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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리는 민들레 Jul 22. 2024

9. 타인의 사적 진실에 쉽게 동의하지 않기를-독립

나르시스트와 살아야 한다면



나를 향한 악담


내 안의 나를 향한 악담


기적 같은 건 없다고, 이 세상은 고통과 죽음으로만 가득 찬 지옥이라고 생각했. 나 같은 무쓸모한 인간은 지구의 오염원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매주 월요일은 내가 사는 아파트의 분리수거 날인데 재활용이 될 수 있는 쓰레기를 부러워할 정도였다. 저 쓰레기들은 좋겠다. 재활용이라도 되니까.  온갖 안 좋은 말들이 머릿속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내 머릿속에 떠다니는 온갖 악담들과 나 스스로 그렇다고 여기는 마음들이 실은 내 것이 아니라 다수의 타인들 것이었다는 걸. 나는 나의 영역을 가져본 적이 없는 식민지 같은 사람이기도 했다. 공부도 못하는 애, 쓸모없는 애,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지도 못하는 애, 아이들을 사랑하지도 못하는 나쁜 엄마,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 시부모 마음에 들지도 못하는 며느리... 그 모든 부정적인 마음들 안에는 내가 없고 타인의 규정만 있었다.


얼마나 안타깝고 슬픈 일인가. 한 인간이 타인의 필요에 의해 그 가치가 정해진다는 것이. 인간은 무리 속에서 살아야 생존확률이 높아진다지만 그렇다고 무리에서 그 인간을 정의하고, 그렇게 정의된 대로 평생을 살다가 언젠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가 말이다. 내가 왜,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다는 말인가? 내 우울증은 그게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말하고 있었다.








그러라지



그러라지.


엄마의 여동생이 습관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딸들을 보고 <저것들>이라고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 멍청한 게... "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늘 하던 말, 나는 그런 말들을 내 것으로 삼았었다. 그래서 진짜 멍청 알았다.  많은 어른들 중  이라도 다른 이야기를 해줬더라면, 어쩌면 인생은 지금과 아주 많이 달라져있을지 모른다.


우울증 치료 후에,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당신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모두가 넌 나빠, 넌 멍청해, 너 따위가... 같은 말을 할 때 그게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말해줄 수 있는 한 사람이고 싶어졌다. 마흔이 넘어 사이버 대학에 진학해서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두려웠다. 이모의 말이 정말 맞으면 어쩌지, 나 진짜 멍청한 거면 어떡하지... 공부를 안 한지 20년도 더 지났는데 잘할 수 있을까.. F만 나오면 어쩌지... 성적이 나오는 날, 성적표를 받아보고 펑펑 울었다. 나는 내 학년에서 1등을 했다. All A+로. 그것도 두 번이나.


나는 전보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도 써 내려갈 수 있다. 그리고 더 행복해졌다. 작은 일로도 목놓아 울던 내가, 작은 일로도 목청껏 웃는다. 아이들과 불금을 즐기기도 하고, 수다도 많이 떤다. 이제 남편이 나를 멸시하는 말을 해도 크게 화가 나지 않는다. 러라지.


내 일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시간들이 더 늘어났다. 가장 큰 변화는 타인의 말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보다 자존감도 높아졌고 사람들의 눈치도 안 보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잘 지낸다. 사이버대학은 줌으로도 종종 특강을 하는데 매 특강마다 되도록 참석한다. 더 많이 배우고 싶어서다. 그래서 오프라인 강의 때 학교에 가면 학우님들이 종종 알아보신다. 특강 때 자주 봤다고. 시험 보면서도 궁금했던 건 따로 메모해 놓았다가 교수님께 직접 메일 질문한다. 그것에 관해 어디에서 더 찾아보면 될지 묻고 스스로 찾아 공부한다.







양가적인 마음



양가적인 마음


가족에게 학대를 당한 사람의 마음 안에는 증오의 감정만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도 같이 있다. 그들이 행복해지기를, 그들이 자기 권리를 잃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들을 정말 돕고 싶다면, 그들의 인생이 정말로 나아지기를 바란다면 당신이 먼저 행져야 한다. 그들에게 복수하고 싶어서 그들 때문에 잘 살 필요도 없고, 나 사는 걸 그들에게 증명해 보일 필요도 없다. 그들의 삶은 그냥 거기에 두고 나는 내 삶을 독립적으로, only one으로 살아가면 된다. 가장 큰 복수는 무관심인지도 모른다.


나 자신에게 간절히 바라고, 이 글을 읽을 마음이 다친 누군가에게 간절히 바라 마지않는 것은 독립적으로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타인의 사적인 진실에 쉽게 동의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렇게 살면 안 되는 줄 알았다.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길을 가면 안 되는 줄 알았고 모두가 가고, 모두가 원하는 길을 가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나 자신을 위해서 살면 시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인 줄 알았다. 지난 오랜 시간을 통해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내가 원하는 대로 나만의 길을 개척하며 살아가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 무나 비싼 <시간>이란 비용을 지불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조금 더 일찍 알게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아쉬움이 아직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이 글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았으면 좋겠다. 내가 알게 된 것보다 좀 더 빨리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처럼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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