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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오디아 Jan 20. 2023

1. 신이 숨겨둔 직장에 입사했다.

신이 숨겨둔 직장이라는 말은 옛말이다.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그해 나는 대학이라는 직장에 행정직원으로 입사했다.

대학이라는 곳은 나에게 교수님께 수업을 받고 학점을 취득하는 그런 곳이었는데

직장이 될 줄은 몰랐다. 이런 곳이 나의 3번째 직장이 되어버렸다.

사실 학교 다닐 때는 행정직원이라는 존재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기숙사에 살면서 기숙사에 사감이나 마주치고, 행정직원들과 마주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2년 정도하고 있을 때쯤이었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서 몹시 편찮으셔서 옆에서 병간호를 좀 해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직장을 내팽개치고 가기에도 무리가 있었고, 어쩌나 하고 있을 때, 고향에 있는 대학에서 채용공고가 떴다.

나의 모교는 아니지만, 고향에서 일할 수 있으며, 부모님 곁에서 어머니 병간호를 하면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지원을 하게 되었다.

1차 서류전형은 가뿐하게(?) 통과하였고, 2차 면접도 보고 서울로 올라왔는데, 3차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인사담당자에게 물어보았다.


"2차 면접 얘기는 없었는데요? 몇 명이 남았나요? "

"아~네!, 원래 없었는데 최종 결정이 어려워, 최종 2명 중에 한번 더 면접을 보고 뽑으시겠다고 하십니다.

 2분 남으셨으니 50%의 확률입니다."

'2명이라고 그럼 가보긴 해야겠네.'라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네.. 2명요. 그럼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세요."



2차 면접 당일, 이미 월차를 써버려서 일단 출근을 하고, 잠시 외근을 간다고 말씀드리고,

비행기를 타고 고향으로 와서 택시 타고 겨우 면접시간을 맞추어 면접을 볼 수 있었다.

너무 긴장을 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고, 일단 군인정신으로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나왔다.

(전역한 지 2년밖에 안되어 군인정신이 남아 있었을 것이라도 믿는다. 혹자는 군인정신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하던데..)

2차 면접은 부모님께도 말씀 안 드리고 왔던 터라, 내일 또 출근을 해야 하기에 한 푼이라도 절약하려고

버스를 타고 귀경하려고 고속버스터미널로 가고 있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축하드립니다.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열흘 뒤에 출근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께 전화드리고 말씀드리니 무척이나 기뻐하셨다.


서울의 2여 년의 생활은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을 거쳐 겨우 햇볕이 드는 1층으로 상향되었는데,

급하게 방을 빼고 귀향하게 되었다. 짐을 택배로 부치고, 주인아주머니께는 방이 나가는 데로 돈을 부쳐달라고 하고 고향으로 왔는데 두 달 즈음 후에 전세방값이 송금되었다.

회사는 미리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업무인수인계에문제없었고, 다니던 회사에는 피해 없이 나올 수 있었다.

동료들 모두 고향으로 간다고 하니 축하의 송별파티를 해주었으며, 직속 부서의 상무님을 제외하고 나를 잡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향에서 새로운  직장의 첫 출근은 무척이나 들떴다.

파란 하늘 햇볕이 너무 좋은 4월의 어느 날로 기억한다.

대학교 교문을 지나며 면접을 보러 오던 날,

누구를 대상으로 생전 하지 않던 마음의 말을 했다.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 누구시든지 저를 이곳에서 일하게 해 주시면 정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일종의 기도 같은 것이 하늘에 닿았는지 이렇게 출근을 하게 될 줄 몰랐지만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이 기분이 오래오래 가길 바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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