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최 Jun 08. 2022

80분간의 유년일주

#앤솔로진 5호 투고글

왓챠를 둘러보다 이와이 슌지의 오래전 영화 〈러브레터〉를 재생시켰다. 어렸을 때 본 명작은 자라면서 기억이 흐릿해지다 어느 순간 안 본 것이나 다를 바 없어지지만, 이미 봤다는 점 때문에 웬만한 계기가 아니고서는 다시 챙겨보지 않게 된다. 내게 〈러브레터〉는 보긴 봤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눈밭의 오겡끼데스까’ 외에는 딱히 기억하는 바가 없는 영화였다.

이츠키와 히로코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할 때 나는 책상 앞에서 나와 소파에 반쯤 누운 자세로 보기 시작했다. 히로코가 유리공장에서 아키바와 이야기를 나눌 때부터는 눈을 끔뻑거리다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


밤새 눈이 잔뜩 내렸습니다. 나는 빨간 벙어리장갑을 끼고 혼자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길과 화단에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 소복이 쌓여있습니다. 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밟고 가봅니다. 푹푹 꺼지는 발밑에서 눈 알갱이들이 부대끼며 뽀득뽀득 소리를 냅니다.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내가 이곳에 첫 발자국을 찍었다는 걸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습니다. 아니, 아무도 모르게 비밀로 하고 싶습니다.


눈 쌓인 풍경이 부릉부릉 시동을 걸더니 삽시간 뒤로 사라진다. 열차처럼 수많은 풍경이 잔상을 남기며 빛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그러다 어느 날의 유치원에서 멈춘다.

우리는 미술 활동 중입니다. 나는 스케치북에 물고기를 그린 뒤 선생님들이 잘라주신 동그란 모양의 색종이를 물고기 입 쪽에 붙입니다. 이건 물고기가 내뿜는 물방울입니다. 내가 제일 먼저 그림을 완성합니다. 선생님께 보여드리자 선생님은 내가 그림을 너무 잘 그린다며 꼭 안아주십니다.


스케치북에 그린 물고기가 쏜살같이 헤엄쳐 뒤로 사라진다. 물고기들이 가르는 물살이 빠르게 흘러가며 현란한 색으로 바뀐다. 어느 순간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의 교실에 와있다.

산수 시험을 치르느라 사방이 조용합니다. 나는 4번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맞는지 헷갈려 계속 고민합니다. 그러다 책상 가운데 세워둔 황색 파일 너머로 짝꿍의 시험지를 훔쳐봅니다. 짝꿍은 2번이라고 썼습니다. 난 4번을 지우고 2번으로 고쳐서 냅니다. 채점을 하니 정답은 4번입니다. 나는 작대기가 그어진 무거운 시험지를 받아듭니다.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억울함에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나는 왜 바보같이 2번으로 고쳤을까요?


시험지는 다시 잔상이 되어 사라지고, 매미 소리가 대단하던 여름날의 운동장이다.

우리는 타이어를 나란히 땅에 박아서 네모나게 만든 씨름판에 모여 있습니다. 이곳에서 오늘 멀리뛰기를 배웠습니다. 체육 시간이 끝날 무렵이라 아이들은 저마다 푹신한 타이어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서 놉니다. 옆 타이어에 앉은 남자아이는 다른 남자아이와 떠드느라 반바지 위로 송충이가 기어 올라가는 걸 모릅니다. 송충이가 곧 윗도리 안으로 들어갈 것만 같은데 나는 말도 못 하고 두근거리기만 합니다.


또다시 풍경이 바뀌고 나는 피아노 대회장 무대 아래 있다.

이름이 불리자 나는 떨리는 마음을 붙들고 환한 무대로 나갑니다. 객석은 보이지도 않고 쳐다볼 수도 없습니다. 어서 다 치고 무대에서 내려갈 생각뿐입니다. 나는 무대 한가운데 있는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앞서 연주한 남자아이가 의자를 많이 빼놓아서 건반이랑 거리가 멉니다. 나는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의자를 당기는 행동을 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팔을 멀리멀리 뻗으며 부르크뮐러의 〈맑은 시냇물〉을 느릿느릿 연주합니다.


피아노 소리가 점점 빨라지며 온 우주로 퍼진다. 소리들이 산산이 흩어지며 가루처럼 작아지다 어딘가로 쑥 빨려들듯 사라진다. 그 순간 나는 1층에 사는 대희네 집에 있다.

우리는 다 같이 모여 〈후레시맨〉 비디오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 아파트 아이들은 후레시맨과 바이오맨 중 후레시맨을 봅니다. 대희는 빨간색, 용천이는 파란색, 내 동생은 초록색, 나는 핑크색, 엄지는 노란색입니다. 이건 나 혼자 속으로만 정한 것입니다. 후레시맨은 외계에서 온 괴물 악당과 싸웁니다. 괴물들은 사람들의 몸에 빨대처럼 생긴 관을 꽂아서 쭉쭉 빨아먹습니다. 그러고 나면 사람들은 가죽만 남아서 수건처럼 바닥에 떨어집니다. 사람에게 빨대를 꽂고 빨아먹어서 죽인다니 너무 무섭습니다. 저런 괴물이 진짜로 나타나서 엄마, 아빠, 동생을 잡아먹으면 어떡하죠? 사람이 납작하게 쪼그라드는 장면이 도무지 잊히질 않습니다.


후레시맨이 쏜 무지개 빔과 함께 대희네 집 풍경도 사라진다. 나는 또다시 무수한 순간을 헤매다 지하철역 입구로 들어간다.

스승의 날 학교 가는 길입니다.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교실을 꾸미기로 친구들과 약속해서 평소보다 일찍 나왔습니다. 아무도 없는 역의 계단을 내려가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집니다. 무심결에 방향을 트는데 어느새 바로 옆에 온 아저씨가 내 어깨를 감싸고 가슴을 움켜잡습니다. “학교 가니?” 물어놓고 그 아저씨는 후다닥 계단을 올라가 사라집니다. 심장이 쿵쾅대고 온몸이 후들거립니다. 하지만 걸음을 멈추면 그 아저씨가 다시 올 것 같아 계속 걷습니다. 

걷고 걷고 또 걸어서 교실에 도착하자 마음이 조금 놓입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풍선을 불고 칠판에 글씨를 쓰며 교실을 꾸밉니다. 선생님 앞에서 장기자랑을 하며 춤도 춥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루가 지나갑니다. 나는 집에 와서 잠자기 전에 울면서 엄마에게 그 일을 말합니다. 엄마는 내 머릴 쓰다듬으며 그 아저씨가 네가 예뻐서 그랬나 보다고 말합니다. 나는 내가 예쁘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 아저씨가 왜 그랬는지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지하철역과 학교 풍경도 휘몰아쳐 사라진다. 나는 가장 어릴 적으로 돌아가 동네 목욕탕에 와 있다.

이 안은 온통 뿌옇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웅성웅성 울립니다. 엄마는 벽 한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엄마는 탕에 붙어있는 턱 말고 벽 자리를 좋아합니다. 목욕탕 한가운데엔 커다란 온탕이, 모퉁이엔 작은 냉탕이 있습니다. 온탕은 너무 뜨거워서 싫고, 냉탕은 너무 차가워서 싫습니다. 저쪽에는 뜨거운 방이 있는데 나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무시무시한 곳입니다. 엄마는 큰 대야에 물을 받아 그 속에 나를 앉혀놓고 비누칠을 하고 때를 밉니다. 아파서 달아나려 해도 엄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길고 긴 목욕이 끝나고 드디어 뿌연 유리문 앞에 섭니다. 엄마는 마지막으로 몸에 물을 끼얹고 발을 헹궈줍니다.


문을 열자 단말마처럼 무수한 빛살이 지나간다. 모든 게 그 겹겹의 빛살들 속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파출소 옆 놀이터. 거기 깔려 있던 무수한 모래알. 거기 섞여 있던 손톱만 한 조개껍데기들. 겁을 내면서도 올라가 걷던 구름다리. 개에게 쫓겨 빙빙 돌던 뺑뺑이. 김장독을 묻어놓던 화단. 그곳에 피던 시뻘건 덩굴장미. 강아지풀 위에 앉은 잠자리. 살며시 다가가 덥석 잡던 날개. 양동이에서 익사하던 쥐들. 나무에 붙어 있던 매미들. 발가락을 기어오르던 송충이들. 그해 그것들은 모두 나비가 되었을까.

나는 몇 번의 눈 깜빡거림으로 어른이 됩니다. 정신 나간 20대를 보내고 십수 년간 직장을 다니며 바짝 건조되었습니다. 그 회사 현관문 위에는 마른 북어가 걸려 있었습니다. 동해 바다를 유랑하던 대구는 자신이 죽어서 그러한 몰골로 그곳에 머물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간다. 광속의 풍경 속에서 나는 문득 어떤 슬픈 눈과 마주친다. 그것은 슬픔이란 것 외엔 달리 이유가 없는 까마득한 슬픔의 기원. 이그드라실처럼 세상의 모든 개별 슬픔을 만들어내는 태초의 슬픔이다. 뻗어나가는 가지들이 잠시 시선을 붙잡고 머물다 이내 어딘가로 달아난다. 사라져 잊히고 말 것들. 언젠가 이렇게 잊었다는 걸 상기하는 방식으로만 다시 마주쳐야 할 것들. 영혼을 판다 해도 이젠 물기 가득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다. 세상에 이토록 잔인한 불가항력은 없다.

서러워 울라. 웃던 아이는 찰나에 우는 어른이 되리라. 슬픈 눈의 눈꺼풀이 감긴다.


*


번뜩 눈을 떴다. 모니터 속에서 히로코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오겡끼데스까’를 외치고 있었다. 낮잠으로 중간 부분을 뭉텅 건너뛴 터라 〈러브레터〉의 스토리는 끝내 미궁으로 남았다. 다만 히로코가 죽은 이츠키를 부르며 오열하는 장면은 너무 아득하고 간절해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몰라도 눈물이 나는 걸 막을 도리가 없었다.

예술은 결국 겪어보지 못한 노스탤지어를 향한다고 했던가. 히로코가 바라보던 먹먹한 설산처럼 이젠 움직이지도, 대답하지도 않는 지나온 모든 나에게, 히로코가 그랬듯 나도 가닿을 수 없는 안부를 전한다.

잘 지내니?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Ps, 실제로는 잠들지 않고 〈러브레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습니다. 어떠한 유년기든, 어른이 된 자신에게서 종종 웃으며 인사받기를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하나님이 사라진 자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