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강점과 약점이라는 것에 대하여.

메이저가 아니라 마이너로 살겠습니다.

by 흔들리는 민들레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전두엽 파이팅.



살아가다 보면 불안이라는 감정과 마주할 때가 있다. 불안정한 미래를 바라보며,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점검한다. 그건 스스로가 무기라고 생각하는 것들인데, 어떤 날에는 이것들이 다 뭐지? 그동안 뭘 한 거야?라는 생각이 들고 또 어떤 날은 이 정도 면 뭐 잘했네.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나와 나의 삶에게 일정한 만족감이 들었으면 좋겠는데 때때로 다르다.


마음이 선풍기 버튼처럼 1단을 누르면 1 만큼이 나오고, 2단을 누르면 2 만큼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1단을 눌렀는데 3단이 나오고 좀 더워서 3단을 눌렀는데 약하디 약한 1단이 나온다. 마음이 아마 기계라면 고장딱지를 붙여 진작에 서비스센터에 보내버렸어야 옳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언제나 마음이나 감정은 그래왔다. 생각과는 정 반대로 흘렀다.

인간의 불안과 공포는 편도체에서 관장한다는데, 편도체는 그 크기가 크지도 않다. 편도체보다 전두엽이 훨씬 큰데도 편도체가 힘이 더 센 것 같다. 그래서 불안이나 공포 같은 감정이 편도체에서 나오면 나는 전두엽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벽에 이마를 대고 기대선다. 바보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으므로 아무도 없을 때 그렇게 한다.


전전두엽아.. 힘을 내라.. 전두엽아 너도 힘을 좀 내라... 하면서 한 번 콩, 두 번 콩. 세 번 콩, 벽에 이마를 부딪히다가 어느 순간 현타가 온다. 전두엽이 드디어 힘을 낸 순간이다. (전두엽 파이팅.)






고흐. 아를르의 포룸광장의 까페 테라스




고흐의 에너지



불안할 때는 고흐의 그림을 본다. 흔들리는 파란색과 노란색의 조화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만 불안한 게 아니라는 걸, 나만 슬픈 게 아니라는 걸 느낀다. 이미 사라진 사람에게 묘한 동질감을, 오래전 어느 순간에 벌어진 타인의 감정에게 현장감을 느낀다.


그의 그림에는 채워지지 않은 의존성과 불안, 슬픔들이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다. 그런 감정들이 그저 평면인 종이에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고 있으므로 보는 이에게 그 에너지가 작용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파동이 있으니까. 노란색은 파란색과 함께 있을 때 더 돋보인다. 파란색 역시 노란색과 함께 있을 때 더 청량하고 선명해 보인다.




그는 사랑하는 동생 테오에게 말했다.


시인, 음악가, 화가...
그 모든 예술가들이
불우하게 살았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삶 전체를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죽을 때까지
삶의 한 귀퉁이밖에 알 수 없는 것일까?
죽어서 묻혀버린 화가들은
그 뒷세대에 자신의 작품으로 말을 건다.








세상의 모든 색



당신의 색깔


세상 모든 색은 자기만의 빛깔을 가지고 있다.

노란색과 파란색이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저마다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색은 다르다. 만약 노란색이 회색과 함께 있다면 조화로울 수 있을까? 만약 회색이 짙은 남색과 함께 있다면 회색이 돋보일 수 있을까?


강점과 약점이라는 것은 그런 것과 같다. 한 사람이 어떤 배경에 있을 때 그 사람이 돋보일 수 있는 곳에서는 그 사람의 색깔이 강점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그 사람의 색깔이 약점처럼 보인다. 그 사람은 언제나 같은 색이었음에도 그렇다. 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렇게 보여진다는 점]에 있다.

불안과 공포라는 감정은 편도체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어쩌면 배경에서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가장 큰 공포는 무리에서의 이탈이니까.


나라는 색깔은 늘 같았고 앞으로도 같을 것이다.

그러나 외부의 판단이나 평가는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므로 정답은 나만의 색깔에 있다. 노란색은 노란색의 정답이 있을 것이고 파란색은 파란색의 정답이 있을 것이다. 판단이나 평가는 결코 당신의 정답이 될 수 없고 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