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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최 Jan 02. 2023

길에서 쫓아와서요

#감응의 글쓰기 21기 9차시 과제

내가 사는 일산 집 베란다에 캣타워가 놓여 있다. 첫째 고양이 조니는 캣타워를 스크래치로만 쓰지만 둘째 고양이 빌리는 꼭대기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는 취미가 있다. 친구가 임시 보호하다 넘겨준 조니와 달리 빌리는 길에서 쫓아와 키우게 된 아이다.


연남동에서 자취하던 2011년 11월, 여느 때처럼 퇴근하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빌라 앞에서 길고양이 한 마리가 날 빤히 쳐다봤다. 흰색 바탕에 고등어무늬가 얼룩덜룩하고 코에 점이 있는 코숏이었다. 몸집은 내 팔 한 마디쯤 될까. 한 손으로도 잡힐 듯한 어린 아기 고양이었다.


이미 조니를 키우던 나는 녀석이 귀엽고 친근해서 빌라 계단에 앉아 말을 걸었다. “안녕? 넌 누구니?” 그러자 녀석은 물색없이 다가오더니 내 치마에 머리를 문지르고 몸을 비볐다. 누가 키우던 고양이인가 싶을 정도로 경게 없이 사람 손길을 한껏 즐겼다.


들어가려고 빌라 현관문을 열고 잠시 기다리자 고양이는 성큼 날 따라 건물로 들어왔다. 계단을 올라가자 마치 신나는 모험을 떠나듯 사뿐사뿐 따라 올라왔다. 그렇게 집 안까지 따라 들어오는 모습이 어이가 없으면서도 기뻤다.


조니는 낯선 고양이가 침입하자 비상이 걸려 가구 위로 뛰어올라가 하악질을 해댔다. 방구석 꼭대기에서 바짝 털을 세우고는 밤새도록 그러고 있을 기세로 녀석만 주시했다. 길고양이는 무법자처럼 집 안을 배회하며 조니의 그릇에 담기 사료도 먹고 물도 먹고 조니의 쥐돌이 장난감도 가지고 놀며 신세계를 즐겼다. 친해지는 데 몇 달이 걸렸던 예민보스 조니와 달리, 마주친 지 한 시간도 안 된 이 녀석은 내가 흔들어 주는 낚싯대에 열광했다. 조니가 고양이의 표준 성격인 줄 알았던 내겐 이 천진난만한 고양이가 신세계였다.


녀석의 매력은 강력했지만 그래도 아직 키울 생각은 없었다. 조니가 녀석을 너무 불편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욕만 시켜주고 내보내려 했다. 그러나 목욕하고 온풍으로 털을 말리는 사이 녀석은 떡실신해 버렸다. 두 손에 올려놓고 “선생님! 여기서 주무시면 안 돼요!” 마구 흔들어 깨워도 비몽사몽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와, 이렇게 무장 해제된 고양이라니 이길 수가 없다. 밖에서 얼마나 잠을 못 자고 지냈을까 싶어 귀엽고 안쓰러웠다. 오늘만 재우고 내일 내보내자 싶어 녀석을 침대 베개 맡에 내려놓았다. 늘상 침대에서 나와 함께 자던 조니는 그날 침대 근처에 얼씬도 안 했다.


다음 날 녀석은 원래부터 이 집 붙박이였던 마냥 집고양이 패치가 완료되어 있었다. 오히려 조니가 녀석을 피해 다니며 졸지에 객고양이 신세가 됐다. 난 폭풍처럼 고민했다. 조니 때문에 안 돼 하다가도 칼바람이 부는 날씨를 생각했다. 곧 매서운 겨울이었다. 집에서 내보내면 이 아이는 겨우내 밖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자야 한다. 최악의 경우 저 해맑은 성격 때문에 고양이 장수에게 잡혀갈 수도 있었다.


조니에 대한 미안함을 접었다. 녀석을 내쫓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사는 게 먼저 아니겠니. 불편해도 조니 네가 조금만 이해해라.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동생을 데려오기도 하고 그런 거란다. 그래도 며칠 지내다 꼬맹이가 다시 나가고 싶어 한다면 내보내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바깥 냄새를 맡게 해주려고 목줄을 매고 산책을 시키기도 했다. 산책하는 동안 녀석은 강아지처럼 신나게 돌아다녔다. 그러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올 땐 제 집처럼 당연하게 귀가했다.


몇 날 며칠이 지났다. 꼬맹이는 전혀 나갈 생각이 없었다. 이 녀석을 내가 키운다는 현실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난 펑크밴드 그린데이의 빌리 조 암스트롱에서 이름을 따와, 녀석에게 ‘빌리’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조니의 이름은 영화배우 조니 뎁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이름까지 지어 줬으니 이제 못 나가. 여기서 살아야 돼.”

그렇긴 해도 빌리는 종종 야생 본능을 발휘했다. 창문 방충망을 뚫고 건물 외벽으로 나가 에어컨 실외기에 위에서 도망갈 경로를 찾듯이 주변을 살피며 날 안절부절못하게 만들곤 했다. 녀석은 매번 다시 창문을 통해 집 안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좁은 원룸에 빌리를 가둬버린 게 아닌가 싶어 미안했다. 좀처럼 살가워지지 않는 조니와 빌리 사이를 볼 때도 조니는 빌리를 언제까지나 참아야 하는 불청객으로 여기는 것 같아 미안했다. 내 조급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고양이는 저들만의 느긋한 속도로 관계를 맺어갔다.


10년이 흘렀다. 고양이는 우직하게 친해진다고 말한 지인이 있었다. 하루를 보내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하루만큼 친해진다고. 그것도 뭐 고양이 나름이겠지만 조니와 빌리는 내 조급한 바람과 상관없이 각자의 성격만큼, 하루하루 조금씩 서로를 받아들여 온 것 같다. 어느 날 보니 둘은 가족이 되어 있었고 희소하게나마 서로 그루밍해주는 모습을 내게 들키기도 한다. 언제부터 그렇게 됐는지 사람은 알 수 없다. 때론 이러한 고양이들의 속도가 퍽 위로가 된다. 일이든 관계든 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시간의 힘을 우직하게 믿게 만든다.


일산으로 이사할 때 빌리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 9개월 만에 빌리를 되찾기까지 파란만장한 사연이 존재한다. 어찌저찌 일산 집으로 데려온 빌리는 처음 연남동 자취방에 쳐들어오던 그때처럼 발랄했고, 조니는 여전히 하악질로 빌리를 맞이했다. 며칠간 중문을 닫아놓고 두 고양이를 격리했는데, 그때 둘은 중문의 뿌연 유리 너머로 마주보며 야옹야옹 울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험 삼아 중문을 열자 둘은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나갔다. 그때 둘이 무슨 대화를 했을지 너무나도 궁금하지만 사람은 알 수 없다.


살아야 할 이유가 넘쳐날 때에도, 살아야 할 이유가 두 고양이뿐일 때에도 조니와 빌리는 그저 고양이로서 내 옆을 지켜왔다. 사람들이 빌리를 어떻게 키우게 됐냐고 물으면 난 늘 같은 문장으로 대답한다. “길에서 쫓아와서요.” 10년 전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삶에 쳐들어온 빌리를 선물처럼 받아 안아 무척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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