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당신에게 주고 싶은 꽃다발

메이저가 아니라 마이너로 살겠습니다.

by 흔들리는 민들레




반전


한낮의 햇살이 정수리를 달구고 있었다. 벌써 열 번째 팀이 장기자랑을 하고 있다. 코로나가 끝나고 처음 맞이하는 축제여서 그런지 분위기가 쉽사리 달아오르지 않는다.


/ 다음 참가자는~ 창모의 메테오~박수~ 주세요~!


빰빰, 빰빰, 빰빰 빰빰! 조금의 무기력이 감도는 운동장에 <메테오>의 묵직한 시작 부분이 울려 퍼졌다. 무거운 비트가 심장을 쿵쿵 두드렸다. 이번엔 어떤 무대가 이어지려나 순간의 기대감이 고개를 들었다.


/ 여러분! 모두 비트에 맞춰서 왼손! 오른손! 흔들어주세요!


참가자는 마치 자신만의 콘서트 무대에 오른 것처럼 자유롭게 관객들을 유도했다. 왼쪽 오른쪽 넓은 무대를 자기 안방처럼 자유롭게 뛰어다녔다.


/ 여러분! 함께해요!!


자연스러운 무대매너, 내가 이 무대를 씹어먹어주겠어 와 같은 그분의 당당함이 순식간에 관객석의 분위기를 바꾸는 바람에 기대감이 증폭되었다. 노래를 정말 잘하시는 분인가 보네... 생각하고 있는 중에 드디어 노래가 시작됐다.


응?? 이 노래가 그 노랜가? 분명 박자와 반주는 그 노래가 맞는데... 그 노래가 이렇게 진행됐던가? 관객석의 당황스러움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그는 정말 당당하고 신나게 노래를 계속했다. 마치, 이 노래의 음정 박자 따위는 나한테 전혀 중요하지 않아. 쀨링이 제일 중요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는 당당하고 즐거워 보였다. 신기한 것은 처음엔 당황하던 관객들이 그의 당당함에 무대를 즐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음정도 박자도 심지어 가사도 자꾸 틀리던 그의 노래, 어찌 보면 말도 안 되고 근본도 없어 보이는 실력을 전혀 개의치 않는 그의 모습에 나는 해방감마저 느꼈다. 3분이라는 시간이 짧고 아쉽게 느껴지기까지 한 데는 그의 <당당함>이 있었다.





멋진 무대매너



기막힌 무대매너


그의 무대를 본 뒤로 창모의 <메테오>를 들으면 나는 그 노래를 부른 진짜 가수보다 장기자랑을 하러 나왔던 그분이 먼저 떠오른다.


나는 내가 여러 가지로 미숙한 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어떤 때는 그것이 겸손함이 되고 어떤 때는 열등감이 되었다. 무언가를 할 때도 언제나 잘 해내고 싶었다. 만약 요리를 한다면 잘. 하고 싶었고, 글을 쓴다면 잘. 쓰고 싶었고, 노래를 한다면 잘. 하고 싶었고, 그림을 그린다면 잘. 그리고 싶었고, 사랑을 한다면 잘. 하고 싶었다. 나는 <메테오>의 그처럼 당당하지 못했다.


그의 무대가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무도 그가 못한다고 욕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에게 야유를 하지도 손가락질을 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그와 함께 노래를 하고 박자에 맞춰 손을 흔들었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도, 무대 아래서 그의 노래를 들었던 관객들 모두도 즐거웠다. 불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상의 기준을 거부하자.



당당해도 된다.


능력주의의 신화를 요구하는 사회는 1등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는 메시지를 준다. 그래서 아이들은 인서울이라는 말의 의미를 일찍부터 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삶에 대한 기준들이 넘쳐난다. 후회한다는 것은 좋지 못한 선택의 결과라고 정의 내린다. 우리에게는 시행착오를 할 시간도, 시행착오로 인해 다른 경로를 모색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정규교육과정에서 모든 것을 다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에 대한 후회조차 하지 않아야 좋은 삶을 사는 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잘하는 사람은 잘하는 사람대로 불안하고 못하는 사람은 못하는 사람대로 열등감을 느낀다.


어른들은 이런 말을 하곤 했다. <기술을 배워라>

기술을 배우라는 말은, 어떤 한 분야만을 잘하라는 말과도 같다. 러나 어떤 사람은 한 분야를 파고들어 잘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다양하게 잘할 수 있다. 리고 어떤 사람은 잘하지 않아도 즐겁게 할 수 있다. 그 즐거운 모습이 타인들에게 행복을 기도 한다.


꼭 반드시 무엇 하나를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기술을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기술을 가졌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당당해도 된다는 사실이다.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는 세상의 기준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다만 내가 먼저, 나를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내게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세상에게 할 말이 생기니까.


마음이 쪼그라들 때, 그래서 나는 창모의 <메테오>를 듣는다. 그리고 당당한 그분을 떠올린다. 그분께 정말 감사하다. 감사의 마음으로 이 꽃다발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