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으로 가득 채우는 집

공간과 나의 결이 같아지게

by 당디
당디프로필.png 녹차 파운드 케이크와 차가운 물은 여름의 조합

살면서 쌓아온 경험들이 모여 나의 취향이 되는 거라는 글을 보았다. 그럼 기억조차 안 나는 아주 어린 시절의 촉각이나, 처음 혼자 한 여행지에서 겪은 낯선 설렘과 두려움 같은 경험이 나를 만들었냐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거다.


한식을 좋아하던 나는 어느 여행지의 브런치 집에서 그라인더로 간 통후추의 기분 좋은 알싸함을 느끼게 되었고, 아침마다 시끄럽게 짹짹거리는 새소리를 귀엽게 여기는 마음도 가지고 있단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계란 후라이에도 후추를 잔뜩 넣고, 짹세권이라 너무 시끄럽다는 친구 집에서도 기분 좋게 눈뜨는 사람이 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건 손길이 닿은 공간에서 아늑하게 쉬는 것. 고되고 지친 하루여도 온전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단 생각은 꽤 위로가 된다. 어느 날 퇴근하고 씻지도 않고 바닥에 누워 집을 천천히 살펴보니 구석구석 내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차곡차곡 쌓아온 내 시간은 나를 만든다. 마찬가지로 좋았던 경험을 지금 살고 있는 집에 가득 채우고, 그곳에서 좋아하는 일들을 잔뜩 하면 공간 또한 거주자하는 사람을 닮는다고 생각한다. 설령 그 집이 인테리어와는 거리가 멀어도 잘보면 주인의 귀여운 감성이나 색깔 취향이 담겨있다. 취향이 없다 말하는 친구 집에 놀러 가도 관찰자의 시선으로 하나씩 살펴보면 큰 카테고리로 친구의 취향을 묶을 수 있다. 귀여운 캐릭터를 좋아하는 몽글한 마음, 잡동사니는 두지 않는 미니멀한 취향같이 공간엔 거주자의 성향이 그대로 묻어난다.


지금의 나는 집꾸미는 과정을 참 좋아하지만, 사실 이사 오기 전까진 '이 집은 이래서 안 되니까 다음 집에 가면 꾸미고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컸었다. 당시 집은 디폴트 값인 벽돌무늬 벽지가 마음에 들어 계약했던 집인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렇게 촌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톤이 일정하지 않은 중구난방 패브릭과 가구로 이미 우리 집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시행착오 투성이인 당시의 집은 지금의 날 만들어 준 과정이었다. 비싸고 멋진 가구, 신축, 낭만적인 뷰는 없지만 내가 만든 엉성한 소품들, 직접 바른 벽지, 체리 몰딩, 리폼한 조명, 여행지에서 사 온 마그넷, 애정 하는 식물들을 키우는 집! 만난 사람, 가본 장소, 맛있었던 음식들처럼 즐거웠던 기억들이 쌓여 만들어진 취향이 담긴 장소. 하나 씩 알게된 취향을 짚어보며 버전2로 업그레이드된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충분히 나답게 꾸민 장소가 되었다.


설령 서투를지언정 공간은 나를 만들고, 나는 공간을 만든다.





나무색의 소품과 가구를 좋아하는 식집사이자 IT 마케터 당디입니다.

집을 가꾸며 이모저모 여러 생김새를 가진 식물들을 키우고 있어요.


집에서 사부작대며 무언가를 만드는 것도 좋아해서 작은 소품이나 가구를 만들고, 최근에는 뜨개질도 열심히 하고 있는 탓에 꽤 바쁩니다. 공간만 더 허락된다면 물고기나 수초도 키우고 싶지만 그렇지 않은 관계로 식물들이나 열심히 키우는 걸로 타협을 봅니다.

저의 손길이 닿은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보람과 애정을 느끼는 편인데, 식물의 '성장'도 만들어내는 중이라 생각합니다. 예전엔 많은 식물을 식물별로 보냈지만 조금 더 숙련치가 쌓였는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어요. 공간과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혼자라서 식물을 키워요