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태'에 관하여
‘도태되는 것은 꼭 나쁜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내가 지금 도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과 함께 그 의미를 조금은 다르게 이해해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정말 내가 도태되고 있다면, 그 사실을 그저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백수가 된 지 어언 6개월째. 지금까지 수없이 고민하고 생각해 왔지만, 눈에 보이는 변화는 너무도 미미하다. 내가 게을러서 실행하지 못한 부분도 분명 있겠지만, 때로는 내가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많다. 일반 회사에서만 10년 가까이 일해 온 30대 후반의 애매한 나이의 카페 아르바이트 지망생에게 일자리는커녕 면접의 기회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시합도 제대로 치러 보지 못한 채 패배가 선언되는 순간들이 반복되다 보면, 내가 노력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무언가 크게 잘못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는 결국 이런 생각이 고개를 든다.
나는 지금 도태되고 있는 건 아닐까.
‘도태’
분명 부정적인 어감을 지닌 단어인데,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1. 적자생존에 의해서 환경이나 조건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체군이 사라져 없어지는 현상
2. 경쟁에서 졌거나 시대에 뒤처진 사람이나 집단이 밀려남
3. (기본의미) 물에 일어서 불필요한 것을 가려 없앰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도태를 당했다’는 표현은 주로 1번과 2번의 의미에 가깝다.
그런데 어원을 살펴보면 ‘도태’의 본래 뜻은 조금 다르다. ‘도(淘)’는 일다, 씻어낸다는 뜻이고 ‘태(汰)’는 물에 씻어 가려낸다는 뜻으로, 곡식이나 광물을 물에 넣어 흔들어 불순물을 씻어내고 좋은 것만 남기는 기술적인 과정을 가리킨다.
사전의 세 가지 의미를 다시 읽어 보니, 1번과 2번, 그리고 3번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주체’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의 두 의미는 사회나 조직에 의해 도태를 ‘당하는’ 상황을 가리키고, 마지막 의미는 주체가 스스로 무언가를 도태 ‘하는’ 과정에 가깝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도태를 당한 것일까, 아니면 어떤 것을 도태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시대가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성공의 가치—이를테면 직장에서의 승진이나 사회적 지위의 상승, 혹은 부동산과 주식을 통한 자산 축적—를 좇기보다는, 조금 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을 오래전부터 품어 왔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며, 익숙한 궤도에서 벗어난 선택을 해보고 싶었다. 그 마음이 결국 오랫동안 몸담았던 회사를 스스로 떠나게 만들었다.
물론 지금의 나는 사회의 기준에서 보면 어딘가 뒤처진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는, 이것이 외부의 기준에 의해 밀려난 결과가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한 과정이라는 점에 있다.
나는 사회에서 일방적으로 도태 ‘당한’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찾기 위해 내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것만을 남기는 도태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설령 겉으로는 사회의 흐름에서 비켜나 도태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도태당함이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시대의 기준에서 밀려난 것처럼 보였던 대상이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가치를 인정받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반복되어 왔다.
한때는 비효율적이고 구식이라는 이유로 외면받았던 것들이, 이제는 ‘뉴트로(New-tro)’라는 이름 아래 새롭게 조명받는다.
LP판과 카세트테이프, 필름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 유선 이어폰, 다이어리 꾸미기와 만년필 필사까지. 아날로그의 재등장은 단순한 향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지나치게 주류가 되어 버린 디지털 중심의 삶에 대한 작지만 분명한 반작용일지도 모른다.
이 현상은 ‘뒤처짐’이나 ‘도태’라는 평가가 얼마나 상대적인 것인지 은근히 드러낸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사회의 기준에서 보면 어딘가 밀려나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도태’라는 단어를 예전처럼 두렵게만 느끼지는 않는다.
물에 일어 불필요한 것을 가려내듯, 지금의 시간 또한 내 삶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지 천천히 가려 보는 과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도태되는 것은 정말로 나쁜 일일까.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 질문에 예전보다 조금은 덜 불안한 마음으로 답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