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쎄, 엄만 꼭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사람들은 그렇다고들 하더라. 그런데 그건 왜 물어?
/ 선생님 딸이 인서울 대학 갔다고 그러셨어요. 공부 잘 안 했었는데 갑자기 열심히 해서 인서울 대학 갔대요.
/ 그렇구나.. 선생님은 오랜 시간 학생들을 가르쳐오셨으니까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듣는 건 좋은 거야. 그리고 존중해드려야 하고. 그런데 있잖아.. 선생님의 말씀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야. 알았지?
아이에게 답을 해주면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졸업한 대학으로 자기 자신이 증명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그 기준들에서 소외되는 증명되지못한 훌륭한 인재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마음속 어디에선가 흘러나왔다.
교육의 본질은 무엇일까. 사람들을 노동을 위한 존재로 만들어내기 위한 사회화 과정일까, 아니면 고유한 개성을 가진 한 인간으로 독립시키기 위한 과정일까. 교육의 본질은 대체 무엇일까.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을 하고, 좋은 회사에 취업을 하면 잘 사는 인생일까? 행복한 인생 성공한 인생의 기준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한국 학생들이 우수하다는 것은 전 세계가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과연 우리의 아이들은 독창적이고 창의적일까? 유연하고 탄력적일까? 그러한 질문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고개가 가로저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때 배운 과목 중 하나는 부기였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 직장에서 부기를 사용해 본 적은 없다. 학교에서 배운 것들은 지식이었다. 더하기 빼기부터 시작해서 경도와 위도, 지금은 생각도 안나는 인수분해, 내가 배운 모든 것들이 쓸모없는 것들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인생을 살아오며 정작 필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내게 정작 필요했던 것은 내면적 힘이었다. 지식들은 언제든 다시 습득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지혜는 그렇지 않았다. 학교는 나를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으로 가르치기보다 사회에서 혹은 공장에서 부리기 쉬운 인력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지금도 교육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노력하고 계시는 수많은 선생님들이 계시다는 것을 안다. 선생님들의 노고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교육의 이런 지식단련적 구조라면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교육을 경험하기 힘들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육의 구조이다. 교육의 본질이며 목적이다. 그동안 우리의 교육은 많은 성과를 이뤄냈다. 그것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많은 성과를 이뤄냈으니 이제는 방향을 달리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다양성과 고유성을 이끌어내는 교육
분류를 위한 교육제도
어떤 교육도 절대적인 것은 없다. 또 어떤 교사의 말도 절대적일 순 없다. 엄청 유명하다는 일타강사의 어떤 말도 절대적일 수 없다. 스승의 말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기에는 시대가 너무 급변하고 있다. 전문가들조차 때로는 의견이 엇갈리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한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잠재력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교육이 아이들의 잠재력을 발휘하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하나의 목표를 던져주고 뛰어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을 분류하는 교육의 구조는 기준을 만들고 다양성을 침해한다. 지식은 그동안 충분히 공부했으니 이제 그것의 반정도는 인공지능의 몫으로 남겨두고 지혜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살아가는 지혜,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습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만들어주어야 할까? 나는 아이들에게 일찍부터 철학을 배울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철학으로 생각하는 연습을 하고 심리학으로 인간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탐구하게 되고, 자기 자신을 탐구하다 보면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계획이 생긴다. 그리고 계획이 생기면 학습에 대한 동기도 따라오게 된다. 그렇게 자기 주도적 학습이 시작되는 것이다.
철학이나 심리학이 어려운 학문이기 때문에 대학교육 과정에 있는 학생들만 공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아이들이 받아들이기 쉽도록 교육 과정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 필요한 교육은 좌절과 실패가 난무하는 인생에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내면적 힘을 길러주는 교육이다. 공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류와 골라내기가 아니라 통합과 다양성의 수용이다.
기준과 보편을 찍어내는 교육이 아니라 고유성과 다양성을 이끌어내는 교육으로 변화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딸들을 포함한 모든 학생들에게 말하고 싶다. 정답은 학교나 스승에게가 아니라 당신 안에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