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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최 Apr 24. 2022

사는 게 그거밖에 없는 것 같아

#감응의글쓰기 20기 10차시 과제

대한민국 가부장제 가정에서 태어난 3대 독자. 유년기를 관통한 IMF. 큰 방을 누나가 쓰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순둥이지만 집안일엔 끝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던 밉상. 술 먹고 늦게 들어올 때면 택시비를 들고 털레털레 나와주던 믿을 구석. 비혼인 K-장녀 누나로선 ‘넌 나보다 많이 받고 살았잖아.’ 해묵은 원망이 있지만 부모님께 첫 손주를 안겨주며 마음의 짐을 덜어준 그가 고맙기도 하다. 근래 집안에서 ‘이제 설거지는 남자가 하라’는 파문을 일으킨 누나를 그는 순한 동생답게 아무 반박 없이 수용했다. 이 녀석은 대체 뭘까. 난 동생에게서 느끼는 양가적 감정을 잠시 꺼두고 낯선 시선으로 묻기로 했다. 너는 과연 어떤 인간이냐고. 

최근 근황을 묻자 자연히 아이 얘기부터 나온다. (이하 동생을 ‘최’, 그의 처를 ‘송’이라 칭한다.)


애기 첫돌 지나고 나서 정신적으로 되게 힘들더라고.


최는 현재 30개월 된 아들을 키운다. 처음엔 정신이 없어서 힘들다는 것도 몰랐는데, 첫돌 이후 조금씩 요령이 생기니 그제서 힘들다는 생각도 든다. 31살에 결혼한 최는 친구들 중 결혼이 빠른 편이라 육아나 집 문제 같은 현실적인 얘기를 나눌 곳이 없다. 그나마 딱 한 명 육아 동지가 있는데, 그 친구는 5년 전 분양받았던 집이 다 지어져 얼마 전 이사를 했다고 한다.


고생하더니 결국 잘되는구나 싶어서 기분이 되게 좋더라고.


그 이야기를 하는 최에게서는 놀랍게도 수컷들이 으레 가진 시기나 열등감이 안 보인다. 둘의 우정이 끈끈하기도 하겠지만, 주변 사람이 잘되는 모습을 보며 자신과 비교하기보다 자신에게도 열린 가능성을 바라보는 특유의 긍정성이다.


너무 내가 나만 보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유치원부터 초중고를 함께 나온 영혼의 단짝이었지만 고3 때 사소한 일로 다투고 멀어진 ‘강’을 떠올리며, 부재중 전화를 보고 전화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일주일 뒤 바다에서 익사체로 돌아온 ‘현’을 떠올리며 최는 회한을 느끼곤 했다. 그는 무심함이 기본이고 때로 냉정하단 소릴 듣는 성격으로 살아왔는데, 지금 보면 그게 타고난 게 아니라 학습된 것 같다고 추측한다.


점심 먹고 집에 가면 엄마가 올 때까지, 6~7시까지 혼자 있잖아. 누나는 4~5시에 오고. 그때 뭘 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나.


우리 가족은 1994년부터 3~4년 정도 삼각지의 낡은 맨션에서 살았다. 삼각지는 아빠 사업이 망하고 쫓기듯 이사 간 곳이자 전업주부였던 엄마가 동네 마트에서 맞벌이를 시작한 곳이다. 우리 가족의 암흑기를 상징하는 삼각지에서 최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돈 없음은 말하지 않아도 몸으로 느껴졌고, 학창시절 내내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영화감독이 꿈 아니었어?” 내가 묻자 눈을 반짝이며 “어렴풋이 있었지.” 대답한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최는 자격증을 따 카센터에 취직해서 돈이나 벌 생각이었다. 1년 재수해 대학을 간 건 아빠의 설득 때문이다.


나는 보면,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 같아.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으면 그쪽으로 가고, 안 좋은 사람이 있으면 안 좋은 쪽으로 가고.


선택 부담이 없고 계급과 매뉴얼이 명확한 군대가 성향에 잘 맞았다는 최는 리더보다는 팔로어형 인간이고,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이다. 그는 졸업 후 2년 정도 토익 공부를 하며 취준생 시기를 보냈는데, 그때 송과 함께 공부하며 ‘열심히’가 뭔지 깨달았다.


살면서 그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 처음 봤어. 와, 이렇게 하는 게 열심히 하는 거구나...


그녀와 면접 연습을 한 게 큰 도움이 되어 회사에 붙었다. 첫 직장은 볼트 등의 건설 자재를 만드는 중소기업 경영지원 부서였다. ERP 시스템이 허술해 이삼년 간 장님 코끼리 만지는 기분으로 일하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고 5년차 때 더 나은 회사로 이직을 했지만, 지원부서의 비애인 ‘노잼’ 문제가 잘 극복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듣다 보니 직장 다닐 때 경영지원팀을 보며 ‘저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일할까.’ 하는 생각을 하던 것이 떠올랐다. 숫자만 쳐다보며 직원들 민원 처리해주던 사이보그들. 최가 그들이었구나. 요새는 52시간제에 매출 압박도 없어서 육아하기 좋다며 만족을 찾는다. 최에겐 노잼을 견디고 삶을 지키는 양날 검을 다루는 게 익숙해 보인다.


사실 남는 건 같이 지낸 사람들끼리 농담이나 따먹고, 좀 힘들어도 같이 으쌰으쌰하고, 집에 가서 맥주 먹으면서 풀고, 그때그때 작은 소통이나 공감 이런 것들 있잖아. 내 생각에 사는 게 그거밖에 없는 것 같아.


그런 관점에서 그의 인생 과제는 앞으로 주변 사람을 더 챙기며 사는 것이다. 그는 누나가 설거지 파문을 일으켰을 때 이야기도 꺼냈다. 누나가 집안일을 다 같이 나눠 하지 않는 걸 서운해한다는 걸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현에게 전화해야지 하다가 안 한 것처럼, 자신도 해야지 생각만 하면서 이제까지 그냥 넘어왔다. 해야지 하는 생각을 과연 했을까 누나로선 의문이지만, 만약 진실인데 의심당하면 무척 억울할 것 같아 믿어주기로 한다.


생각해보면 내 본성은 그렇게 털털한 성격이 아니야. 되게 뭐랄까... 세밀해.


어릴 적 엄마 등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던 최는 사실 애정을 갈구하고 사람에게 치대기를 좋아하는 천성이었다. 맞벌이하느라 바쁜 부모에게는 수용될 수 없었던 그 천성을, 그는 불쌍해지는 대신 무심함이 우리 가족 고유의 정서라 포장하며 애써 처리했다. 무심함의 바탕에는 더욱 끈끈하고 유별난 가족애가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오늘날 자기 아이에게 치대고 애정을 갈구하는 자신을 보며 비로소 본래 타고난 자신과 만들어진 자신을 구분해냈다.

어쩌면 최에게는 ‘하고 싶은 일’이랄지 ‘꿈’ 같은 딱 떨어지는 어휘로 삶의 의미를 묻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는 사람을 좋아하고 관계성과 과정에서 의미를 느끼는 사람이다. 그에겐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최에게 삶은 시시덕대는 작은 순간들이 모여 촘촘한 즐거움으로 완성되는 점묘화다.

가족으로서, 누나로서, 같은 추억을 공유한 호적 메이트로서 그의 삶을 응원한다. 그는 어떤 이들에게 괜찮은 케이스가 되는 삶 정도면 좋겠다 말한다. 그런 그의 희망이 삐딱한 그의 누나마저 진심을 다해 고개 끄덕거리게 만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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