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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진 Oct 25. 2018

참군자의 길에 대하여

중용을 탐독하며

최근 고전 강의를 듣고 와 닿는 부분을 정리하던 중, 진(秦)나라 승상'이사'가 떠올랐다. 명석했지만 명리만 좇아 산 인물, 그의 삶과 고전의 지혜를 살펴보며 참 인재에 대해 그리고, ‘나의 길’에 대해서도 성찰해보고자 한다.

 난세에는 드러나는 인물도 있고,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음에도 몸을 숙이고 초야에 묻혀 지내는 이들도 있다. 출세의 길보다 안분지족의 삶을 택해 조용히 사는 이들을 높은 덕으로 평하기도 한다. 한 예로, '장자'가 낚시를 즐기고 있을 때 초나라 왕의 명령으로 두 중신이 장자에게 와서

" 어떻게든 우리나라의 재상이 되어 주십시오. 폐하의 간절한 부탁입니다."

그때 장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댁의 나라에는 사후 3천 년이 지난 영험이 확실한 거북 등껍질이 있다고 들었소. 왕은 이것을 비단으로 싸고 상자에 집어넣어 소중히 모신다고 하던데, 그런데 그 거북은 죽어서 그렇게 떠받들어지는 지금의 상태와 흙탕물에 꼬리를 끌면서도 살아있었을 옛날 중 무엇이 낫다고 생각했을까요?"

"그거야 살아 있는 걸 좋아했겠지요." 그러자 장자는

"자, 이제 돌아가 주십시오. 저도 흙탕물 속에 꼬리를 끌며 살고 싶소."

자유인으로 유유자적하게, 명리에 얽매이지 않으며 살고 싶다는 장자의 삶의 방식이다. 반면 난세영웅이란 말이 있듯이 세상이 어지러울 때 일어나는 영웅들도 많다. 그 목적이 의로운 세상을 위하는 바른 용기라면 세상에 필요한 진정한 인재는 그런 영웅일 것이다.

 이사는 장자와 달리 전국시대의 어지러운 세상을 적절히 이용하여 세도를 잡고자 한 인물 중에 한사람이다. 이사라는 인물을 알기 전에 읽었던 <간축객서>는 내게 큰 그릇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진시황> <사기>를 통해 이사의 일대기를 살펴보면서 그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진나라로 떠나기 전 스승 순자에게 작별하면서 남긴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비천함이 가장 큰 수치요, 곤궁함이 가장 큰 슬픔입니다. 빈곤하고 비천함에 처하면 세상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명리를 아끼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배운 사람의 태도가 아닙니다.'는 말에서도 이사의 품성은 드러난다.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이루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이사, 분서갱유 등 거의 모든 것은 이사에 의해 움직였다고 볼 수 있는 진시황의 정책들, 하지만 통일한 지 겨우 15여 년 만에 진나라는 멸망했고 이사 또한 오형을 당한 후에 허리까지 잘려서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의 삶을 돌아보면 그렇게 되어 질 수밖에 없는 삶을 그는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그의 간언은 주도면밀했지만 나라와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지를 굳혀나가기 위한 것들이었다. <간축객서>에서 보여 지는 그의 됨됨이는 크고 원대한 그릇으로 보여 지기에 충분했지만, 한비자의 사상인 법가만 취하고 동문이었던 그를 자신보다 똑똑하다는 이유로 제거하려는 간언과 처세에서는 간축객서와는 전혀 다른 논리를 보였다. 그의 모호한 달변에 진시황은 넘어갔고, 그 예 만으로도 이사가 정직한 지혜가 아닌 간지에 능한 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야심이 큰 인물이긴 하지만 세상의 부귀를 얻는 것만이 목적인 편벽된 소인에 불과한 인물이었음이다.

  이사의 본모습, 그 절정을 보여주는 부분은 진시황이 죽으면서 장자인 부소에게 대를 잇는 유언을 남겼을 때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환관 조고의 계략에 동조하는 부분에서 잘 나타난다. 천하통일 진의 위력을 등에 업고 있던 승상 이사는 조고의 입질에 놀아나 그의 일생 뿐 아니라 가족의 일생까지 갈기갈기 찢어 비틀어지게 했다. 이사의 한계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비록 과정에는 실수가 있었다하더라도 마지막만이라도 좋은 결과를 남겼어야 했는데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더 치졸한 인생으로 몰고 갔다.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이사는 자기 자식들 외에는 자기 사람을 만들어 놓지 못했다. 진정 자기를 대변해 줄 한 사람 만들지 못했다. 세상을 바로 잡는 것도 나라를 경영하는 것도 혼자 다 할 수는 없다. 나보다 잘난 사람, 능력이 뛰어난 인재를 적재적소에 쓸 수 있는 이가 진정 큰 인물이다. 이사가 한비자를 죽이지 않고 한비자의 머리로 조직하고 간지(奸智)가 아닌 밝은 지혜를 열어 진나라를 이끌었더라면 진나라의 운명도 자신의 역사에서의 이름도 빛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사를 제갈량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그 그릇의 차이는 지혜와 지략으로서도 제갈량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이사가 초나라를 버리고 점점 커져가고 있는 진나라에 스스로 의탁해 자신의 공명을 위한 열의를 다했다면, 제갈량은 자기의 큰 지혜를 크게 쓸 수 있는 참 주인을 찾으려 했던 인물이다. 제갈량은 유비의 인물됨을 떠 보기 위해 찾아갔지만, 유비의 나약한 모습을 보고 실망하여 돌아가 버렸다. 유비의 삼고초려 끝에 제갈량이 유비에게 신하로서 충성을 다한 것은 자신의 출세를 위함이 아니라 큰 덕을 갖춘 유비의 인품 때문이었다. 그는 유비 사후에도 유비 2세를 잘 보필하여 출사표로 그 이름을 드높였으며,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했다는 점에서도 이사와는 다르다.

기원전의 고대 국가시절이나 21세기 오늘날이나 이사 같은 이중적인 인물들이 세상 곳곳 중심에 서 있기에 밝은 빛 아래 가려진 그늘의 모습들이 그때와 큰 차이가 없다. 수많은 책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옴에도 고전이 여전히 명서로 읽혀짐은 역사 속 인물들의 삶들이 현재의 기득층과 그 대열에 끼려는 부류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고, 고전에서 담고 있는 진리 또한 오늘날의 시대적 욕구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역사적 인물들을 통해 본보기로 삼기도 하고 때론 반면교사로 삼기도 한다. 그 중요한 역할을 해주는 지침서들이 명작의 고전들이다.

  <중용>은 자사가 공자의 가르침을 드높은 철학세계로 승화시켜 독자적 철학을 구축한 사상이다. 본성을 찾고 진정한 인도(仁道)를 걷는데 더 가깝게 이해되는 학문이다. 중용은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는다’는 막연한 우유부단함을 뜻하는 게 아니다. ‘ '중’이란 ‘때에 맞게 행한다’ 기울어짐이 없다는 뜻이고, ‘용(庸)’이란 평상(平常), 영원불변이라는 뜻이므로 올바르고 변함없는 도리를 의미한다.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나타나지 않는 정적의 상태를 중(中)이라 하고, 그것들이 나타난 상태에서도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 한다.‘ 올바른 판단 위에 조화가 자리잡을 때 비로소 중용의 본질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하늘이 인간에게 준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며 그것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닦는 것을 교(敎)라 한다. 군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도를 마음에 두고 혼자 있을 때 더욱 내성하여 자신을 다스려야 함을 강조한다. 바로 신독(愼獨)을 말한다.

성(誠)은 천도(天道)이지만 성지(誠之)는 인도(人道)이다. 진정한 성(誠)에 닿으려면 선(善)을 택하여 굳게 지켜야 한다. 예부터 높은 학문에 이른 이들은 많지만 올바른 성현의 덕을 실천한 인물은 드물다. 머리만 있고 실천은 없는 공허한 논쟁에 치우치거나 곡학아세에 빠져 기회주의적 삶을 살다간 빈지식인들이 많았고 오늘날도 여전히 그러하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이치에 어둡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아니하면 독단에 빠져 위험하다’ 불교로 말한다면 교종과 선종의 결합과 맥을 같이 한다. 학문의 길이 한 갈래로만 흐를 수는 없다. 지식의 습득과 아울러 사색이 겸비돼야 함이다. 여기에 더해 중용에서는 더 구체적인 자기 관리와 성찰, 실천을 말한다. 성지자(誠之者)는 진실되게 하려는 이를 뜻한다. 성지자(誠之者)가 되기 위한 첫째로 중용에서는 널리 배우는 박학(博學)을 말한다. 앎은 기초이기 때문이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둘째는 치밀하게 질문하는 심문(審問)이다. 궁금한 것을 찾아 바르게 이해하여 학문의 깊이를 다지란 뜻이다. 셋째는 신중하게 생각하는 신사(愼思)다. 배운 것을 토대로 사색을 통해 사물의 이치를 바르게 깨달아가는 단계이다. 넷째는 명확하게 판단하는 명변(明辯)이다. 의에 합당한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며 진리가 바르게 정립되어지는 단계다. 다섯째는 충실하게 행하는 독행(篤行)이다. 실천하지않고 간직하고만 있는 진리는 의미가 없다. 이러한 과정을 하나하나 탄탄하게 거쳐야 밝은 덕을 펼쳐나갈 수 있는 참군자의 모습으로 영글어질 수 있다.

“태산은 작은 흙덩이도 사양하지 않기에 그 거대함을 이룰 수 있고,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기에 그처럼 깊어질 수 있고, 왕은 백성들을 물리치지 않기에 그 덕을 밝힐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글을 진시황에게 올려 인재의 고루 등용을 역설했던 이사였지만 그의 삶의 행적에서 신사(愼思)와 명변(明辯), 독행(篤行)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부귀영화를 온몸에 감았음에도 비워내고 놓을 줄 아는 지혜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지 못한 채 마지막까지 목숨부지하기 위해 비굴한 언변을 놓지 않았던 이사의 일대기를 되짚어보며, 인생을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이 부끄럽지 않는 이름으로 남을 삶인지 스스로 반추해보게 된다. 후세에 남아 영향을 끼치고 있는 명문의 글이 사악한 자기 계산이 담긴 글이라는 것이 애석하기만 하다. 이사에게 노자의 덕과 장자의 달관된 인품이 조금만 갖춰져 있었더라면 이사열전의 후반에 태사공이 평했듯이 그는 주공 단, 소공석과 같은 열에 설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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