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흔들리는 민들레 Jun 05. 2024

46. 치킨의 기쁨과 슬픔

당신과 나의 고통




치킨의 기쁨과 슬픔



금요일이면 우리 가족은 늦게까지 논다. 늦게까지란 자정이다. 평일에 공부하느라 고생한 아이들은 금요일 밤이면 작은 일탈을 하는데 함께 과자를 먹으며 영화를 본다던가 치킨을 뜯으며 쿠플(쿠팡플레이)의 예능을 함께 본다.

엄청 대단한 걸 먹는 것도 아니고, 그다지 특별한 일상도 아니지만 아이들과 둘러앉아 치킨을 먹고 있노라면 행복이란 게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가격이 예전보다 많이 올라서 서민음식 중에서도 비싼 축에 들어버린 치킨은 그러나 아직도 우리 가족의 소소하고도 기쁜 일상을 기념하기에 딱 맞춤 메뉴다.

치킨은 아이들에게 기쁨을 준다. 4인인 우리 가족은 소식좌들이어서 한 마리를 주문하면 늘 남는데 두세 조각쯤 먹다가 어느새 한 사람씩 사라져서 찾아보면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치킨은 무언가를 기념할 때, 혹은 무료하고 따분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 때 언제나 함께 있다.









안전한 단 한 곳


세상 속의 한 개인으로서 고독감과 소외감을 느낀 날, 열등감이나 좌절감을 느낀 날 혹은 슬픔이나 우울감을 느낀 날, 그뿐만 아니라 성취감이나 기쁨이나 보람을 느낀 날, 그 모든 감정들을 축하하거나 위로하기 위해 우리는 치킨을 주문한다. 둘러앉아 치킨을 뜯어먹는 그 행위는 단순히 먹는 행위가 아니라 <함께 있음>

을 상징하는 행위다. 세상 단 한 곳, <안전한 곳>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경험이다. 비행기에 공항이 있고, 고속도로에 휴게소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치킨을 뜯으며 밖에서 서로를 힘들게 했던 누군가를 함께 뜯는다.


그러나 나의 유년기엔 치킨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어릴 때라 기억을 못 하는 것인가 싶어 아무리 더듬어봐도 치킨을 먹어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한 가족끼리, 가족이라고 해봐야 엄마와 나 둘 뿐이었으나 단란하고 즐겁게 음식을 나눠먹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서를 나눈 기억이 없다.

밥을 굶진 않았으니 가난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치킨을 먹어본 적이 없으니 가난했다고 해야 할까.

나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을까, 가난하지 않았을까.

HOT의 캔디가 히트를 치던 그 시절에 나는 치킨이 먹고 싶었던 적이 과연 없었을까.








내게 치킨은



지금 내게 치킨은



그렇게 치킨은 매 순간 나에게 말을 건다.

지금의 너는 어떠니? 지금의 너는 치킨을 좋아하니?

지금 너에게 치킨이란 어떤 의미니?

굳건히 닫힌 치킨 상자에서 고소한 냄새가 흘러나온다. 코만으로도 알 수 있는 정체성이 확고한 그 치킨은 가족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나의 유년 시절을 애도하게 만든다.

치킨 한 마리로도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45. 부모는 사라졌을 때 완성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