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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e Dec 19. 2018

커피로 알아본 초딩 입맛의 실체

글쓰기 클래스 12/11 글감 '커피'

레쓰비요? 제가 아는 커피 중 최고였어요
정마담 투로 뱉은 드립이었습니다..


한 모금이면 마실 작은 사이즈의 캔, 굉장히 탁하고 걸쭉한 빛깔을 가진 액체, 강한 달콤함 뒤에 오는 약간의 쌉싸름함과 갈증.. 그것이 내가 마신 커피라는 것의 첫인상이었다.




커피와의 섬뜩한 첫 만남


캔커피가 천국의 맛이었다는 게 아닙니다


중학교 2학년 중간고사 시험공부 중에 몰래 마신 첫 커피의 부작용은 정확히 30분 후에 나타났다. 카페인에 취약한 내 심장이 들썩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심박수가 서서히 빨라지며 속 전체가 긴장한 듯 날이 바짝 서는 아찔한 그 느낌.. 아마 내가 처음 느껴본 '각성'이지 않나 생각이 든다. 묘한 쾌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받은 나는 주요 과목 시험을 보는 날에만 캔커피를 섭취하는 걸로 나와 합의를 봤다. 마치 슈팅 게임에서 제한된 필살기를 가장 위험한 순간에 쓰는 것처럼..


하지만 나의 합의 의지란 기름종이보다 얇은 것이었고, 주요 과목 시험날이 시험 전체 기간으로 늘어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 학기가 더 지나고 캔커피는 나의 수험 생활과 일상생활을 함께하는 절친이 되었다.


성인이 되고 만난 커피


대학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나? 프랜차이즈 카페 문화라는 것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공강 시간 아지트 및 조별과제터가 부족했던 터라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카페로 몰리기 시작했고, 캔커피만 마셨던 나에게도 카페 영접의 기회가 생겼다.

필자의 뇌정지를 부른 메뉴와의 첫 만남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어..'


카페에 처음 들어가 메뉴를 본 나의 솔직한 마음.. 취향이랄 것도 없어 뭘 고를지 막막했던 나는 모두가 시키던 '아메리카노'를 시켰고 사극에서 장희빈이 먹던 사약과 비슷한 농도로 보이는 액체를 한 잔 받았다. 그리고 호기심 반 두려움 반 얼굴에 머금은 채로 친구들과 함께 치얼스..


아메리카노라는 것을 처음 마신 필자의 표정

'우어어얽..!!!'


소태 같다는 말을 표현으로만 들어왔는데 필시 이런 느낌을 두고 한 말이었으리라.. 이런 걸 왜 돈 주고 사 먹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음과 동시에 이걸 고른 나 자신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샘솟았다. 그날 같이 마신 물이 얼마나 되더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그 씁쓸함이 익숙해질 즈음 벌어졌다. 레쓰비와의 첫 대면 이후로 느껴보지 못한 두근거림이 심장을 강타한 것이었다! 차마 친구들에게 각성 상태를 알리지는 못하고 그렇게 심장의 비트를 온몸으로 느껴가며 조별과제에 임했다. 이 세상의 집중력이 아닌 것을 등에 업은 채로..


한 때는 달달한 모카에 허니버터드레드를 한 방에 먹기도 했답니다


진짜 커피라는 것에 호되게 당한 후로 모든 달콤한 조합을 커피에 전부 때려 박았다. 시럽을 넣는 것은 기본이요, 달달한 모카에 휘핑을 잔뜩 올려 허니버터브레드와 같이 먹는 등 혀가 짜릿할 정도의 달콤함으로 씁쓸한 카페인을 덮으려 노력했다. 옆에서 나를 설탕 귀신처럼 봤겠지..?


그렇게 서너 해가 지난 어느 날.. 카페에 왔지만 더 이상 달달한 것을 먹기엔 내 입이 너무 지겨워하던 터라 호기심 반 타협 반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연하게의 준말인 '아아연'을 주문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치얼스..



원효대사 해골물 깨달음에 버금가는 충격이었다. 씁쓸함은 적당한 쌉싸름이 되어 소태가 아닌 풍미로 변했고, 연해서 그런지 내 심장을 적절한 각성 상태로 인도해 주었다. 시스템에나 적용하는 '최적화'라는 개념을 입맛에 적용한 느낌이랄까..? 그 후로 지금까지 나의 기본 설정 메뉴는 '아아연'이다


입맛에 애어른이 어디 있냐만



초딩 입맛, 소위 건강하고 품격 있는 맛의 대척점에 있는 맛을 동경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반대말은 아마 어른 입맛일 텐데..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인 입맛으로 애어른을 구분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이야 예능적 수사로 쓰이는 만큼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는 무게의 반감은 없지만, 한 때는 '오죽 애어른을 나눌 게 없어서 입맛으로 나누냐.. 진짜 치졸하다.'라는 생각도 했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애어른 입맛 등급화와 필자의 '아아연' 깨달음 사건을 종합적으로 볼 때 두 가지 정도는 유추해 볼 수 있다.


1. 입맛이 변하거나
2. 새로운 입맛이 장착됐거나


게임에서도 전직을 하고 인벤토리 슬롯을 늘릴 수 있지 않은가? 딱 그런 개념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고로 타인을 '초딩 입맛'이라 깔볼 필요도 없고 자신을 '어른 입맛'이라며 은근슬쩍 높일 필요도 없다.




그래서 요즘은 어떤 커피를?


천호역점이 거품을 쫀득하게 잘 만듭니다

A. 콜드폼 콜드브루가 참 새로운 맛이더군요? 입맛 슬롯 하나 뚫었습니다.


캔커피와의 아찔한 첫 만남부터 입맛으로 애어른 나누기까지 흘러간 오늘의 뻘글리쉬도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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