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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진 Oct 29. 2018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며

2009.05.25 01:08  

 처음 노무현이란  사람을 알았던 때는  5공 청문회 때였다. 그냥 그렇게 그 분은 같은 부산 지역권 사람으로 내게 조금은 다른 인사로 느껴졌던 분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원래 정치에는 전혀 관심없던 나는 투표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그 분이 대통령에 출마할 때는  애들 아빠가 시키는 대로 그 분이 아닌 다른 후보를 찍었다. 대통령 임기기간 동안은  말많은 언론의 소리만 듣고  그 분을 지탄하기도 했었다.


 그 분이 물러나고,  부산에 있는 동생을 통해  그 분의 진실을 들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언론이 그 분을 바보로 만들었는지,  얼마나  그 분의 손 발을 꽁꽁 묶고 일을 못하게 했는지......

물러난 뒤에야 안쓰럽다여겼고, 동생이 믿고 내가 그렇게 믿고 싶은 분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봉하마을에 계시는  모습을, 다큐멘타리식의 프로그램을 통해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 분이 그렇게 인간적인 모습으로  이웃집 아저씨같은 모습으로  정겹게 그리고 이제는  좀 홀가분하게

여생을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가족의 돈 문제로 시끄러워질 때도, 사람들이 욕을 할 때도 그게 사실로 다가올 때도  왠지 그 분이 안쓰럽기만했다. 인터넷이든 신문에서든 그 분의 입장을 고려하는 기사나 칼럼을 읽고 싶었다.

예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정치에는 관심없어서  다른 인사들 검찰들락거리는데도 눈길 제대로 주지않던 나지만 그 분의 소식은 나도 모르게 속이 끓고 불안한 심정이었다.


 오후 6시에 텔레비전을 통해 서거소식을 접하고  그저 어이없고 멍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수업할 책, 독후감 정리해야 할 책, 바쁜 일이 밀려있는데도  나는 읽을 수가 없었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동시에 켜놓고  진행되는 소식을 접했다.


  일요일  오전에 고1 혜진이 보강을 하러가서도 본 수업을 하기가 힘들었다.한겨레 호외신문을 들고 가서 '바보 노무현의 죽음' 칼럼을 함께 읽으며

그 분의 힘겨웠던 영욕의 삶, 우리가 미처 헤아리지못했던 그 분의 민주 정치적 꿈 등의 얘기를 나누었다.


  인간이 뭔가?  인간의 집단이란게 뭔가?  무엇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인간이 인간을 낭떠러지로 몰고가는가? 왜 우리의 정치는 그렇게 맨날 썩어있다 소리를 듣는가? 서로 다독이고 화합하며  전혀 다른 색깔을 비슷한 색깔로,  하나의 색깔로 만들어가려는 노력은 없는가?


 그 분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자였다. 그 분이 가진 것은  좀 더 하나되는 민주정치를 이루려는, 사람냄새나는 세상을 만들려는 열정,  그 하나 뿐이었다.


 파벌...   지겹지도 않은가? 조선 시대 때부터 내려온 붕당정치가 가져 온  폐단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역사를 보며 깨닫는 진정한 지도자는

없는 것인가?


 임진왜란도  병자호란의 치욕도  일제강점기의 절망적 아픔도  분단의 비극도 모두가 무엇 때문이었는가   모두가  화합하지못하고  헐뜯고  진정한 인재라도 내 편이 아니면 주저없이 제거해버리는 어이없는 이들의 노략질 때문아니었는가  그래서 희생된 참 인재가 얼마나 많았는가


  가난, 그 지독한 가난속에서 배움의 끈을 놓지않고  고졸출신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판사가 되고 변호사로, 인권 변호사로 대통령으로 추대된 분, 그 분의 인생에 박수를 쳐주고    존중해주는 것이 우선 맞지않았는가


우습지않나   대통령이 주류가 아니고 비주류라니...   임기내내 야당과   언론은 그 분을 벼랑끝으로 내몰았다.  우리나라에선  가난한 사람과   학벌이 없는 사람은 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보인 일이다.


 너무 가진 게 없어서  평소 친분이 많았던 이에게 부인이 부탁을 했다고 한다.그 부분도 관대하게 볼 수 있으면 그렇게 볼 수 있는 일이다. 친구나 지인이 큰 일을 도모하고자 할 때, 혹은 불가피한 일이 있어서 도움을 청할 때  내가 힘이 있다면  해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그냥 바라봐줘도 되는 일 아닌가.

 물론  부인께는 안타까운 책망을 조금은 하고 싶다. 남편 노무현의 중요한 트레이드 마크가 무엇인지 아신다면  좀 힘드시더라도  그냥 물흐르는대로 그냥 흐르게 놔두시지...그랬다면 국민은 더 더욱 존경을 보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있다.


 연암 박지원의 조부께서는 높은 관직에 계셨는데도 늘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관직에 있을 때  아랫채가 허물어지려해  가족들이 다시 올리려고 했지만  임기에 있는 동안 손을 못대게 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임기동안 집을 고치거나 하는 것을 사람들이 본다면 뭐라고 하겠느냐며 더 몸을 굽히고 살았기 때문이다.


 비록 오점이 남았다해도 역사는 그 분을  그 분 자체로서 평가되어질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노무현,  당신이란 분  그래도 멋지게 사셨다는 것을 줄을 잇는 애도의 물결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신이 이제 없는 시간,  다시 뵐 수 없는 시간에 와서야  당신의 소탈한 말투가  그립고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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