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는 아버지가 다른 자신의 아들을 자신보다 더 잘 챙겨주기. 내게 전화를 걸어 필요한 물건들을 사달라고 한다. 내게 전화를 걸어가고 싶은 병원에 같이 가자고 한다. 내게 전화를 걸어, 물은 적 없는 일상의 일들이나,알고 싶지 않은 자신의 형제들 소식을 전한다. 그녀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내게 전적으로 의지한다.
마치 자녀가 부모에게 의지하듯이.
나는 의지하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그녀의 행동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의지하지 않았고 원하는 것들을 말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그 반대였다.
나는 모든 것을 혼자 해냈지만, 사랑받거나 인정받는 느낌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공허하고 외로웠고 버려진 느낌이었고 불행했다.
관계 속에서 한 번도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으므로 외톨이였다.
내가 속한 원가정에서도, 현재 이루고 있는 가정 내에서도, 늘 의지하지 않으려 애썼다.
위경련이 찾아와 허리를 펼 수 없는 지경이어도 남편과 아이들을 집에 둔 채,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갔다.
타인에게는 말할 것도 없었다. 내 사전에 부탁이란 단어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탁해야 할 일이 생기거나, 의지해야 할 일이 생기면 참기가 힘들 정도로 마음이 불편했다.
의지나 부탁을 하는 나는 나쁜 사람이었으니까.
모든 행동이 사랑받기 위해서였다.
타인에게 갈구하는 사랑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신기루와 같았다. 나는 사막 한가운데서 참기 힘든 갈증을 겪으며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는 신기루와 같은 사랑을 불안해했다. 그랬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온전히 행복하지 않았다. 내가 사랑했던
그들은 언제고 떠나갈 이들로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늘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언제 찾아올지 모를 사랑의 상실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다치고 싶지 않아서,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아서 많은 관계의 이별을 미리부터 `각오`하고 있었기에 무척 괴롭고 외롭고 위축돼있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 불행했다.
아기는 엄마로부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데, 엄마는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으므로 내게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없었다.
지금은 그걸 알지만 과거엔 몰랐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미워했었고, 엄마를 미워하는 나를 보며 죄책감을 느꼈다.
슬펐다.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구나,
나를 낳아준 엄마를 증오하는 패륜아구나.. 하며 괴로워했다. 과거에는 그것이 내 감정의 전부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내 죄책감은 엄마 감정의 투사로 인해 발생된 것이며, 전적으로 내 안에서 일어난 감정만은 아니라는 것을.
엄마는 끊임없이 내게 죄책감을 주었다. 그래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는 그것을 안다. 그렇다면 이제는 불행하지 않은가? 이제 나는 행복한가?
아는 것과 감정은 다르다.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었고, 더불어 알지 못했던 감정도 알게 되었지만 그래서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아니, 평온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모든 관계 속에서 상실을 준비하느라 긴장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일을 멈추려고 노력하고, 의식을 나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흐름을 판단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사회나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에 나를 맞추려 했던 기준을 거두고, 진짜 나 자신이 원하는 가치가 무엇 일지를 생각해본다.
마음에 힘을 빼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 모든 노력들이 힘들 때도 있다. 그런 순간에는 잠시 노력을 멈추고 그냥 미워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과거처럼 그 감정에 매몰되지 않으며 짧은 시간 안에 벗어난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나의 감정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 노력들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기 위한 일들이다.
나를 미워하는 감정은, 내 것이 아니다.
나의 엄마는,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내게 주었다.
그녀는 오늘도 내게 전화를 걸어 물건을 사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그녀의 요구가 부담스러웠다.
부담스러워하는 나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내게 이러한 감정을 심어준 엄마를 미워했다. 과거에는 알지 못했던 감정의 흐름을 바라보고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나의 모든 감정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흘러나오는 거라고. 엄마는 아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 그런 감정을 심어줬을 거라고. 그건 그녀의 무의식이 한 일이라고. 설령 그것이 그녀의 의도라고 하더라도 이제 더 이상 그것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