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목표중독이었다.

2. '목표'에 관하여

by 김만만


하루하루 출근길도 이렇게 고달픈데, 한 직장에서 30~40년을 근속하며 일하는 선배들을 보며 나는 수없이 생각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걸까.


그 시절에는 묵묵히 일하며 모은 소득과 높은 이율의 저축만으로도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부를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인 것 같다.

분명 지금은 그때만큼 무식하고 용감하게 돈을 모으기 어려운 시대다. 요즘의 누군가는 열심히 일해 큰돈을 버는 것보다 로또 1등이 되는 편이 더 현실적이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실 내가 말한 선배들은 애초에 경제적 자유, 내 집 마련, 자산 증식과 같은 거대한 목표를 삶의 전면에 두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에게는 10년, 20년 뒤보다 하루하루 굶지 않고 살아가는 일이 더 절실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시대적 배경을 차치하더라도, 그들이 일에 임하던 태도의 순수함은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데 꽤 유익한 단서를 준다.


선배들은 손에 잡히지 않는 ‘인생의 목표’에 집착하기보다, 늘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 왔다. 그렇게 성실한 하루하루가 쌓여 전문성이 만들어지고, 대체하기 어려운 인적 경쟁력이 되었으며, 부와 명예는 그 뒤를 따라왔을 것이다.

반면, 나는 언제나 최종 결말부터 정해 두는 ‘도치형 스타일’에 가까웠다. 해야 할 일의 끝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으면 쉽게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어린 시절의 ‘장래희망’이라는 단어는 지나치게 아름답고도 순결한 말이었다.


나의 장래희망은 대통령이었다.


단순한 어린 시절의 치기만은 아니어서, 20대 초반까지도 그 꿈을 품고 있었다. 대통령이 되어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고,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사법고시에 합격해야 한다고 믿었다.

나의 진로와 커리어 맵은 언제나 현재의 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의 목표에서 거꾸로 내려오는 Top-down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그러다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이 어린 시절의 장래희망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사람의 본성과 기질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성장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하고 정제된다. 성인이 될 즈음에야 겨우 윤곽이 잡힐까 말까 한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실패였는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우리가 세상의 직업에 대해 아는 것은 얼마나 제한적이었던가. 직업관이란 오늘 저녁 메뉴를 고르듯 단번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경험과 시행착오 속에서 깎이고 다듬어지는 하나의 세공 과정에 가깝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스스로를 돌아보면, 나는 오랜 시간 ‘목표중독’ 상태에 가까웠던 것 같다. 목표 성취는 분명 긍정적인 일이지만, 성취 그 자체에 중독되면 목표가 사라진 순간—이루었든 실패했든—버티는 힘이 급격히 약해진다.


어쩌면 목표를 조금 내려놓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 혹은 하고 싶은 일을 단순하게 반복해 나가는 편이 더 맞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내가 막연히 바라왔던 모습에 어느새 가까워져 있을지도 모르니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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