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에 이어, 부조리와 불합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폭로하는 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여성계, 의료계 그리고 공무원사회, 문학계 할 것 없이 도처에서 심심치 않게 약자들의 폭로가 계속되고 있다. [더 글로리]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에서 등장한 가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공분도 그렇고 나는 그러한 현상이 사회가 성숙해지고 있다는 증명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더 많이 폭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평등하다는 기본적 전제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권력 앞에서, 강자 앞에서 그 힘과 권력을 걷어찬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세상은 불합리와 부조리로 가득 차 있고, 그렇기에 삶은 언제나 치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은 약자가 각성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약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유는 [공개] 때문이다. 과거 부조리한 일들이 사람에 대한 통제로서 [은폐]가 가능했다면 이제는 누구나 정보에 접근하기가 쉬워졌고 접근한 정보에 언제든 누구나 [공개]라는 장치를 사용하기가 과거보다 더 쉬워졌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약자는 강자에게 의존함으로써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독자적으로 살아가기 시작하고 있다. 가스라이팅에 대한 많은 이슈들도 있었다. 왜 가스라이팅이 일어나는지, 그 과정이 어떤지에 대해 분석하고 가스라이팅을 당하지 않는 방법들을 영상으로 공유하는 유투버들도 많다. 모두 [정보공개]라는 맥락에 있다.
타인을 권력이나 힘으로 통제하려는 사람의 행동을 공격성이나 폭력성의 관점으로 볼 수 있지만 의존성의 관점으로도 볼 수 있다.그들에게 늘 통제하려는 대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자기보다 강자에게는 할 수 없는 의존을 약자에게 하는 것이다. 그 괴롭힘이 실은 자기의 의존성인 것을 본인은 모를 것이고 알고 싶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겠지만 그들에게 약자가 없다면 강하고 싶은 자신들의 욕망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더 글로리]의 연진이 역시 남편에게 자신의 모든 걸 말하지 않고 숨기기에 바쁘다.그녀의 남편은 힘과 권력을 가진 강자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자신의 남편에게 마음껏 의지할 수 있다면 솔직한들 무슨 상관일까. 그러나 그녀는 솔직할 수가 없다. 마음껏 의지하지 못하는 것이다.어릴 때처럼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왜곡된 방식으로 해소하며 살아간다.
힘이 있는 곳에는 그래서 의존성이라는 것이 숨어있다. 그들은 무척 미숙한 의존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의존성이 정면으로 반박당하고 까발려지고, 통하지 않을 때 당황한다. 그들의 그 당당함에 뭔가 대단한 것이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텅 비어있다. 극 중 현남이 연진의 따귀를 때릴 때, 연진이 뭔가 대단한 행동을 할 것 같지만 반격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나 복수극이 재미있는 진짜 이유는 악인의 파멸이 아니라 주인공의 각성이다. 그 지점에서 나는 인간의 성선설을 믿게 된다. 약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공감을 본다.
착하기만 했던 주인공의 각성, 또 짓밟힌 자기 소신을 지켜나가려 강압과 통제에 맞서는 주인공을 보며 우리의 존엄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코 포기해서도 꺾여서도 안된다는 걸 주인공의 각성을 보며 다시 한번 깨닫는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이 존재하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군림하려 하거나,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진짜 어른은 독립적으로 독자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늘 타인이나 세상에게 화를 내고, 타인이 못마땅하고 타인을 가르치려고 하는 어른은 실은 의존하는 것이다.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타인이나 세계로 인해 존재하는 것이다.
너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은 어른이 될 수 없다. 내가 선택했다고 하는 사람이 어른이 된다. 거기서 주체성과 독립성이 생겨난다. 세상에는 진짜 어른보다 가짜 어른들이 더 많다. 그런 어른들을 보며 나는 어떤 어른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 오래오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