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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리는 민들레 Jun 07. 2024

47. 선량한 무능력자

당신과 나의 고통



선량함이라는 껍데기


선량함이라는 껍데기


나는 선량함이라는 단어가 싫다. 선량함의 의미에는 착함과 어진 것이 있다. 착함과 어질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것을 착하다고 할까? 배려하고 욕심부리지 않는 것? 희생적이고 이타적인 것?


한 사람에게 요구되는 착함 뒤에는 타인의 바람이 숨어있을 수 있다는 걸, 그것은 타인의 바람이 만들어낸 허상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부모님의 생생한 실연을 보고 알았다.






희생적 삶


희생적 삶


친정엄마는 대가족의 셋째 딸로, 지문이 마르고 닳도록 일을 했다. 그렇게 여러 명의 오빠와 남동생들을 공부시키고 자기의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돌보았다. 결혼을 해서도 물심양면으로 친정식구들을 도왔다.


그녀는 법을 어겨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준 적이 없었고,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도 않았다. 해가 뜨면 일을 했고 어떤 때는 해가 질 때까지 일을 했다. 쉬어본 적도, 게으름을 부려본 적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자기가 행복하고 기쁠 수 있는지도 몰랐다. 어릴 때처럼 부지런히 일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아 형제들을 도와줬다. 좋은 옷이나 신발을 걸쳐본 적도 없었다. 그녀는 딱 한 사람 나에게만 빼고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그리고 이 사회에게 희생적이자 이타적이었다.





지도를 가진 사람


지도를 가진 사람


그녀는 부지런했다. 그리고 선량했다. 그러나 결국 가난은 한 번도 면하지 못했다. 또한 하나뿐인 딸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나는 가난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수치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정말로 참을 수가 없는 것은 무지한 순종이다. 그렇게 선량한 삶을, 살아버리고 마는 것이다.


선량한 무능력자는 한 사람이 선하고 이타적이어서 탄생되는 것이 아니라 무지하기 때문에 탄생된다.

그리고 그 무지에 대한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몰랐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지로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 책임은 상처라는 이름으로 한 개인에게 영원히 남겨지게 될 것이며 그 상처는 또한 영원한 고통을 유발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삶이 우리에게 하는 엄중한 요구이다.


모르면 상처가 생기고 알면 상처를 이해하게 된다.

모르면 선량한 무능력자가 되지만, 알면 현명한 주체자가 된다. 안다고 해서 삶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나, 알기 때문에 map을 가지게 된다. 그것이 바로 자각이다. 자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더 이상 선량한 무능력자로 살아갈 수가 없다.

모든 사람의 삶에 결코 피할 수 없는 책임이 있고 누구도 그 삶의 고통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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