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끈적한 폭력
오랫동안 나는 내가 '망가진 부품'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타인의 감정을 내 것처럼 앓고, 엄마라는 국가의 성실한 납세자가 되어 내 영토를 기꺼이 내어주는 것이 사랑이자 도리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착함'의 대가는 처참했습니다. 나를 지우고 타인의 욕망을 대리 수행하는 동안, 내 안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독소와 출구 없는 분노가 검은 타르처럼 눌어붙었습니다. 마음이 갈 곳을 잃자 육체가 대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비로소 펜을 들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상처를 전시하거나 과거를 탓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습니다. 나의 사적인 비명을 현미경 아래 두고 관찰하며, 그 고통의 배후에 도사린 거대하고 끈적한 '시스템의 설계도'를 분석해 나간 치열한 투쟁의 기록입니다.
나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유아기적 트라우마'라는 미시적 감옥에만 갇혀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원인을 파헤치는 것은 날카로운 통찰을 주지만, 때로는 우리를 '영원한 피해자'라는 자조적인 틀에 가두기 때문입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내가 발 딛고 선 이 사회를 응시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내 거실에서 벌어지는 유착과 가스라이팅은 사실 우리 사회 전체가 개인을 길들이고 부품화하는 '슬라임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개별성을 말살하고 '우리'라는 이름의 반죽 속으로 밀어 넣는 사회, 기능이 존재보다 앞서기를 강요하는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소멸해가고 있었습니다. 이 거시적 관점을 얻은 순간, 나의 고통은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부조리한 시스템에 저항하는 자아의 건강한 생존 본능이자, 진정한 자립을 향한 실존적 신호였습니다.
이 글은 총 3부에 걸쳐 그 탈출의 여정을 담았습니다.
1부와 2부에서 관계적 의존과 시스템의 폭력을 고발했다면, 3부에서는 고통의 세금을 기꺼이 지불하며 '성숙한 의지'로 나아가는 희망적인 자립의 풍경을 그렸습니다. 나를 지우는 가짜 선함의 가면을 벗고, 타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나의 영토를 사수하는 '진짜 선함'의 길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제가 쓴 원고는 짧지만 명징한 독립 선언문입니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 피곤하게 파고드느냐고 묻겠지만, 저는 단호하게 답합니다. 이것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나의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말입니다. 타인이 내밀어준 거울은 그들의 창조물로 남겨두고, 오직 나의 이름으로 숨 쉬고 싶은 갈망. 이 책이 그 갈망의 끝에서 길을 잃은 누군가에게 단단한 지팡이가 되어주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이제 타인의 각본 속 소품이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본질을 향해 고독하게 투쟁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 존엄한 항해에 이 글이 작고 밝은 등대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