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조언에서 벗어나 자기 기준 세우기
나는 나를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거울 속 모습? 아니면 누군가의 말?
어쩌면 나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통해 나를 알게 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 시선은 때로 칭찬이었고, 때로는 오해였고, 때로는 침묵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을 해석하고, 과잉 해석하고, 결국 그 시선에 맞춰 그녀를 만들었다.
1. 라캉: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라캉은 말한다.
“주체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다.”
우리는 단지 무언가를 원하지 않는다.
타자가 원하는 것을 원하고,
타자가 나를 어떻게 보기를 원하는지를 욕망한다.
어린 시절, 부모의 시선은 나의 첫 번째 타자였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나는 “착한 아이”, “조용한 아이”, “문제아”**라는 이름을 입었다.
그 시선은 내 욕망의 방향을 결정했고,나는 타자의 욕망 속에서 나를 구성했다.
2. 오해, 거절, 과잉 해석: 타자의 시선이 만든 감정의 파편
ADHD 성향을 가진 사람은 감각과 감정에 민감하다.
말투의 떨림, 표정의 변화,,메시지의 간격조차, 타인의 평가로 과잉 해석한다.
“그 말투는 실망한 거야.”
“그 표정은 나를 싫어한다는 뜻이야.”
이런 해석은 사실이 아니라, 상상된 타자의 욕망이다.
그리고 나는 그 상상 속에서나를 조정하고, 감추고, 왜곡한다.
3 . 카뮈: 자기기만이라는 방어기제
카뮈는 말한다.
“인간은 의미 없는 세계를 견디기 위해 자기기만을 선택한다.”
나는 타인의 시선을 해석하고,
그 해석이 나를 아프게 할 때,
그 시선을 내면화하고, 나를 규정한다.
“나는 원래 사랑받기 어려운 사람이야.”
이 말은 자기이해가 아니라 자기기만이다.
그건 타인의 욕망에 맞춰 만든 가면이고,
그 가면을 오래 쓰다 보면,
나는 진짜 나를 잃어버린다.
“나는 나를 설명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늘 타인의 언어로 나를 말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대신, 나의 욕망을 상상해보려 한다.
그건 낯설고 불안한 일이지만,
그 불안을 견디는 순간,
나는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연습이, 자신감이라는 이름의 회복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