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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진 Oct 30. 2018

꿈을 좇는 아이

내 인생,  그 절반의 자서전

꿈과 다른 현실


                                                


지수는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며  생각 깊숙이 숨어 있는 번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혼자있을 때면  자기 생각에 빠지기를 좋아하는 아이이다.    그 생각을 모아  낙서하는 것도 좋아한다.


시노트에는  이름난 시인들의  명시와  여고생 다운  상큼함이 있는  젊은 시인들의 시들을  가득 써 놓았다.


책을 좋아하고  글로서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지수는  혼자 있는 시간을 그렇게 즐긴다.


 


주위에서  강직함과 부지런함으로 이름 나 있는  지수 아버지는  그 일대에서   참외 재배를  처음으로 시작하여


수많은 실패끝에 성공하여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이루며 늘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이다.


화통하면서 불같은 성격의 지수 아버지를 잘 맞추며 살아가는 지수 어머니는  어진 외모만큼  후덕한 품성을 타고난 사람이다.


지수는 그런 부모님 아래  두 남동생과  남부럽지않은  환경속에서  성장하는  여고생이다.


시골에서  큰 농장을  일궈 사시는 부모님은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바쁘시지만  지수는  다른 시골아이들과는 달리  곱게 자란 편에 속한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도  주변 친구들에게  시샘아닌 시샘을 받을 때도 많았다.  


귀엽게 생겼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지수는 특히 웃을 때면  그 해맑음이 더 돋보인다.   티없이 맑은 얼굴에  티없이 밝은 아이가 지수다.


지수의 웃는 모습은  사람을 끌리게 하는 매력을 준다.


친구들이랑도 잘 어울리고 초등학교 때부터  곧잘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서  함께   자는 일도 많을 정도로  원만한 성격이다.


 


그런 지수가  공부는 별로다.   시험성적은  늘 중간이다.   그렇다고  지수가 공부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공부를 하기는 한다.  그런데 성적이 안나온다.    당연히 지수는  공부에는 기가 팍 죽어있다.   지수에게 결정적인  공부의 맹점은 바로  수학과 과학과목을 전혀 못한다는 사실이다.   국어는  이름도 쓸 줄 모르고   초등학교에 입학했어도  우수한 편이었지만  수학이나 과학은  지수에게는 너무나 먼 과목이기만 하다.   수학이나  화학시간에는  칠판쳐다보며 생각하는 것은


 '도대체 저것을 왜 해야하지?  저게 인생을 사는데 무슨 도움을 주나?'


이런 의문밖에 없다.


지수의 꿈은 국문학을 전공해서 국어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국어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멋진 선생님이 되어야지 하는 상상을  곧잘 한다.  


 '국어선생님이 되면  내가  겪었던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면서  아이들을 이해하고 잘 끌어주는 선생님이 되어야지...'  


지수는  수학같은 이과과목과 체육 외에는  다양한 끼를 가지고 있다.  


노래와 춤에 소질이 있어서  학교 행사때 나가기도 하고  글씨를 잘 써서  게시판에  쓸 때도 많다.   성격이 시원 시원하고 임기응변에 능해서  친구들은   가만히 있어도  지수를  내세운다.  학급에서도 지수가  먼저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고  차려진  무대에 그냥 올라 갈 때가  많다.    평소의 지수를 잘 아는 친구들이 지수를 뜨미는 것이다.   그렇게 뜨밀려 나가도 지수는  친구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는 즉석 무대에서  자기 끼를 발휘한다.    시험을 위한 공부는 머리속에 잘 외어지지 않는데  관심있는 분야의 것은  놀랄정도로 총기를 발휘하는 아이가  지수다.   공부못하는 머리로  암송하는  시는 많다.  그리고   노랫말도  서너번 들으면 암기된다.  지수에게 베스트 가요의 가사를 못외우는  친구들이 이해가 안될 정도이다.  


 


지수에게  고교생활은  갑갑한 철창같다.  학교성적이 지수의 모든 끼를 가두고 있는 것만 같다.  지수는  중학교때 성적이 모자라  이름난  인문고에 진학하지 못하고  실업고에 다니게 되었다.  그것이 지수를 더 괴롭히고 있다.   그래도 인문고라면  다른 과목이라도  잘 따라갈 수 있을텐데  실업계 과목은  수학이나 과학만큼  지수에게는 마음이 가지않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성적은 더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  그런 지수를 이해해주는 이또한 아무도 없다.  공부를 못하니  모든 것이 모자란 아이가 되어버렸다.  현실은 성적순으로 매겨지니까  지수도  자기가  참  멍청하다는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생활 속에서  스쳐가는 일에도  그것을 떠올려  얘기를 하면  아빠는


 " 그렇게 좋은 머리로 왜 공부는 못하니? "  라고 하신다.


아이가 가진 재능과  좋아하는 분야를  살려주기 보다  획일화된 교육속에 갇혀  빠져 나오길 거부하는  교육에 반기를 들기에는 지수는 어리고 부족하다.  또한 두렵다.    원하지 않는  공부,    그냥 시간 떼우기로  보내는 학교 생활,   그러면서도  공부를 못한다는 것 때문에  기죽어 있는 지수이다.    고1 때   지수는 수학을 빵점 받았고  시험이래야   늘 찍는 시험이다.  지수는  내내 드러나지 않는 방황을  하고 있다.    타고난 밝은 성격이 그 어둠을  감추고 있는 듯하지만   지수는  누구보다  예민하게  성장통을  겪고 있다.  


 


                                                      친구들과  쌓아가는   행복의 성


 


                                                                       1


 


지수에게는 초등학교부터  고교까지 동문인 6명의 친구들이 있다.   초교나 중학 때는 그저 그랬는데 고교생이 되면서 버스도 자주없는 시골길을  걸어서 함께 오가면서 자연스레 친하게 된 친구들이다.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해도   시골이라 부모님들끼리도 알고 지내는 분들도 계시고  각 집안 사정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정도이다.   7명이 함께 오가면서 반 친구들한테도 각인이 되어  지수네 반에서는 제법 유명한  멤버들이다.  이름도 정했다.  '세븐 식스'  7명이  멤버지만 1명이 빠져서 6명이 모이는 경우가 많아  짓게된 이름이다.


공부할 때는 공부하고 놀 때는 열심히 놀려는 주의가 세븐 식스의 특징이다.  세븐식스의 재미있는 사건들은 주로 하교길에서 일어난다.


봄볕이 따뜻하여  걷기 좋은  토요일,   신나는 토요일이면서  먼 거리를 걸어가야 하는  이들에게  4교시 마치고 점심을 먹지 않은채로 가야하는  길은 배고픈 길이기도 하다.    무지 무지 배가 고팠던  세븐 식스 ,  그렇다고 군것질 할  돈도 없다.  시골 길로 접어들기 전 , 선희가 엉뚱한 제안을 했다.  


 "  우리  저 반점에 들어가서   자장면 시켜놓고  남희한테 돈 가져 오라고 할까? "


 "  어 ,  그러자 .   진짜  너무 너무 고프다. "


나중일은 생각않고 오히려 잘 됐다는 듯  우르르  겁도 없이 반점으로 들어가  자장면 한 그릇씩 시킨다.


선희가 남희한테 전화를 했다.   남희는  반점 근처에 살고 있는 같은 반 친구이다.


그런데 남희가 아직 안왔단다.   그래도  왕성한 식욕이  걱정을 앞질러서  자장면이 나오니 태연스레 잘도  먹어댄다.


다 먹어갈 즈음엔 서로 서로 눈치보며  '어떡하지?' 하는 눈빛만 교환한다.


아 ,  그때   구세주가 될 것 같은  어떤 놈이 지나가네.


지수는  재빨리  뛰어나가


"  야 ,   우리 자장면 값 좀 내죠. "


하고 소리 쳤다.   그 어떤 놈은 황당한 얼굴로 뒤를 돌아본다.


" 히히 ,  남수야  우리다. 배고파서  자장면 시켜먹었는데 사실은 돈 가진애가 아무도 없다. "


" 내 참 기가차서  도대체 정신있는 인간들이야? "


남수는   그렇게 퉁박을  주면서도 얼굴은  웃고 있다.   다행이다.  계산하려나 보다.


세븐식스는 안도의 눈빛을 다시 교환한다.


 


                                                                   2


 


지수 생일,  세븐식스는  진학반인   지수에게  보충수업을 끝내고  집에서 보자고 하며 서둘러 몰려갔다.   수업을 끝내고  혼자 집에 들어서니   선희가  툭 쏘아 부친다.


 "  가시나 ,  청소좀 하고 살아.  치운다고 죽는 줄 알았다. "


 "  어?  니네들 언제 왔는데? "


 "  오늘 우리 지수   귀 빠진 날이잖아 ."


하며  경혜와 연아가 씩 웃는다.   지수빼고 6명이서  청소하고 밥하고  미역국 끓이고  법석을 떨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 아빠도 들에 나가시고  동생들만  벙글거리며 있는 집에서.


 


소년같은 외모에 수학을 잘 하는 선희


야무진 얼굴에 야무진 손을 가진 순영


가장  얌전하고 말이 없으면서도 세븐식스 모임에 빠지는 일없는  은근한 놀쟁이 연아


가장 감성적인 듯해서 별명이 문학소녀인 노래 잘 하는 경혜


지수가  친구들에 비해  부족함 없이 자란 만큼  천진한 모습이 철없어 보였는지  동생한테 처럼 지수에게 충고해서 가끔


부딪히기도 하는 자영이


지수랑 같은 큰딸인데도  지수와는  딴판인 진짜 살림꾼 주희...


 


지수에게는 잊지 못할   잊어서는 안되는 생일 선물이리라.


오랜만에 세븐 식스가 정말 한자리에 다 모여 지수네 가족들이랑 저녁을 먹었다.


 " 아이구,  우리 이쁜이들이 오늘 큰 일을 했네 ."


지수 아빠도 엄마도 대견해서 입을 못다무신다.


 


                                                                     3


 


무서운 태풍이 몰려 온다는 뉴스 보고에 학교에서 안전을 위해 멀리 있는 학생들은 스쿨버스를 타고가게끔 지시를 내렸다.  물론 세븐식스도 스쿨버스 대상에 포함된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그 무서운 태풍이 전혀 무섭지가  않다.  아니 오히려  즐겁다.  즐길 준비를 위해 준비를 한다.  우선 운동화는  싸서 가방에 넣고   슬리퍼를 신고 나간다.   선생님이 보시면 곤란하니까  교문을 나설 때까지는  우산을 쓰고  조용히 나가는 것이다.   역시나  선생님께서  앞에 나와계신다.


 "  꼭  버스타고 가라 "


그들의 엉뚱함을  간파하고 염려하시는 듯한  당부의 말씀이다.


 "  예~~ "


다함께  큰소리로 대답한다.   그 소리에도 못미더운듯  뒷모습을 한참 지켜보신다.


그들은  선생님의 염려가 더 재미있어 킥킥거리며 교문을 나선다.


교문을 벗어난 순간  곧바로 우산을 접어서  책가방과 함께 옆에 끼고  7명의  여고생은  빗속을 내달린다.


태풍이 오거나 말거나  비바람 속을 달리는 기분은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는 듯한  흥분을 주었다.


따끔 따끔  볼을 때리는 비바람이 오히려 흥분을  증폭시킨다.


시골 길에 접어들 무렵  가로수인 큰 버드나무가 뿌리채 뽑혀  길 가운데 누워있고  자동차도  가지 못하고 혼자 널부러져 있기도 하다.


태풍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새 비바람이 우박바람으로  바뀌어  따끔한 것이 아니고  진짜 아프게 쏟아 부친다.


  " 아야 "


  " 히히히 "


  " 깔깔깔 "


  "  아~~ 키키키 "


  "  아우 ~  너무 아프다  그래도 너무 재밌다. "


아프다는 비명을 지르면서  7명은  더 뛰어가지 못하고   젖은 길바닥에 한몸이 되어  서로  엉켜 뒹굴었다.


그러면서   빗물에 젖은  모습을  번갈아 보며  또 깔깔대며 웃어댔다.


그렇게  세븐식스의  하루도 가고 있었다.


                                                               


                                                                 4


 


그 큰비에는 우산을 가지고도 우산을 쓰지 않았던 녀석들이 보슬 보슬비 오는데는 없는 우산을 만들기도 한다.


아침에는 내리지 않던 비가  오후부터 가느다랗게 내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비닐을 구해  7명이 일렬종대로  서서  비닐을 함께 쓰고 거리를  나섰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이 더 즐겁다.  사람들이  보건 말건  싱거운 짓이라고 하건 말건  세븐식스는  싱겁지 않고  맛있는 하교길이다.


그들은 10대의  풋풋한 객기에 한껏 젖어있었다.  경찰서 앞을 지나갈 때는 경찰관 아저씨를  향해  경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맨 앞에 선  자영이가  


 " 우로 봐 "  하는 순간  뒤에서 일제히


 " 충 성 "  하며 고개를 경찰관 아저씨방향으로   돌리자   얼떨떨하게 쳐다보던  아저씨가   경례하며 답해주신다.


그 순간   제복에 약한 여고생들은  설레임에  찬 탄성을 지르고 만다.


 " 와 !! 히 히 히 "


 


                                                                      5


 


 


시험공부를 위해 일요일에 학교에 모인 그들은  공부하다  창가에서 쉬는 중에 뭔가를 발견했다.  가을비가 내리고 있는 창밖은  공부보다는 딴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눈에 띈 것은  맛있게 익은 단감이었다.   도둑질은 나쁘지만  단감서리는  추억이라 자위하며  주위를 살피며  살금 살금  단감 밭으로  들어갔다.   지수가  먼저 총대를 메고  들어섰다.  지수는  바닥에 떨어진 감들을 주웠다.  대여섯개를 옷에 싸서 돌아와  친구들이랑  맛있게 먹었다.  단감의 단맛보다  단 건   그렇게  함께 먹는 친구들끼리의 스릴있는 나눔이었다.


시험기간에는 함께 모여 서로 깨워주며  공부를 하고 시험이 끝나면 꼭 파티를 한다.  떡뽁이 재료를 사서 커다란 솥에 가득해서 배가 터지도록 먹는다.   먹을 때는 소처럼 먹지만 먹고 난 후엔   작은 숙녀가 되어  촛불을 켜놓고  소근 소근 대화의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밖에 나가 반짝이는 별을 보며 길바닥에  퍼지고 앉아  꿈을 얘기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남자친구,  남자친구와의 고민, 해보고 싶은 것들, 하나같이 공감하며  작은 숙녀들의 이야기는  밤이 깊어가는 것을 아쉬워한다.


 


 


                                                                     6


 


여름방학 때 어렵게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  철 지난 바닷가를 찾았다 .  인적없는 바닷가 ,  조용했지만  바다는  소녀들에게 미지에 대한 동경을 느끼게 해주었다.  저녁을 먹고 희미한 촛불아래 아니면 달빛의 도움을 받아 각자 편한 자리를 잡고 앉아  한장 한장 엽서를 써내려갔다.   꿈많는 여고생들,  밤바다를 바라보며 누군가에게  엽서를  써내려가는  그 순간은 그들에게 모든 것이 희망이며  차분한 자기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다.   지수는  10장의 엽서를 가져와서  9장을  엽서 주인이 될 이들을 위한 글을 썼다.  나머지 한 장에는  어떤 대상도 없이  가장 진솔한 자신을 내 보이듯  소망의 글을 썼다 .


 


고요한  밤


달빛아래


넓은 바다를 보며


모래사장에 앉아


작은 기도를 올립니다


 


바다처럼


넓은 가슴을 가지고


이 세상의 작은 촛불이나마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바다와 파도가 조화를 이루어


물결무늬를 만들듯이


내 사랑하는 모든 이들도


서로 조화롭게 아름다운 그림 그려가며


행복한 웃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 엽서를  읽게 되는 분은   


사랑할 줄 알고 매사에 긍정적이며   


 성실한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받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 라고만 쓰고  다음 날  터미널 근처에 있는 우체통에 함께 넣었다.


그리고 잊고 지내던 어느 날  편지 한통이 왔다.


 


지수 양


이 편지 받고 놀라지는 않겠지


오히려  이렇게 편지를 쓰는 나 자신이 놀랍고 두려울 뿐이니까.


혹시나 방황하는 10대는 아닌가 하고 걱정이 돼서 해본 소리로 받아주었으면 좋겠어.


여하튼 지수양이 사랑하는 분께  지세포우체국에서 발송한 엽서가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되어 담당자인 내게로 왔으니까.


규정대로라면  3개월간 보관후 청구가  없으면 불에 태워 버려야 하지만


지수양이 실망할까봐 이렇게 몇자 적어 보내는 거니까  가끔 생각나면 편지해도 좋아요.


20년간 체신부에 근무하면서도 이런 엽서 받아보기는 처음이니까


마음이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여학생에게 편지를 쓰면서도 어떻게 생긴 여학생일까 하고


상상해 보기도 해요.


지수양  말대로 모든 것을 사랑하고 긍정적이며 성실한 사람이 될려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어요.


지수양도 열심히 노력하고 사랑하고 행복하고 ...


먼 훗날 이 사회에 훌륭한 횃불이 될때까지 지켜 보아줄게..


 


이 한통의 편지도 지수의  짧은  고교생활에서  의미있는 흔적으로 남게 되었다.


 


                                                                      7


 


코스모스 청초하게 핀 가을 ,  세븐식스는 안개비를 맞으며 인적드문 새벽길을  코스모스와 함께 걷고 싶었다. 새벽 안개길을 길가에 핀 코스모스와 교감하며  대로를 다 차지하며 걷는  싱그러운 여고생들의 모습은  코스모스와 많이 닮았다.  그들은 추억을 만들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냥  그들 마음이 가는대로 풋풋한  꿈과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그 맑은 감성이 요구하는대로 행동할 뿐이었다.


눈이 천지를 두텁게 덮은 날은  약속이나 한 듯 지각을 하기로 했다.  학교까지 먼 거리이니  눈이 와서 많이 늦었다는 핑계거리를 만들어놓고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가장 잘 보낼까만 고민했다.   쉬엄 쉬엄 발을 떼며  둑에선 눈썰매를   타기도 하고  나무 아래로 들어가면 다른 친구들이  나무가지를 흔들어 떨어지는  눈을  맞으며  까르르 웃어댔다.  그리고는  그 아래  털썩 편하게 앉아  편지를 썼다.  그들에게  예쁜 편지지나  엽서는 필수품이었다.


 


 


                                                                     가출


 


빈껍데기같은  고교 생활 ,  책은 좋아하는데  공부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지수와 융화되지 않는  교과 과정,


지수는 시간이 아까웠다.  차라리 자퇴하고 학원다니며  검정고시 준비를 할까 .


갈등과 방황이 계속되었지만  그것은 그냥  지수 마음 속뿐이었다.  반듯한 부모님아래서 잘 자란 지수는  정말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뭔지는 알기에  레일을 벗어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다만,  수업을 마치면 기차를 타고 홀로  한두시간 거리의 타지역으로  다녀오곤 했다.  지수가  좋아하는 일은   편하게 책을 읽고  읽은 느낌들을  글로 긁적여 흔적을 남기는 일이나  시를 읽고 낭송하는 일,  혼자만의 공간에서 낙서를 하는 일 등이다.  겉으로  외향적으로 보이지만  내면에는 지독하게  내성적인 면도  많은 아이가 지수이다.   아무런 정을 느낄 수 없는 학교지만  지수를 견딜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역시 친구들이다.  친구들이 없었다면  지수는  정말 학교를 자퇴했을지도 모른다.


몇번의 보충수업을 끝으로  지수도  대입을 위한 시험을 보았다.   결과는 역시나였다.  그런데  지수 아빠의 실망이 컸는가 보다.


지수가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하면  새벽잠이 없으신 아빠는  라면을 끓여서  지수랑 같이 먹곤 했다 .   시험이 가까와 올 때는 거의 매일 같이  라면을 끓여주셨던  아빠다.


어느 날 밤  지수 아빠는 술이 많이 취해 오셔서는 지수를 크게 나무라셨다.


 " 내가 그래도   힘들 줄 알면서도 은근히 기대를 했는데... "


 " 나더러 어떡하라구요 .  실업고에서  대학가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


지수는  지수대로 그런 아빠가 속상해서 아빠한테 처음으로 대들었다.  평소에는 아빠랑 잘 지내지만 아빠가 화나시면  얼굴도 못쳐다볼 만큼 무서운 아빠한테  대들고 말았다.  순간   아빠의 손이 지수뺨으로 날아왔다.   지수도 놀라고 엄마도 놀랐다.  한번도 지수한테 손을 댄 적이 없는 아빠가  지수한테  손찌검을 한 것이다.   지수는  울면서  그 밤에 뛰쳐나왔다.  아예  집을 나올 작정으로 대충 준비를 해서 엄마가 부르건 말건  엄마한테까지 소리 소리 지르며  나와 버렸다.


여자 아이가   겁도 없이  깜깜한 시골 논길을  걸었다.   걸으면서  어디를 갈까를 생각했다.  마침  약간의 돈이 있었다.  걱정하실 부모님,  특히  엄마가  걱정되었지만   집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평소에 무서움이 많은 지수였지만  화가 나니  무서움도 저 멀리 피해 있는 것 같았다.   큰 길까지 나와  지나가는 트럭을 붙들었다.    나쁜 아저씨면 어떡하나 겁이 났지만   안되면 가다가  그냥 뛰어내리지 하는 생각으로  차에 올랐다.  다행히  ' 여학생이  조심해서 다녀야지 '  하시면서  터미널까지 태워주고 가셨다.


법수행 막차가 막 떠나려 하고 있었다.   얼른 올라탔다.   법수에는  지수가 초등학교 때  걸스카웃 캠프에서  알게 된  수정이와 현주가 살고 있는 곳이다.   한 시간을 덜커덩 거리는 버스를 타고  현주네 집에 가니  늦은 시간에   멀리서 온 친구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도  반겨주었다.  사정얘기를 하고 며칠 좀 있다 가겠다고 하니  그러라고 한다.  다음 날은 수정이한테 가니   자기 집에 있으랜다.


이틀 밤을 묵고   혼자 생각 좀 해야겠다며 나서니


 "  적당히 방황하고 들어가라.  내가 니가 어떤 애인지 모르면  머리채를 끌고 라도 집에 데려가겠지만  니가 어떤 애인지 알기때문에 그냥 믿고 보내는 거다.  "  라고 한다.   믿어주는 수정이가 고마웠다.


 " 알았다. "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혼자서 남해로  향했다.   날씨는 춥고  더 서글퍼지기만 했다.  그래도 집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부산에 있는 작은 외가로  발길을 옮겼다.  작은 외가에 전화를 하니


 "  지수야 ,  너 지금 어디야?  고모가 몇번이나 전화하셨다.  빨리 와. "   사촌언니가  다급하게  말했다.


 외가에 와 있으니   연락을 받은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  이 놈의 가시나 ,   엄마 죽는 거 볼래?  오늘 까지  너한테 소식 없으면  아빠가  너 호적에서 판다고 하더라 "


 지수는  그래도  별 느낌이 없었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  잘못했다는 생각도 없었다.


 " 내일  당장  와. "


하시며  엄마는 전화를 끊는다.


다음 날 ,  내키지 않는  마음이지만  혼자서 무슨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니  집에 올 수밖에 없었다.   집에 오니  아무도 없는 빈 집,


찬장을  열어  김치랑 찬밥을  정신없이 먹었다.   별미라고 소문난  엄마의 김장김치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밥을 먹고  앉아 있으니  아빠의 인기척이 들린다.  


 "  아빠 "   라고 지수가  아빠 눈치보며  부르자,


 "  그래 왔나?   세상에 어느 부모가  제 자식 죽도록 싫다고 하는 부모가 어딨니?  잘 왔다."  하며 웃으신다.


 그렇게 아빠와 지수는  아무일 없었던 듯 화해를 했고   저녁엔 소식을 듣고  세븐식스 친구들이 와서 한바탕 떠들고 돌아갔다.


지수의 가출 사건은  3박4일만에 끝이 났다. 그로 부터 일주일 후에  아빠가  술에 취해  귤을 가득 사오셔서는  지수의 손을 잡고 우셨다.


 "  많이 아팠지?  아빠가  우리 지수 때리고  한시도 안편했다. "  고 하시면서.


 지수는 그때  ' 부모님의 사랑이란 건 이런 거구나 ' 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수는  맞을 때는 아빠가 원망되었지만  그냥 잊고 있었는데   아빠는  내내 마음아파하셨다는 것이  지수한테도 전해졌다.  


차가운 겨울날씨만큼   지수네 집에도 불어왔던  매서운 바람이  기운을 꺾고  다시 훈훈한  온돌기운으로 돌아왔다.


 


 


                                                                     끌어안는 삶을 위해


 


꿈많은 지수였지만  평범하고 소박한 삶을  사랑하는 지수이기도 했다.  화려하게 살기보다 아름답게 살기를 원했던 지수였다.


자신한테는 늘 냉정하게 내 몰아쳐서  힘든 삶에 뛰어들어도  친구들과  수다떠는 것도 좋아했고  소담스런 여행도 가고 싶었다.


단풍이 절정일 때만이라도   단풍을 보기위한  단풍여행을  가는 게 작은 소망이었던 지수였다.  하지만   그 사소한 것조차도 지수에게 선물로 주어지지 않았다.  가슴에  너무 많은 것을 품고 있어서인지  사랑조차도 지수에게 오래 머물지 않았다.


스무살, 학원에서  지수에게 다가왔던 그 아이,  지수같이 맑은 애는 세상에 정말 드물다고  했던 아이,   지수가  그 애곁을 떠나려 했을 때 괴로워하는 그애를 보며  다른 친구가  '세상에 여자는 많다' 고 충고할 때  '그래 세상에 여자는 많지.  그러나 지수라는 아이는 세상에 하나뿐이지.' 하며  울먹이던 그 아이,  '너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고 싶고  너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 던 그 아이,


 " 넌 너무 큰 애다.  내 옆에 있기엔 아까운 애다.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해야 된다. "  고 했던 날,  헤어지며  '다음에 보자'는그 아이의 말이  지수에게는  꼭 마지막이 될 것같은 예감이었는데  정말  완전한 이별이 되었다.


이별이 아팠지만  지수는 오래 아파하진 않았다.  그보다  지수는  어느 것 하나도 뜻대로 살아지지 않는 자기 삶이 더 아팠고 그 허함을 채우는 것이 더 절실했기에.   지수는 늘 정신이 배고팠다.  그래서  곧잘 혼자 돌아다녔다.  차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미칠 것 같아서 발이 아프도록  40코스나 되는 길을 걷기도 했다.   그래도 지수를 지탱시켜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책이었다.  지수가  죽고싶어질만큼 몸서리쳐질 때마다 지수를  다시 일으켜세워주는 것은  책이었다.   천재 수필가 전혜린에 빠져 어느 해 가을은 전혜린이 되어있었다.


 


 


20년이 흘렀다.  지수는   가을 나뭇잎 예쁘게  쌓여 있는  벤치에 앉아


 '내가  얼마나  이 가을 때문에  이 예쁜 단풍진 잎들때문에  고독했었나'를 생각한다.


 20대 그 방황속에서도  지수가  친구들에게  자주 조렸던 시가 있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조이던


먼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나   꼭 이 시속의 누님같은 사람이 될거야 .  내가 마흔이 되면  꼭 이런 원숙한 중년의 여자가 되어있을 거야.


      그렇게  살도록  그런  온화하고 멋진 중년이 되도록  살아갈거야 ."


올해 지수는 마흔이 되었다.  마흔이 되고나서  이 시를 다시 되뇌이니  아직은 많이 부족한 자신을 느낀다.


그래도  지수는  가슴이 훈훈하다.  지금 지수는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독서지도를 하고 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아이들과 독서토론을 하는 일은 지수가 정말 너무나 좋아하는 일이다.  숱한 방황을 겪었지만  놓지않았던 책 덕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된 것이다.


지수는  자기가 겪었던  힘겨운 방황과  추억들을  간간히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바랬던 꿈대로  아이들의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 겠다는  다짐을  한다.    열심히  배워서  쉰이 되었을 즈음에는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서  아이들과  수업을  하는  할머니 선생님으로  살아가고픈 꿈을  가슴속에 새겨 넣는다.


 




                                                










 










 







 

















 








 


                                         


 


                                                                       


 































 


                                                                   


 












 











 







 


                                                                     


 


























  "  아우 ~  너무 아프다  그래도 너무 재밌다. "


아프다는 비명을 지르면서  7명은  더 뛰어가지 못하고   젖은 길바닥에 한몸이 되어  서로  엉켜 뒹굴었다.


그러면서   빗물에 젖은  모습을  번갈아 보며  또 깔깔대며 웃어댔다.


그렇게  세븐식스의  하루도 가고 있었다.


                                                               


                                                                 4


 


그 큰비에는 우산을 가지고도 우산을 쓰지 않았던 녀석들이 보슬 보슬비 오는데는 없는 우산을 만들기도 한다.


아침에는 내리지 않던 비가  오후부터 가느다랗게 내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비닐을 구해  7명이 일렬종대로  서서  비닐을 함께 쓰고 거리를  나섰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이 더 즐겁다.  사람들이  보건 말건  싱거운 짓이라고 하건 말건  세븐식스는  싱겁지 않고  맛있는 하교길이다.


그들은 10대의  풋풋한 객기에 한껏 젖어있었다.  경찰서 앞을 지나갈 때는 경찰관 아저씨를  향해  경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맨 앞에 선  자영이가  


 " 우로 봐 "  하는 순간  뒤에서 일제히


 " 충 성 "  하며 고개를 경찰관 아저씨방향으로   돌리자   얼떨떨하게 쳐다보던  아저씨가   경례하며 답해주신다.


그 순간   제복에 약한 여고생들은  설레임에  찬 탄성을 지르고 만다.


 " 와 !! 히 히 히 "


 


                                                                      5


 


 


시험공부를 위해 일요일에 학교에 모인 그들은  공부하다  창가에서 쉬는 중에 뭔가를 발견했다.  가을비가 내리고 있는 창밖은  공부보다는 딴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눈에 띈 것은  맛있게 익은 단감이었다.   도둑질은 나쁘지만  단감서리는  추억이라 자위하며  주위를 살피며  살금 살금  단감 밭으로  들어갔다.   지수가  먼저 총대를 메고  들어섰다.  지수는  바닥에 떨어진 감들을 주웠다.  대여섯개를 옷에 싸서 돌아와  친구들이랑  맛있게 먹었다.  단감의 단맛보다  단 건   그렇게  함께 먹는 친구들끼리의 스릴있는 나눔이었다.


시험기간에는 함께 모여 서로 깨워주며  공부를 하고 시험이 끝나면 꼭 파티를 한다.  떡뽁이 재료를 사서 커다란 솥에 가득해서 배가 터지도록 먹는다.   먹을 때는 소처럼 먹지만 먹고 난 후엔   작은 숙녀가 되어  촛불을 켜놓고  소근 소근 대화의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밖에 나가 반짝이는 별을 보며 길바닥에  퍼지고 앉아  꿈을 얘기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남자친구,  남자친구와의 고민, 해보고 싶은 것들, 하나같이 공감하며  작은 숙녀들의 이야기는  밤이 깊어가는 것을 아쉬워한다.


 


 


                                                                     6


 


여름방학 때 어렵게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  철 지난 바닷가를 찾았다 .  인적없는 바닷가 ,  조용했지만  바다는  소녀들에게 미지에 대한 동경을 느끼게 해주었다.  저녁을 먹고 희미한 촛불아래 아니면 달빛의 도움을 받아 각자 편한 자리를 잡고 앉아  한장 한장 엽서를 써내려갔다.   꿈많는 여고생들,  밤바다를 바라보며 누군가에게  엽서를  써내려가는  그 순간은 그들에게 모든 것이 희망이며  차분한 자기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다.   지수는  10장의 엽서를 가져와서  9장을  엽서 주인이 될 이들을 위한 글을 썼다.  나머지 한 장에는  어떤 대상도 없이  가장 진솔한 자신을 내 보이듯  소망의 글을 썼다 .


 


고요한  밤


달빛아래


넓은 바다를 보며


모래사장에 앉아


작은 기도를 올립니다


 


바다처럼


넓은 가슴을 가지고


이 세상의 작은 촛불이나마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바다와 파도가 조화를 이루어


물결무늬를 만들듯이


내 사랑하는 모든 이들도


서로 조화롭게 아름다운 그림 그려가며


행복한 웃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 엽서를  읽게 되는 분은   


사랑할 줄 알고 매사에 긍정적이며   


 성실한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받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 라고만 쓰고  다음 날  터미널 근처에 있는 우체통에 함께 넣었다.


그리고 잊고 지내던 어느 날  편지 한통이 왔다.


 


지수 양


이 편지 받고 놀라지는 않겠지


오히려  이렇게 편지를 쓰는 나 자신이 놀랍고 두려울 뿐이니까.


혹시나 방황하는 10대는 아닌가 하고 걱정이 돼서 해본 소리로 받아주었으면 좋겠어.


여하튼 지수양이 사랑하는 분께  지세포우체국에서 발송한 엽서가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되어 담당자인 내게로 왔으니까.


규정대로라면  3개월간 보관후 청구가  없으면 불에 태워 버려야 하지만


지수양이 실망할까봐 이렇게 몇자 적어 보내는 거니까  가끔 생각나면 편지해도 좋아요.


20년간 체신부에 근무하면서도 이런 엽서 받아보기는 처음이니까


마음이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여학생에게 편지를 쓰면서도 어떻게 생긴 여학생일까 하고


상상해 보기도 해요.


지수양  말대로 모든 것을 사랑하고 긍정적이며 성실한 사람이 될려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어요.


지수양도 열심히 노력하고 사랑하고 행복하고 ...


먼 훗날 이 사회에 훌륭한 횃불이 될때까지 지켜 보아줄게..


 


이 한통의 편지도 지수의  짧은  고교생활에서  의미있는 흔적으로 남게 되었다.


 


                                                                      7


 


코스모스 청초하게 핀 가을 ,  세븐식스는 안개비를 맞으며 인적드문 새벽길을  코스모스와 함께 걷고 싶었다. 새벽 안개길을 길가에 핀 코스모스와 교감하며  대로를 다 차지하며 걷는  싱그러운 여고생들의 모습은  코스모스와 많이 닮았다.  그들은 추억을 만들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냥  그들 마음이 가는대로 풋풋한  꿈과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그 맑은 감성이 요구하는대로 행동할 뿐이었다.


눈이 천지를 두텁게 덮은 날은  약속이나 한 듯 지각을 하기로 했다.  학교까지 먼 거리이니  눈이 와서 많이 늦었다는 핑계거리를 만들어놓고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가장 잘 보낼까만 고민했다.   쉬엄 쉬엄 발을 떼며  둑에선 눈썰매를   타기도 하고  나무 아래로 들어가면 다른 친구들이  나무가지를 흔들어 떨어지는  눈을  맞으며  까르르 웃어댔다.  그리고는  그 아래  털썩 편하게 앉아  편지를 썼다.  그들에게  예쁜 편지지나  엽서는 필수품이었다.


 


 


                                                                     가출


 


빈껍데기같은  고교 생활 ,  책은 좋아하는데  공부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지수와 융화되지 않는  교과 과정,


지수는 시간이 아까웠다.  차라리 자퇴하고 학원다니며  검정고시 준비를 할까 .


갈등과 방황이 계속되었지만  그것은 그냥  지수 마음 속뿐이었다.  반듯한 부모님아래서 잘 자란 지수는  정말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뭔지는 알기에  레일을 벗어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다만,  수업을 마치면 기차를 타고 홀로  한두시간 거리의 타지역으로  다녀오곤 했다.  지수가  좋아하는 일은   편하게 책을 읽고  읽은 느낌들을  글로 긁적여 흔적을 남기는 일이나  시를 읽고 낭송하는 일,  혼자만의 공간에서 낙서를 하는 일 등이다.  겉으로  외향적으로 보이지만  내면에는 지독하게  내성적인 면도  많은 아이가 지수이다.   아무런 정을 느낄 수 없는 학교지만  지수를 견딜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역시 친구들이다.  친구들이 없었다면  지수는  정말 학교를 자퇴했을지도 모른다.


몇번의 보충수업을 끝으로  지수도  대입을 위한 시험을 보았다.   결과는 역시나였다.  그런데  지수 아빠의 실망이 컸는가 보다.


지수가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하면  새벽잠이 없으신 아빠는  라면을 끓여서  지수랑 같이 먹곤 했다 .   시험이 가까와 올 때는 거의 매일 같이  라면을 끓여주셨던  아빠다.


어느 날 밤  지수 아빠는 술이 많이 취해 오셔서는 지수를 크게 나무라셨다.


 " 내가 그래도   힘들 줄 알면서도 은근히 기대를 했는데... "


 " 나더러 어떡하라구요 .  실업고에서  대학가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


지수는  지수대로 그런 아빠가 속상해서 아빠한테 처음으로 대들었다.  평소에는 아빠랑 잘 지내지만 아빠가 화나시면  얼굴도 못쳐다볼 만큼 무서운 아빠한테  대들고 말았다.  순간   아빠의 손이 지수뺨으로 날아왔다.   지수도 놀라고 엄마도 놀랐다.  한번도 지수한테 손을 댄 적이 없는 아빠가  지수한테  손찌검을 한 것이다.   지수는  울면서  그 밤에 뛰쳐나왔다.  아예  집을 나올 작정으로 대충 준비를 해서 엄마가 부르건 말건  엄마한테까지 소리 소리 지르며  나와 버렸다.


여자 아이가   겁도 없이  깜깜한 시골 논길을  걸었다.   걸으면서  어디를 갈까를 생각했다.  마침  약간의 돈이 있었다.  걱정하실 부모님,  특히  엄마가  걱정되었지만   집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평소에 무서움이 많은 지수였지만  화가 나니  무서움도 저 멀리 피해 있는 것 같았다.   큰 길까지 나와  지나가는 트럭을 붙들었다.    나쁜 아저씨면 어떡하나 겁이 났지만   안되면 가다가  그냥 뛰어내리지 하는 생각으로  차에 올랐다.  다행히  ' 여학생이  조심해서 다녀야지 '  하시면서  터미널까지 태워주고 가셨다.


법수행 막차가 막 떠나려 하고 있었다.   얼른 올라탔다.   법수에는  지수가 초등학교 때  걸스카웃 캠프에서  알게 된  수정이와 현주가 살고 있는 곳이다.   한 시간을 덜커덩 거리는 버스를 타고  현주네 집에 가니  늦은 시간에   멀리서 온 친구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도  반겨주었다.  사정얘기를 하고 며칠 좀 있다 가겠다고 하니  그러라고 한다.  다음 날은 수정이한테 가니   자기 집에 있으랜다.


이틀 밤을 묵고   혼자 생각 좀 해야겠다며 나서니


 "  적당히 방황하고 들어가라.  내가 니가 어떤 애인지 모르면  머리채를 끌고 라도 집에 데려가겠지만  니가 어떤 애인지 알기때문에 그냥 믿고 보내는 거다.  "  라고 한다.   믿어주는 수정이가 고마웠다.


 " 알았다. "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혼자서 남해로  향했다.   날씨는 춥고  더 서글퍼지기만 했다.  그래도 집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부산에 있는 작은 외가로  발길을 옮겼다.  작은 외가에 전화를 하니


 "  지수야 ,  너 지금 어디야?  고모가 몇번이나 전화하셨다.  빨리 와. "   사촌언니가  다급하게  말했다.


 외가에 와 있으니   연락을 받은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  이 놈의 가시나 ,   엄마 죽는 거 볼래?  오늘 까지  너한테 소식 없으면  아빠가  너 호적에서 판다고 하더라 "


 지수는  그래도  별 느낌이 없었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  잘못했다는 생각도 없었다.


 " 내일  당장  와. "


하시며  엄마는 전화를 끊는다.


다음 날 ,  내키지 않는  마음이지만  혼자서 무슨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니  집에 올 수밖에 없었다.   집에 오니  아무도 없는 빈 집,


찬장을  열어  김치랑 찬밥을  정신없이 먹었다.   별미라고 소문난  엄마의 김장김치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밥을 먹고  앉아 있으니  아빠의 인기척이 들린다.  


 "  아빠 "   라고 지수가  아빠 눈치보며  부르자,


 "  그래 왔나?   세상에 어느 부모가  제 자식 죽도록 싫다고 하는 부모가 어딨니?  잘 왔다."  하며 웃으신다.


 그렇게 아빠와 지수는  아무일 없었던 듯 화해를 했고   저녁엔 소식을 듣고  세븐식스 친구들이 와서 한바탕 떠들고 돌아갔다.


지수의 가출 사건은  3박4일만에 끝이 났다. 그로 부터 일주일 후에  아빠가  술에 취해  귤을 가득 사오셔서는  지수의 손을 잡고 우셨다.


 "  많이 아팠지?  아빠가  우리 지수 때리고  한시도 안편했다. "  고 하시면서.


 지수는 그때  ' 부모님의 사랑이란 건 이런 거구나 ' 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수는  맞을 때는 아빠가 원망되었지만  그냥 잊고 있었는데   아빠는  내내 마음아파하셨다는 것이  지수한테도 전해졌다.  


차가운 겨울날씨만큼   지수네 집에도 불어왔던  매서운 바람이  기운을 꺾고  다시 훈훈한  온돌기운으로 돌아왔다.


 


 


                                                                     끌어안는 삶을 위해


 


꿈많은 지수였지만  평범하고 소박한 삶을  사랑하는 지수이기도 했다.  화려하게 살기보다 아름답게 살기를 원했던 지수였다.


자신한테는 늘 냉정하게 내 몰아쳐서  힘든 삶에 뛰어들어도  친구들과  수다떠는 것도 좋아했고  소담스런 여행도 가고 싶었다.


단풍이 절정일 때만이라도   단풍을 보기위한  단풍여행을  가는 게 작은 소망이었던 지수였다.  하지만   그 사소한 것조차도 지수에게 선물로 주어지지 않았다.  가슴에  너무 많은 것을 품고 있어서인지  사랑조차도 지수에게 오래 머물지 않았다.


스무살, 학원에서  지수에게 다가왔던 그 아이,  지수같이 맑은 애는 세상에 정말 드물다고  했던 아이,   지수가  그 애곁을 떠나려 했을 때 괴로워하는 그애를 보며  다른 친구가  '세상에 여자는 많다' 고 충고할 때  '그래 세상에 여자는 많지.  그러나 지수라는 아이는 세상에 하나뿐이지.' 하며  울먹이던 그 아이,  '너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고 싶고  너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 던 그 아이,


 " 넌 너무 큰 애다.  내 옆에 있기엔 아까운 애다.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해야 된다. "  고 했던 날,  헤어지며  '다음에 보자'는그 아이의 말이  지수에게는  꼭 마지막이 될 것같은 예감이었는데  정말  완전한 이별이 되었다.


이별이 아팠지만  지수는 오래 아파하진 않았다.  그보다  지수는  어느 것 하나도 뜻대로 살아지지 않는 자기 삶이 더 아팠고 그 허함을 채우는 것이 더 절실했기에.   지수는 늘 정신이 배고팠다.  그래서  곧잘 혼자 돌아다녔다.  차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미칠 것 같아서 발이 아프도록  40코스나 되는 길을 걷기도 했다.   그래도 지수를 지탱시켜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책이었다.  지수가  죽고싶어질만큼 몸서리쳐질 때마다 지수를  다시 일으켜세워주는 것은  책이었다.   천재 수필가 전혜린에 빠져 어느 해 가을은 전혜린이 되어있었다.


 


 


20년이 흘렀다.  지수는   가을 나뭇잎 예쁘게  쌓여 있는  벤치에 앉아


 '내가  얼마나  이 가을 때문에  이 예쁜 단풍진 잎들때문에  고독했었나'를 생각한다.


 20대 그 방황속에서도  지수가  친구들에게  자주 �조렸던 시가 있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조이던


먼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나   꼭 이 시속의 누님같은 사람이 될거야 .  내가 마흔이 되면  꼭 이런 원숙한 중년의 여자가 되어있을 거야.


      그렇게  살도록  그런  온화하고 멋진 중년이 되도록  살아갈거야 ."


올해 지수는 마흔이 되었다.  마흔이 되고나서  이 시를 다시 되뇌이니  아직은 많이 부족한 자신을 느낀다.


그래도  지수는  가슴이 훈훈하다.  지금 지수는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독서지도를 하고 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아이들과 독서토론을 하는 일은 지수가 정말 너무나 좋아하는 일이다.  숱한 방황을 겪었지만  놓지않았던 책 덕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된 것이다.


지수는  자기가 겪었던  힘겨운 방황과  추억들을  간간히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바랬던 꿈대로  아이들의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 겠다는  다짐을  한다.    열심히  배워서  쉰이 되었을 즈음에는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서  아이들과  수업을  하는  할머니 선생님으로  살아가고픈 꿈을  가슴속에 새겨 넣는다.


 




                                                


지수는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며  생각 깊숙이 숨어 있는 번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혼자있을 때면  자기 생각에 빠지기를 좋아하는 아이이다.    그 생각을 모아  낙서하는 것도 좋아한다.


시노트에는  이름난 시인들의  명시와  여고생 다운  상큼함이 있는  젊은 시인들의 시들을  가득 써 놓았다.


책을 좋아하고  글로서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지수는  혼자 있는 시간을 그렇게 즐긴다.


 


주위에서  강직함과 부지런함으로 이름 나 있는  지수 아버지는  그 일대에서   참외 재배를  처음으로 시작하여


수많은 실패끝에 성공하여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이루며 늘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이다.


화통하면서 불같은 성격의 지수 아버지를 잘 맞추며 살아가는 지수 어머니는  어진 외모만큼  후덕한 품성을 타고난 사람이다.


지수는 그런 부모님 아래  두 남동생과  남부럽지않은  환경속에서  성장하는  여고생이다.


시골에서  큰 농장을  일궈 사시는 부모님은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바쁘시지만  지수는  다른 시골아이들과는 달리  곱게 자란 편에 속한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도  주변 친구들에게  시샘아닌 시샘을 받을 때도 많았다.  


귀엽게 생겼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지수는 특히 웃을 때면  그 해맑음이 더 돋보인다.   티없이 맑은 얼굴에  티없이 밝은 아이가 지수다.


지수의 웃는 모습은  사람을 끌리게 하는 매력을 준다.


친구들이랑도 잘 어울리고 초등학교 때부터  곧잘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서  함께   자는 일도 많을 정도로  원만한 성격이다.


 


그런 지수가  공부는 별로다.   시험성적은  늘 중간이다.   그렇다고  지수가 공부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공부를 하기는 한다.  그런데 성적이 안나온다.    당연히 지수는  공부에는 기가 팍 죽어있다.   지수에게 결정적인  공부의 맹점은 바로  수학과 과학과목을 전혀 못한다는 사실이다.   국어는  이름도 쓸 줄 모르고   초등학교에 입학했어도  우수한 편이었지만  수학이나 과학은  지수에게는 너무나 먼 과목이기만 하다.   수학이나  화학시간에는  칠판쳐다보며 생각하는 것은


 '도대체 저것을 왜 해야하지?  저게 인생을 사는데 무슨 도움을 주나?'


이런 의문밖에 없다.


지수의 꿈은 국문학을 전공해서 국어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국어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멋진 선생님이 되어야지 하는 상상을  곧잘 한다.  


 '국어선생님이 되면  내가  겪었던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면서  아이들을 이해하고 잘 끌어주는 선생님이 되어야지...'  


지수는  수학같은 이과과목과 체육 외에는  다양한 끼를 가지고 있다.  


노래와 춤에 소질이 있어서  학교 행사때 나가기도 하고  글씨를 잘 써서  게시판에  쓸 때도 많다.   성격이 시원 시원하고 임기응변에 능해서  친구들은   가만히 있어도  지수를  내세운다.  학급에서도 지수가  먼저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고  차려진  무대에 그냥 올라 갈 때가  많다.    평소의 지수를 잘 아는 친구들이 지수를 뜨미는 것이다.   그렇게 뜨밀려 나가도 지수는  친구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는 즉석 무대에서  자기 끼를 발휘한다.    시험을 위한 공부는 머리속에 잘 외어지지 않는데  관심있는 분야의 것은  놀랄정도로 총기를 발휘하는 아이가  지수다.   공부못하는 머리로  암송하는  시는 많다.  그리고   노랫말도  서너번 들으면 암기된다.  지수에게 베스트 가요의 가사를 못외우는  친구들이 이해가 안될 정도이다.  


 


지수에게  고교생활은  갑갑한 철창같다.  학교성적이 지수의 모든 끼를 가두고 있는 것만 같다.  지수는  중학교때 성적이 모자라  이름난  인문고에 진학하지 못하고  실업고에 다니게 되었다.  그것이 지수를 더 괴롭히고 있다.   그래도 인문고라면  다른 과목이라도  잘 따라갈 수 있을텐데  실업계 과목은  수학이나 과학만큼  지수에게는 마음이 가지않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성적은 더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  그런 지수를 이해해주는 이또한 아무도 없다.  공부를 못하니  모든 것이 모자란 아이가 되어버렸다.  현실은 성적순으로 매겨지니까  지수도  자기가  참  멍청하다는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생활 속에서  스쳐가는 일에도  그것을 떠올려  얘기를 하면  아빠는


 " 그렇게 좋은 머리로 왜 공부는 못하니? "  라고 하신다.


아이가 가진 재능과  좋아하는 분야를  살려주기 보다  획일화된 교육속에 갇혀  빠져 나오길 거부하는  교육에 반기를 들기에는 지수는 어리고 부족하다.  또한 두렵다.    원하지 않는  공부,    그냥 시간 떼우기로  보내는 학교 생활,   그러면서도  공부를 못한다는 것 때문에  기죽어 있는 지수이다.    고1 때   지수는 수학을 빵점 받았고  시험이래야   늘 찍는 시험이다.  지수는  내내 드러나지 않는 방황을  하고 있다.    타고난 밝은 성격이 그 어둠을  감추고 있는 듯하지만   지수는  누구보다  예민하게  성장통을  겪고 있다.  


 


                                                      친구들과  쌓아가는   행복의 성


 


                                                                       1


 


지수에게는 초등학교부터  고교까지 동문인 6명의 친구들이 있다.   초교나 중학 때는 그저 그랬는데 고교생이 되면서 버스도 자주없는 시골길을  걸어서 함께 오가면서 자연스레 친하게 된 친구들이다.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해도   시골이라 부모님들끼리도 알고 지내는 분들도 계시고  각 집안 사정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정도이다.   7명이 함께 오가면서 반 친구들한테도 각인이 되어  지수네 반에서는 제법 유명한  멤버들이다.  이름도 정했다.  '세븐 식스'  7명이  멤버지만 1명이 빠져서 6명이 모이는 경우가 많아  짓게된 이름이다.


공부할 때는 공부하고 놀 때는 열심히 놀려는 주의가 세븐 식스의 특징이다.  세븐식스의 재미있는 사건들은 주로 하교길에서 일어난다.


봄볕이 따뜻하여  걷기 좋은  토요일,   신나는 토요일이면서  먼 거리를 걸어가야 하는  이들에게  4교시 마치고 점심을 먹지 않은채로 가야하는  길은 배고픈 길이기도 하다.    무지 무지 배가 고팠던  세븐 식스 ,  그렇다고 군것질 할  돈도 없다.  시골 길로 접어들기 전 , 선희가 엉뚱한 제안을 했다.  


 "  우리  저 반점에 들어가서   자장면 시켜놓고  남희한테 돈 가져 오라고 할까? "


 "  어 ,  그러자 .   진짜  너무 너무 고프다. "


나중일은 생각않고 오히려 잘 됐다는 듯  우르르  겁도 없이 반점으로 들어가  자장면 한 그릇씩 시킨다.


선희가 남희한테 전화를 했다.   남희는  반점 근처에 살고 있는 같은 반 친구이다.


그런데 남희가 아직 안왔단다.   그래도  왕성한 식욕이  걱정을 앞질러서  자장면이 나오니 태연스레 잘도  먹어댄다.


다 먹어갈 즈음엔 서로 서로 눈치보며  '어떡하지?' 하는 눈빛만 교환한다.


아 ,  그때   구세주가 될 것 같은  어떤 놈이 지나가네.


지수는  재빨리  뛰어나가


"  야 ,   우리 자장면 값 좀 내죠. "


하고 소리 쳤다.   그 어떤 놈은 황당한 얼굴로 뒤를 돌아본다.


" 히히 ,  남수야  우리다. 배고파서  자장면 시켜먹었는데 사실은 돈 가진애가 아무도 없다. "


" 내 참 기가차서  도대체 정신있는 인간들이야? "


남수는   그렇게 퉁박을  주면서도 얼굴은  웃고 있다.   다행이다.  계산하려나 보다.


세븐식스는 안도의 눈빛을 다시 교환한다.


 


                                                                   2


 


지수 생일,  세븐식스는  진학반인   지수에게  보충수업을 끝내고  집에서 보자고 하며 서둘러 몰려갔다.   수업을 끝내고  혼자 집에 들어서니   선희가  툭 쏘아 부친다.


 "  가시나 ,  청소좀 하고 살아.  치운다고 죽는 줄 알았다. "


 "  어?  니네들 언제 왔는데? "


 "  오늘 우리 지수   귀 빠진 날이잖아 ."


하며  경혜와 연아가 씩 웃는다.   지수빼고 6명이서  청소하고 밥하고  미역국 끓이고  법석을 떨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 아빠도 들에 나가시고  동생들만  벙글거리며 있는 집에서.


 


소년같은 외모에 수학을 잘 하는 선희


야무진 얼굴에 야무진 손을 가진 순영


가장  얌전하고 말이 없으면서도 세븐식스 모임에 빠지는 일없는  은근한 놀쟁이 연아


가장 감성적인 듯해서 별명이 문학소녀인 노래 잘 하는 경혜


지수가  친구들에 비해  부족함 없이 자란 만큼  천진한 모습이 철없어 보였는지  동생한테 처럼 지수에게 충고해서 가끔


부딪히기도 하는 자영이


지수랑 같은 큰딸인데도  지수와는  딴판인 진짜 살림꾼 주희...


 


지수에게는 잊지 못할   잊어서는 안되는 생일 선물이리라.


오랜만에 세븐 식스가 정말 한자리에 다 모여 지수네 가족들이랑 저녁을 먹었다.


 " 아이구,  우리 이쁜이들이 오늘 큰 일을 했네 ."


지수 아빠도 엄마도 대견해서 입을 못다무신다.


 


                                                                     3


 


무서운 태풍이 몰려 온다는 뉴스 보고에 학교에서 안전을 위해 멀리 있는 학생들은 스쿨버스를 타고가게끔 지시를 내렸다.  물론 세븐식스도 스쿨버스 대상에 포함된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그 무서운 태풍이 전혀 무섭지가  않다.  아니 오히려  즐겁다.  즐길 준비를 위해 준비를 한다.  우선 운동화는  싸서 가방에 넣고   슬리퍼를 신고 나간다.   선생님이 보시면 곤란하니까  교문을 나설 때까지는  우산을 쓰고  조용히 나가는 것이다.   역시나  선생님께서  앞에 나와계신다.


 "  꼭  버스타고 가라 "


그들의 엉뚱함을  간파하고 염려하시는 듯한  당부의 말씀이다.


 "  예~~ "


다함께  큰소리로 대답한다.   그 소리에도 못미더운듯  뒷모습을 한참 지켜보신다.


그들은  선생님의 염려가 더 재미있어 킥킥거리며 교문을 나선다.


교문을 벗어난 순간  곧바로 우산을 접어서  책가방과 함께 옆에 끼고  7명의  여고생은  빗속을 내달린다.


태풍이 오거나 말거나  비바람 속을 달리는 기분은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는 듯한  흥분을 주었다.


따끔 따끔  볼을 때리는 비바람이 오히려 흥분을  증폭시킨다.


시골 길에 접어들 무렵  가로수인 큰 버드나무가 뿌리채 뽑혀  길 가운데 누워있고  자동차도  가지 못하고 혼자 널부러져 있기도 하다.


태풍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새 비바람이 우박바람으로  바뀌어  따끔한 것이 아니고  진짜 아프게 쏟아 부친다.


  " 아야 "


  " 히히히 "


  " 깔깔깔 "


  "  아~~ 키키키 "


  "  아우 ~  너무 아프다  그래도 너무 재밌다. "


아프다는 비명을 지르면서  7명은  더 뛰어가지 못하고   젖은 길바닥에 한몸이 되어  서로  엉켜 뒹굴었다.


그러면서   빗물에 젖은  모습을  번갈아 보며  또 깔깔대며 웃어댔다.


그렇게  세븐식스의  하루도 가고 있었다.


                                                               


                                                                 4


 


그 큰비에는 우산을 가지고도 우산을 쓰지 않았던 녀석들이 보슬 보슬비 오는데는 없는 우산을 만들기도 한다.


아침에는 내리지 않던 비가  오후부터 가느다랗게 내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비닐을 구해  7명이 일렬종대로  서서  비닐을 함께 쓰고 거리를  나섰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이 더 즐겁다.  사람들이  보건 말건  싱거운 짓이라고 하건 말건  세븐식스는  싱겁지 않고  맛있는 하교길이다.


그들은 10대의  풋풋한 객기에 한껏 젖어있었다.  경찰서 앞을 지나갈 때는 경찰관 아저씨를  향해  경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맨 앞에 선  자영이가  


 " 우로 봐 "  하는 순간  뒤에서 일제히


 " 충 성 "  하며 고개를 경찰관 아저씨방향으로   돌리자   얼떨떨하게 쳐다보던  아저씨가   경례하며 답해주신다.


그 순간   제복에 약한 여고생들은  설레임에  찬 탄성을 지르고 만다.


 " 와 !! 히 히 히 "


 


                                                                      5


 


 


시험공부를 위해 일요일에 학교에 모인 그들은  공부하다  창가에서 쉬는 중에 뭔가를 발견했다.  가을비가 내리고 있는 창밖은  공부보다는 딴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눈에 띈 것은  맛있게 익은 단감이었다.   도둑질은 나쁘지만  단감서리는  추억이라 자위하며  주위를 살피며  살금 살금  단감 밭으로  들어갔다.   지수가  먼저 총대를 메고  들어섰다.  지수는  바닥에 떨어진 감들을 주웠다.  대여섯개를 옷에 싸서 돌아와  친구들이랑  맛있게 먹었다.  단감의 단맛보다  단 건   그렇게  함께 먹는 친구들끼리의 스릴있는 나눔이었다.


시험기간에는 함께 모여 서로 깨워주며  공부를 하고 시험이 끝나면 꼭 파티를 한다.  떡뽁이 재료를 사서 커다란 솥에 가득해서 배가 터지도록 먹는다.   먹을 때는 소처럼 먹지만 먹고 난 후엔   작은 숙녀가 되어  촛불을 켜놓고  소근 소근 대화의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밖에 나가 반짝이는 별을 보며 길바닥에  퍼지고 앉아  꿈을 얘기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남자친구,  남자친구와의 고민, 해보고 싶은 것들, 하나같이 공감하며  작은 숙녀들의 이야기는  밤이 깊어가는 것을 아쉬워한다.


 


 


                                                                     6


 


여름방학 때 어렵게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  철 지난 바닷가를 찾았다 .  인적없는 바닷가 ,  조용했지만  바다는  소녀들에게 미지에 대한 동경을 느끼게 해주었다.  저녁을 먹고 희미한 촛불아래 아니면 달빛의 도움을 받아 각자 편한 자리를 잡고 앉아  한장 한장 엽서를 써내려갔다.   꿈많는 여고생들,  밤바다를 바라보며 누군가에게  엽서를  써내려가는  그 순간은 그들에게 모든 것이 희망이며  차분한 자기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다.   지수는  10장의 엽서를 가져와서  9장을  엽서 주인이 될 이들을 위한 글을 썼다.  나머지 한 장에는  어떤 대상도 없이  가장 진솔한 자신을 내 보이듯  소망의 글을 썼다 .


 


고요한  밤


달빛아래


넓은 바다를 보며


모래사장에 앉아


작은 기도를 올립니다


 


바다처럼


넓은 가슴을 가지고


이 세상의 작은 촛불이나마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바다와 파도가 조화를 이루어


물결무늬를 만들듯이


내 사랑하는 모든 이들도


서로 조화롭게 아름다운 그림 그려가며


행복한 웃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 엽서를  읽게 되는 분은   


사랑할 줄 알고 매사에 긍정적이며   


 성실한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받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 라고만 쓰고  다음 날  터미널 근처에 있는 우체통에 함께 넣었다.


그리고 잊고 지내던 어느 날  편지 한통이 왔다.


 


지수 양


이 편지 받고 놀라지는 않겠지


오히려  이렇게 편지를 쓰는 나 자신이 놀랍고 두려울 뿐이니까.


혹시나 방황하는 10대는 아닌가 하고 걱정이 돼서 해본 소리로 받아주었으면 좋겠어.


여하튼 지수양이 사랑하는 분께  지세포우체국에서 발송한 엽서가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되어 담당자인 내게로 왔으니까.


규정대로라면  3개월간 보관후 청구가  없으면 불에 태워 버려야 하지만


지수양이 실망할까봐 이렇게 몇자 적어 보내는 거니까  가끔 생각나면 편지해도 좋아요.


20년간 체신부에 근무하면서도 이런 엽서 받아보기는 처음이니까


마음이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여학생에게 편지를 쓰면서도 어떻게 생긴 여학생일까 하고


상상해 보기도 해요.


지수양  말대로 모든 것을 사랑하고 긍정적이며 성실한 사람이 될려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어요.


지수양도 열심히 노력하고 사랑하고 행복하고 ...


먼 훗날 이 사회에 훌륭한 횃불이 될때까지 지켜 보아줄게..


 


이 한통의 편지도 지수의  짧은  고교생활에서  의미있는 흔적으로 남게 되었다.


 


                                                                      7


 


코스모스 청초하게 핀 가을 ,  세븐식스는 안개비를 맞으며 인적드문 새벽길을  코스모스와 함께 걷고 싶었다. 새벽 안개길을 길가에 핀 코스모스와 교감하며  대로를 다 차지하며 걷는  싱그러운 여고생들의 모습은  코스모스와 많이 닮았다.  그들은 추억을 만들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냥  그들 마음이 가는대로 풋풋한  꿈과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그 맑은 감성이 요구하는대로 행동할 뿐이었다.


눈이 천지를 두텁게 덮은 날은  약속이나 한 듯 지각을 하기로 했다.  학교까지 먼 거리이니  눈이 와서 많이 늦었다는 핑계거리를 만들어놓고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가장 잘 보낼까만 고민했다.   쉬엄 쉬엄 발을 떼며  둑에선 눈썰매를   타기도 하고  나무 아래로 들어가면 다른 친구들이  나무가지를 흔들어 떨어지는  눈을  맞으며  까르르 웃어댔다.  그리고는  그 아래  털썩 편하게 앉아  편지를 썼다.  그들에게  예쁜 편지지나  엽서는 필수품이었다.


 


 


                                                                     가출


 


빈껍데기같은  고교 생활 ,  책은 좋아하는데  공부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지수와 융화되지 않는  교과 과정,


지수는 시간이 아까웠다.  차라리 자퇴하고 학원다니며  검정고시 준비를 할까 .


갈등과 방황이 계속되었지만  그것은 그냥  지수 마음 속뿐이었다.  반듯한 부모님아래서 잘 자란 지수는  정말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뭔지는 알기에  레일을 벗어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다만,  수업을 마치면 기차를 타고 홀로  한두시간 거리의 타지역으로  다녀오곤 했다.  지수가  좋아하는 일은   편하게 책을 읽고  읽은 느낌들을  글로 긁적여 흔적을 남기는 일이나  시를 읽고 낭송하는 일,  혼자만의 공간에서 낙서를 하는 일 등이다.  겉으로  외향적으로 보이지만  내면에는 지독하게  내성적인 면도  많은 아이가 지수이다.   아무런 정을 느낄 수 없는 학교지만  지수를 견딜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역시 친구들이다.  친구들이 없었다면  지수는  정말 학교를 자퇴했을지도 모른다.


몇번의 보충수업을 끝으로  지수도  대입을 위한 시험을 보았다.   결과는 역시나였다.  그런데  지수 아빠의 실망이 컸는가 보다.


지수가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하면  새벽잠이 없으신 아빠는  라면을 끓여서  지수랑 같이 먹곤 했다 .   시험이 가까와 올 때는 거의 매일 같이  라면을 끓여주셨던  아빠다.


어느 날 밤  지수 아빠는 술이 많이 취해 오셔서는 지수를 크게 나무라셨다.


 " 내가 그래도   힘들 줄 알면서도 은근히 기대를 했는데... "


 " 나더러 어떡하라구요 .  실업고에서  대학가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


지수는  지수대로 그런 아빠가 속상해서 아빠한테 처음으로 대들었다.  평소에는 아빠랑 잘 지내지만 아빠가 화나시면  얼굴도 못쳐다볼 만큼 무서운 아빠한테  대들고 말았다.  순간   아빠의 손이 지수뺨으로 날아왔다.   지수도 놀라고 엄마도 놀랐다.  한번도 지수한테 손을 댄 적이 없는 아빠가  지수한테  손찌검을 한 것이다.   지수는  울면서  그 밤에 뛰쳐나왔다.  아예  집을 나올 작정으로 대충 준비를 해서 엄마가 부르건 말건  엄마한테까지 소리 소리 지르며  나와 버렸다.


여자 아이가   겁도 없이  깜깜한 시골 논길을  걸었다.   걸으면서  어디를 갈까를 생각했다.  마침  약간의 돈이 있었다.  걱정하실 부모님,  특히  엄마가  걱정되었지만   집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평소에 무서움이 많은 지수였지만  화가 나니  무서움도 저 멀리 피해 있는 것 같았다.   큰 길까지 나와  지나가는 트럭을 붙들었다.    나쁜 아저씨면 어떡하나 겁이 났지만   안되면 가다가  그냥 뛰어내리지 하는 생각으로  차에 올랐다.  다행히  ' 여학생이  조심해서 다녀야지 '  하시면서  터미널까지 태워주고 가셨다.


법수행 막차가 막 떠나려 하고 있었다.   얼른 올라탔다.   법수에는  지수가 초등학교 때  걸스카웃 캠프에서  알게 된  수정이와 현주가 살고 있는 곳이다.   한 시간을 덜커덩 거리는 버스를 타고  현주네 집에 가니  늦은 시간에   멀리서 온 친구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도  반겨주었다.  사정얘기를 하고 며칠 좀 있다 가겠다고 하니  그러라고 한다.  다음 날은 수정이한테 가니   자기 집에 있으랜다.


이틀 밤을 묵고   혼자 생각 좀 해야겠다며 나서니


 "  적당히 방황하고 들어가라.  내가 니가 어떤 애인지 모르면  머리채를 끌고 라도 집에 데려가겠지만  니가 어떤 애인지 알기때문에 그냥 믿고 보내는 거다.  "  라고 한다.   믿어주는 수정이가 고마웠다.


 " 알았다. "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혼자서 남해로  향했다.   날씨는 춥고  더 서글퍼지기만 했다.  그래도 집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부산에 있는 작은 외가로  발길을 옮겼다.  작은 외가에 전화를 하니


 "  지수야 ,  너 지금 어디야?  고모가 몇번이나 전화하셨다.  빨리 와. "   사촌언니가  다급하게  말했다.


 외가에 와 있으니   연락을 받은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  이 놈의 가시나 ,   엄마 죽는 거 볼래?  오늘 까지  너한테 소식 없으면  아빠가  너 호적에서 판다고 하더라 "


 지수는  그래도  별 느낌이 없었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  잘못했다는 생각도 없었다.


 " 내일  당장  와. "


하시며  엄마는 전화를 끊는다.


다음 날 ,  내키지 않는  마음이지만  혼자서 무슨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니  집에 올 수밖에 없었다.   집에 오니  아무도 없는 빈 집,


찬장을  열어  김치랑 찬밥을  정신없이 먹었다.   별미라고 소문난  엄마의 김장김치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밥을 먹고  앉아 있으니  아빠의 인기척이 들린다.  


 "  아빠 "   라고 지수가  아빠 눈치보며  부르자,


 "  그래 왔나?   세상에 어느 부모가  제 자식 죽도록 싫다고 하는 부모가 어딨니?  잘 왔다."  하며 웃으신다.


 그렇게 아빠와 지수는  아무일 없었던 듯 화해를 했고   저녁엔 소식을 듣고  세븐식스 친구들이 와서 한바탕 떠들고 돌아갔다.


지수의 가출 사건은  3박4일만에 끝이 났다. 그로 부터 일주일 후에  아빠가  술에 취해  귤을 가득 사오셔서는  지수의 손을 잡고 우셨다.


 "  많이 아팠지?  아빠가  우리 지수 때리고  한시도 안편했다. "  고 하시면서.


 지수는 그때  ' 부모님의 사랑이란 건 이런 거구나 ' 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수는  맞을 때는 아빠가 원망되었지만  그냥 잊고 있었는데   아빠는  내내 마음아파하셨다는 것이  지수한테도 전해졌다.  


차가운 겨울날씨만큼   지수네 집에도 불어왔던  매서운 바람이  기운을 꺾고  다시 훈훈한  온돌기운으로 돌아왔다.


 


 


                                                                     끌어안는 삶을 위해


 


꿈많은 지수였지만  평범하고 소박한 삶을  사랑하는 지수이기도 했다.  화려하게 살기보다 아름답게 살기를 원했던 지수였다.


자신한테는 늘 냉정하게 내 몰아쳐서  힘든 삶에 뛰어들어도  친구들과  수다떠는 것도 좋아했고  소담스런 여행도 가고 싶었다.


단풍이 절정일 때만이라도   단풍을 보기위한  단풍여행을  가는 게 작은 소망이었던 지수였다.  하지만   그 사소한 것조차도 지수에게 선물로 주어지지 않았다.  가슴에  너무 많은 것을 품고 있어서인지  사랑조차도 지수에게 오래 머물지 않았다.


스무살, 학원에서  지수에게 다가왔던 그 아이,  지수같이 맑은 애는 세상에 정말 드물다고  했던 아이,   지수가  그 애곁을 떠나려 했을 때 괴로워하는 그애를 보며  다른 친구가  '세상에 여자는 많다' 고 충고할 때  '그래 세상에 여자는 많지.  그러나 지수라는 아이는 세상에 하나뿐이지.' 하며  울먹이던 그 아이,  '너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고 싶고  너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 던 그 아이,


 " 넌 너무 큰 애다.  내 옆에 있기엔 아까운 애다.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해야 된다. "  고 했던 날,  헤어지며  '다음에 보자'는그 아이의 말이  지수에게는  꼭 마지막이 될 것같은 예감이었는데  정말  완전한 이별이 되었다.


이별이 아팠지만  지수는 오래 아파하진 않았다.  그보다  지수는  어느 것 하나도 뜻대로 살아지지 않는 자기 삶이 더 아팠고 그 허함을 채우는 것이 더 절실했기에.   지수는 늘 정신이 배고팠다.  그래서  곧잘 혼자 돌아다녔다.  차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미칠 것 같아서 발이 아프도록  40코스나 되는 길을 걷기도 했다.   그래도 지수를 지탱시켜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책이었다.  지수가  죽고싶어질만큼 몸서리쳐질 때마다 지수를  다시 일으켜세워주는 것은  책이었다.   천재 수필가 전혜린에 빠져 어느 해 가을은 전혜린이 되어있었다.


 


 


20년이 흘렀다.  지수는   가을 나뭇잎 예쁘게  쌓여 있는  벤치에 앉아


 '내가  얼마나  이 가을 때문에  이 예쁜 단풍진 잎들때문에  고독했었나'를 생각한다.


 20대 그 방황속에서도  지수가  친구들에게  자주 �조렸던 시가 있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조이던


먼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나   꼭 이 시속의 누님같은 사람이 될거야 .  내가 마흔이 되면  꼭 이런 원숙한 중년의 여자가 되어있을 거야.


      그렇게  살도록  그런  온화하고 멋진 중년이 되도록  살아갈거야 ."


올해 지수는 마흔이 되었다.  마흔이 되고나서  이 시를 다시 되뇌이니  아직은 많이 부족한 자신을 느낀다.


그래도  지수는  가슴이 훈훈하다.  지금 지수는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독서지도를 하고 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아이들과 독서토론을 하는 일은 지수가 정말 너무나 좋아하는 일이다.  숱한 방황을 겪었지만  놓지않았던 책 덕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된 것이다.


지수는  자기가 겪었던  힘겨운 방황과  추억들을  간간히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바랬던 꿈대로  아이들의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 겠다는  다짐을  한다.    열심히  배워서  쉰이 되었을 즈음에는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서  아이들과  수업을  하는  할머니 선생님으로  살아가고픈 꿈을  가슴속에 새겨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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