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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더 글로리]-연진이는 의존적이다.

메이저가 아니라 마이너로 살겠습니다.

by 흔들리는 민들레




미투 운동에 이어, 부조리와 불합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폭로하는 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여성계, 의료계 그리고 공무원사회, 문학계 할 것 없이 도처에서 심심치 않게 약자들의 폭로가 계속되고 있다. [더 글로리]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에서 등장한 가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공분도 그렇고 나는 그러한 현상이 사회가 성숙해지고 있다는 증명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더 많이 폭로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평등하다는 기본적 전제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권력 앞에서, 강자 앞에서 그 힘과 권력을 걷어찬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세상은 불합리와 부조리로 가득 차 있고, 그렇기에 삶은 언제나 치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은 약자가 각성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약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유는 [공개] 때문이다. 과거 부조리한 일들이 사람에 대한 통제로서 [은폐]가 가능했다면 이제는 누구나 정보에 접근하기가 쉬워졌고 접근한 정보에 언제든 누구나 [공개]라는 장치를 사용하기가 과거보다 더 쉬워졌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약자는 강자에게 의존함으로써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독자적으로 살아가기 시작하고 있다. 가스라이팅에 대한 많은 이슈들도 있었다. 왜 가스라이팅이 일어나는지, 그 과정이 어떤지에 대해 분석하고 가스라이팅을 당하지 않는 방법들을 영상으로 공유하는 유투버들도 많다. 모두 [정보공개]라는 맥락에 있다.


타인을 권력이나 힘으로 통제하려는 사람의 행동을 공격성이나 폭력성의 관점으로 볼 수 있지만 의존성의 관점으로도 볼 수 있다. 그들에게 늘 통제하려는 대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자기보다 강자에게는 할 수 없는 의존을 약자에게 하는 것이다. 그 괴롭힘이 실은 자기의 의존성인 것을 본인은 모를 것이고 알고 싶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겠지만 그들에게 약자가 없다면 강하고 싶은 자신들의 욕망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더 글로리]의 연진이 역시 남편에게 자신의 모든 걸 말하지 않고 숨기기에 바쁘다. 그녀의 남편은 힘과 권력을 가진 강자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자신의 남편에게 마음껏 의지할 수 있다면 솔직한들 무슨 상관일까. 그러나 그녀는 솔직할 수가 없다. 마음껏 의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릴 때처럼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왜곡된 방식으로 해소며 살아간다.




이 있는 곳에는 그래서 의존성이라는 것이 숨어있다. 그들은 무척 미숙한 의존성을 가지고 있며 그 의존성이 정면으로 반박당하고 까발려지고, 통하지 않을 때 당황한다. 그들의 그 당당함에 뭔가 대단한 것이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텅 비어있다. 극 중 현남이 연진의 따귀를 때릴 때, 연진이 뭔가 대단한 행동을 할 것 같지만 반격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나 복수극이 재미있는 진짜 이유는 악인의 파멸이 아니라 주인공의 각성이다. 지점에서 나는 인간의 성선설을 믿게 된다. 약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공감을 본다.


착하기만 했던 주인공의 각성, 또 짓밟힌 자기 소신을 지켜나가려 강압과 통제에 맞서는 주인공을 보며 우리의 존엄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코 포기해서도 꺾여서도 안된다는 걸 주인공의 각성을 보며 다시 한번 깨닫는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이 존재하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군림하려 하거나,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진짜 어른은 독립적으로 독자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늘 타인이나 세상에게 화를 내고, 타인이 못마땅하고 타인을 가르치려고 하는 어른은 실은 의존하는 것이다.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타인이나 세계로 인해 존재하는 것이다.


너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은 어른이 될 수 없다. 내가 선택했다고 하는 사람이 어른이 된다. 거기서 주체성과 독립성이 생겨난다. 세상에는 진짜 어른보다 가짜 어른들이 더 많다. 그런 어른들을 보며 나는 어떤 어른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 오래오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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