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배울 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오래전 일이라 선생님은 그 말을 기억하지 못하실지 모르지만, 왜일까. 왜 이혼해야 더 잘 쓸 수 있는 걸까.. 생각을 많이 하는 게 습관이라 여러 날 그 말에 대해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 말을 들은 게 7년 전쯤인데 이해한 건 최근이다.
안정적으로 살고 싶었다.(위태롭게 살고 싶은 사람도 있나) 부유하거나 그런 것은 바라지도 않았고 가난하더라도 알콩달콩 살고 싶었다. 물론 부유한 이들이 누리는 편리한 삶이 왜 부럽지 않았겠나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것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니까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얼마쯤은 물가걱정도 하고, 추운 날엔 김 폴폴 나는 우동 한 그릇 사 먹을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소소한 추억을 쌓아가며 살고 싶었다. 너무 외롭고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큰 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결혼생활에도 어려움을 겪고, 먼 타인들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받으니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내 인생은 저주받았다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큰 욕심을 가지고 살았던 것도 아닌데, 그냥 소소하고 소박하게 사랑하며 살고 싶었을 뿐인데 그조차도 나의 운명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인가 싶어서 울었던 날들도 많았다. 행복하지 않았다.고통스럽기만 했으니까. 아주 긴 시간 그랬다. 성장할 때도 성장하고 나서도 중년이 될 때까지도 그랬다.
그런데 정말로 모순처럼 보이는 것은, 그랬으므로 나를 찾을 수 있었다. 운명에게 언제나 거부당하고 폭행당하는 느낌이 나를 더 생존하게 했다는 말이다.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마주했던 어려운 일들 앞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어떻게 해야 이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을까?' 연구하게 되었다. 내 앞에 놓인 어려운 문제(?)를 풀어나가는 능력치가 하나의 문제를 풀어갈 때마다 조금씩 상승했고 생각의 폭이나 성찰의 폭도 조금씩 넓어졌다. 그때에는 너무 고통스럽고 아프고 괴로웠는데 그 시기를 지나고 나니 성장했다. 그런데 그때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고비의 순간마다 살아남기 위해 강제로 해야만 했던 '지금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이 어려움을 잘 넘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이 결국에'나는 무엇을 원하지?'의 성찰로 변화되어 나라는 세계를 깊이 탐색하는 기회가 되었다. 인생의 고비는, 그 고비를 경험하는 것은 나를 유연하게 만들었다. 어떤 문제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하게 만들었고 다각도로 행동하게 만들었다. 머무르게 하지 않고 나아가게 만들었다.
안정적인 삶 속에 놓인 사람은 그 삶이 너무 안온하고 따듯하기 때문에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벗어날 동기가 생기지 않으니까. 그러나 폭풍의 언덕에 서 있는 사람은 그 폭풍을 피하기 위해 움직인다. 그의 동기는 폭풍을 피하는 것이 된다. 폭풍의 경로는 알기 어려우므로 폭풍을 피하면서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도 가보게 된다. 그래서 새 길을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든 위험을 피하고 살아남아야 하니까 이 방법 저 방법 다 쓰면서 유연해진다. 가만히 있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계속 움직여야 해서 근육도 굳은살도 생긴다. 그러나 안정적인 삶 속에 놓인 사람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유연함을 상실하게 된다. 자기가 살아오며 걸어왔던 길로만 가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 방식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지 않았으므로 익숙했던 방식들에 고착화가 진행된다.
이러다 다 죽어~
폭풍의 언덕으로 올라가라
사람의 내면에는 성장에 대한 욕구가 있다. 누구에게나 있다. 아무리 삶이 안정적이라 하더라도, 삶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성장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안정적인 삶 속에 놓인 사람은 자기 내면의 성장에 대한 욕구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분명 그 욕구 때문에 올라오는 감정이 있는데도 감정을 부인한다. 그 욕구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불편해지니까. 안정적인 세계를 벗어난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므로 그렇다. 또 누군가는 성장에 대한 욕구를 욕망으로 치환하기도 한다. 그것을 쾌락으로 채우면 되는 줄 알고 끝없는 쾌락을 찾아그때그때 틀어막으면서 살아간다.
간혹 안정적인 삶 속의 어떤 사람은 자신의 성장에 대한 욕구를 인지하고 성장하기 위한 시도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분명 힘들고, 번거롭고, 고통스럽고, 노력이 필요한 일이므로 이내 따듯하고 안정적이었던 자기 삶으로 도피하고 만다.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절박할 이유가 없다. 안정적인 삶 속에 있는 사람은 언제든 성장할 시간적, 인적 기회가 충분히 있지만 동기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성장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자기 내면의 발휘되지 않은 잠재력의 뚜껑은 열어보지도 못한 채 관뚜껑이 닫히는 것처럼 잠재력의 뚜껑도 닫히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말한다. 내 인생은 괜찮았어...
그렇다. 괜찮았을 것이다. 폭풍의 언덕에 올라가기를 통제했으니 평온했을 것이다. 안전은 했을 것이다. 안전제일이니까. 그러나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성장에 대한 욕구뿐 아니라 무한했을지도 모를 가능성의 잠재이다. 가능성은 곧 희망이다.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허무와 공허가 찾아오는 것은 그 희망을 모른척했기 때문이다. 희망 없는 삶은 가사의 상태와 다르지 않다.
7년 전, 선생님이 했던 "글을 잘 쓰고 싶으면 이혼해라"는 말은 아마 그런 뜻이었을 것이다. " 폭풍의 언덕으로 올라가라. 폭풍에 맞서라. 그래야 너를 찾을 수 있다. 그래야 네 안에서, 너만의 글이 나올 수 있다. "
그래서, 나는 이혼했을까? 궁금하신 분은 나의 전작 <산다는 것은 흔들리는 일이다>를 읽어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