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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최 Mar 18. 2022

그때 나의 학교에서는

#감응의 글쓰기 20기 2차시 과제

중2 10월의 일이다.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비보가 전해졌다. A가 자살해 죽었대. 진짜야? 진짜 죽었어? 지금 어디 있는데? 영안실에 있는 거야? 나도 웅성대는 무리에 섞여 물었다. A가 죽었다고? 걔가 왜?


A는 1학년 때 같은 반 뒷자리에 앉던 친구다. 나랑 내 짝 C, 그리고 우리 뒷자리에 앉던 A와 B, 이렇게 넷이 친했다. A는 대범하고 쿨한 성격이었고, B는 푼수덩어리였다. C는 귀엽고 촐랑대는 아이였고, 나는 개중에 나름 진지했던 것 같은데 아이들이 볼 땐 어땠는지 모르겠다. 우린 2학년이 되며 모두 반이 갈렸다.


A는 아파트에서 추락사했다. 8층이었다고 들었다. 떨어진 뒤에 혹여 죽지 않을까 봐 약을 먹고 뛰어내렸다고 한다. 나는 1학년 때 내가 알던 그 A 얘기가 맞는지 현실감이 안 났다. 어쨌거나 그날 이후 학교 어디에도 A는 없었다.


돌고 돌아 내 귀까지 들어온 풍문에 따르면 A는 의사 부모님과 의대생 오빠를 둔 집안의 자식이었다. 난 전혀 몰랐다. 가족 중 유일하게 공부를 못해서 늘 질책을 받았다고 한다. '맞아, 걔 공부는 열심히 했는데 썩 잘하진 못했지.' A의 자살은 그 집안의 마지막 수치일까, 죄의식일까. 학교에서는 같은 반 몇몇 아이에게 왕따를 당했다고 한다. 그 아이들은 툭하면 A에게 머리를 안 감아서 냄새난다는 둥의 모욕을 주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얼굴을 알고 한때 나와 친하기도 했던 아이들이었다.


며칠 전 복도에서 A를 마주친 일이 떠올랐다. 1학년 때 친구들은 뒷전이고 2학년 같은 반 아이들과 한창 몰려다닐 때였다. A는 날 보고 “안녕.” 손을 흔들었고, 나는 같이 오던 친구들과 떠들다 A에게 “안녕.” 하고 지나갔다. 비보를 듣고서야 그때 A의 낯빛이 어땠는지 떠올랐다.


복도를 지나가며 A의 반 교실을 들여다보았다. 왕따를 시켰다던 몇몇이 창턱에 모여앉아 수군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뭐라 할까. ‘안됐네.’, ‘우리 때문인가.’, ‘우리 때문은 아니지.’, ‘누가 우리한테 뭐라고 하면 어쩌지.’ 따위의 불안과 두려움, 탄식 같은 것들이 전부 뒤섞인 표정들이었다. 나라고 예외가 될까. 며칠 전 복도에서 좀 더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었더라면, 어떻게 지내는지 빈말로라도 물었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 나와 인사하며 스쳐가던 그때도 A는 언제 어떤 방법으로 죽을지 고민하고 있었을까.


C와 B가 그날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모른다. C는 그럭저럭 넘기고 일상으로 돌아간 듯했지만, 단짝이었던 B는 심한 타격을 입었다. 하루하루 실시간으로 지적장애를 겪는 듯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난 B도 자기 반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에 알았다. 알고 보니 A와 B는 2학년이 되어 각자 반에서 왕따를 당하며 서로만 의지하고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2학기가 되어 A가 삶을 놓았다. B의 정신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난 이해할 엄두도 안 났다.


난 B가 다음 차례가 될까 두려웠다. 그래서 복도에서 마주치면 모든 걸 뒷전으로 놓고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미소로 안부를 물었다. B는 날이 갈수록 유치원생 어린아이로 회귀했다. 성격따나 푼수기가 과한 밝은 어린아이가 됐다는 게 그 와중 다행이었다. B는 체육복이나 악기 따위를 빌리러 꼭 나에게 왔다. 난 B가 날 찾아올 수 있는 존재로 여기는 데 안심했다. B가 내 시야에 머무는 동안은 그 아이를 최우선으로 대했고, 그렇게만 지내면 걔가 적어도 죽지는 않을 것 같았다.


3학년 때에도 B와 난 다른 반이 되었다. 중3 시기는 무서운 담임선생님 때문에 고되고 정신없었다. 그때도 반마다 어딘가 좀 느린 아이 한 명과 그 아이를 괴롭히는 아이들 무리가 있었다. 우리 반에도 E란 아이와 그 아이를 괴롭히는 무리가 있었다. 난 A의 사례를 기억하려 노력했다. 아이들이 E에게 너무 무리하다 싶으면 종종 끼어들어 중재를 시도했다. 고작 몇 마디 변호하고 빠지는 게 내 최대치의 용기였지만, 일방적으로 당하는 분위기를 흩뜨려놓을 순 있었다.


우리 반은 담임이라는 공공의 적이 있어서 왕따가 그리 심하진 않았다. 그러나 다른 반은 사정이 달랐을 것이다. B는 마주칠 때마다 점점 표정이 침울해졌고, 나중에는 내가 인사해도 대충 받거나 무시하고 지나갔다. 냉대가 반복되자 매순간 난 민망해졌고,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 불안했다. 그리고 무력감을 느꼈다. 날 밀어내는 모습이 ‘너도 똑같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게 진실이라 불편했다.


그 뒤로 B에 대한 기억이 없다. 마주치는 횟수가 점차 줄다 어느 날 특수학교로 전학을 갔다고 들은 것도 같고, 졸업 후 고등학교를 특수학교로 진학했다고 들은 것도 같다. 아마 난 천천히 그 친구를 마음에서 놓았을 것이다. 실은 놓고 싶었다. 중학교 때 일기엔 B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A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 엉망진창으로 갈겨놓은 한 장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복도에서 “안녕.” 하던 A의 표정. 단지 “안녕.”하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뭔가 더 물어주길 바랐던 것만 같은 찰나의 미적댐이 잊히지 않을 뿐이다.


초라한 결말로 떠나보낸 친구들에게 이 글을 쓰는 지금에야 미안함을 말로 전한다. 그때 너의 안녕의 의미를 내가 알아차렸다면 어땠을까 이따금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타인의 고통에 예민한 어른이 되었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나에게 건네는 안녕을 매번 의미심장하게 받을 순 없어도, 누군가 어떤 신호를 보낼 때 부디 그것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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