아니라 순수한 내 감정의 자유로움이다.

물속을 무거운 산소통도 없이 자유로이 헤엄치는 해녀의 몸짓에 눈물이 터져버릴 정도로 나는, 자유롭고 싶었다.

그녀에게 말을 하고 난생처음으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죄책감으로 범벅이 된 상처투성이 가슴을 안고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된 것이 나의 매우 큰 발전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정의 소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 감정을 분노 없이 꺼내놓은 그 날, 나는 위가 아파서 하루 종일 음식을 먹지 못하며, 늦은 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 지금도 아프구나..

나, 지금도 슬프구나..

나, 아직 나를 지켜내는 연습이 더 필요하구나..

그리고 나의 생활 속에서 종종 찾아오는 소소한 행복들 앞에서 다시 불안의 고통을 느낀다.

이 행복이 언제 사라질지 알 수가 없어서, 맥박이 빨라지며, 뱃속이 불편하고, 열이 난다.




이 모든 증상들은, 내 의지 아니다.

나는 그저 행복해할 뿐인데, 내 육체에서 일어나는 반응이다. 무의식의 반응이다.

행복에도 나는, 용기를 내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유리처럼 깨어지기 쉬운 행복을 지닌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